"세종지역도 '만세운동' 엄청나게 많이 일어났다"
"세종지역도 '만세운동' 엄청나게 많이 일어났다"
  • 세종의소리
  • 승인 2019.01.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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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 '3.1 만세운동' 발생 1백주년 맞아 세종지역 자료 찾아내
횃불 시위, 도계를 넘은 마을 간 합동 만세 운동 등 새로운 사실 '세종의 소리' 연재 예정
윤철원 세종시 향토사연구위원은 '3.1 만세운동' 1백주년을 맞아 세종에서도 여러지역에서 동시에 횃불 시위를 벌인 것으로 밝혀냈다.

“신도시 중심으로 성장하는 세종시에 역사성을 확립하고 당시 상황을 재조명하기 위해 독립만세운동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3·1 만세운동’ 1백주년을 맞아 세종지역에서도 총 11일에 걸쳐 모두 24번의 만세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그동안 전의장터 중심으로 고증됐던 이 지역 만세운동은 조치원, 부강, 연동, 금남, 전동, 소정, 전동, 장군면 지역에서 한차례 이상 민초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벌였던 것이 확인됐다.

조치원읍장을 지낸 윤철원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은 ‘3·1만세운동’ 1백주년을 앞둔 지난 해 각종 문헌을 뒤져 세종시에서도 1919년 3월 13일부터 4월 10일까지 연기면 7회, 연서면 5회, 조치원읍 3회, 연동·부강면 각각 2회, 금남·전의·전동·소정·장군면에서 각 1회씩 주민 주도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밝혀냈다.

이 가운데 1919년 3월 23일 일어난 조치원읍 횃불만세시위는 당시 연기군 관내 조치원면, 서면, 남면의 여러 마을과 충청북도 청주 서부지역의 강내, 강외, 옥산지역민이 합동으로 벌인 시위로 전국 최초 도계(道界)를 넘어선 마을 간 연합시위였다는 점을 새롭게 밝혀냈다.

또, 주로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을 이용해서 시위를 했으며 조치원지역 운동에는 무려 3천5백명이 참여한 것으로 일제는 기록해 실제로는 더 많은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염원하면서 암울했던 시대상을 뚫어보려고 행진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소요사건 일람표’에 실린 조선헌병대 기록에는 금남면 대평리에도 무려 2천3백명이 운집했으며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는 전의 만세운동에는 1백50명이 참여한 것으로 남아있다. 추후 고증과 연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정립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윤 향토사 연구위원은 세종지역 만세 운동을 ▲횃불형 ▲행진형 ▲비폭력 시위였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주로 산상에 모여 횃불로 이웃마을의 동참을 유도하고 이 운동을 확산시켜나간 것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조선총독부 및 조선헌병대 기록에서 만세운동 참가자수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조선 소요 사태’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축소 가능성이 많아 1백년 전 세종지역에서는 기록과는 달리, 많은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보도된 당시 조치원과 전의지역 만세운동 기사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보도된 당시 조치원과 전의지역 만세운동 기사

윤철원 세종 향토사 연구위원은 “세종시에서 만세운동이 어느 지역보다 가열차게 일어났다는 걸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료를 찾아냈다” 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군면 대교리, 금남면 대평장터 만세 운동 등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며 조치원 지역에서 대규모 횃불시위도 역시 이번에 밝혀진 사실이 되고 있다.

한편, 윤철원 세종 향토사 연구위원은 지난 한해동안 찾아낸 자료를 중심으로 ‘세종의 소리’에 연재, 지역 주민들에게 역사성을 심어주고 ‘3.1 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살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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