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쳐 이장 맡아 마을에 헌신”
“3대에 걸쳐 이장 맡아 마을에 헌신”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3.01.30 13:1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인] 22년간 동네 일에 열정...금남면 부용1리 소무길씨

 3대에 걸쳐 이장을 맡았던 소무길씨의 고향 사랑은 끝이 없다. 이장직을 후배에게 넘겨주고도 마을 주변을 지나는 전기철탑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 그리고 세종시에 편입된 금남면 부용리는 마을 역사가 400~500년으로 추정되는 오지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조부 소병원씨(일제 때 마을이장 역임)와 근 40년간 이장을 지낸 선친 소재석씨(97년 83세로 작고)에 이어 22년 동안 이장을 지낸 분이 있다. 소무길씨(73)가 바로 주인공이다.

3대에 걸쳐 부용리에서 이장을 지낸 것은 지극한 고향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부친이 이웃과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난 소무길씨는 부인 이무자 여사(70)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소씨가 조부와 선친에 이어 이장을 맡게 된 것은 마을사람의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다. 78년 12월 30일 마을사람들은 무기명으로 이장 선거를 실시했는데 소무길씨를 이장으로 덜컥 뽑아버린 것. 아이들이 자라 큰 도시로 유학을 가면서 소씨는 회사경비 등을 지내며 이사도 고려했다가 마을 주민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이장을 맡았다.

79년 1월부터 부용1리 이장을 맡은 소무길씨는 3대에 걸쳐 이장직을 이어 맡으면서 각오를 다졌다. 무엇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 이장은 이장을 맡고나서 가장 먼저 오지마을인 부용리에 버스가 들어오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 당시 연기군에서 부용리는 가장 오지마을로 금남면사무소까지 걸어서 2시간이 걸렸다. 면사무소 직원이 출장 오면 이장집에서 식사를 내야 하고 늦으면 잠까지 재워주워야 했다.

오지마을에 버스를 개통한 공로로 안응모 충남지사에게 감사패를 받았다. 
소 이장은 공주시민교통을 찾아가 마을에 버스가 다니도록 길을 낼 터이니 버스운행을 해달라고 졸라 허락을 맡고 주민의 협조를 받아 마을 길을 넓혀 마침내 84년 9월 8일 금남면 대평리에서 부용리를 종점으로 한 버스개통을 실현했다. 그리고 나서 승객이 없어 버스노선을 없앤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마을주민들은 일이 없어도 교대로 버스비를 내고 타고 다녔다. 이 공로로 소 이장은 당시 안응모 충남도지사의 감사패를 받았다.

82년에는 마을총회를 열어 천수답으로 된 마을 농경지를 수리안전답으로 만들기 위해 연기군청 군수를 만나 양수장 시설을 건의했다. 그 결과 초오개(草五介:부용리의 옛 지명) 양수장이라는 이름의 수리시설이 완공되어 수리답으로 마을번영을 가져왔다.

소 이장은 88년까지 10년간 이장을 보고 자녀들이 한창 공부하는 비용을 대기 위해 회사에 취직하여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소 이장의 자녀들은 지금 둘째아들이 서울교대를 나와 서울에서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고 큰 아들과 셋째 아들은 충남대 등 대학을 나와 회사에 근무하는 등 잘 성장했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소무길씨에게 돈 그만 벌고 다시 이장을 맡아달라고 야단이었다. 2000년 12월 30일 마을 총회에서 소씨를 다시 이장으로 선출했다. 2001년 1월 두 번째로 이장 임명장을 받은 소씨는 다시 마을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2000년 에 시작한 경지정리를 잘 마무리하는 한편 간이상수도를 설치하여 마을 식수를 해결하고 물탱크도 스텐으로 교체했다. 이어 협소한 마을회관을 다시 건립하기로 하고 군의 보조와 자부담으로 264평을 구입하여 건평 33평의 회관을 지어 현재 매일 남자 13명 여자 19명의 어르신이 점심과 저녁까지 들며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다.

소 이장은 협소한 농로를 군청보조사업으로 약 5킬로미터 가량 포장하는 한편 봉정사에서 마을 입구까지 임도도 포장했다. 또한 마을 안길을 아스콘으로 포장하는 등 살기 좋은 마을 조성에 앞장섰다.

 마을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리민 카드
소 이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마을 총회에서 22년간 맡았던 이장직을 58세 나이의 젊은 하창수씨에게 넘겼다.

소무길씨는 “군청에 일이 있어 가면 오지마을 사람 왔다고 신기해하던 것이 엊그제 같다”며 “이제 세종특별자치시가 되고 마을 주변으로 호남고속철도에다가 전기철탑 등이 지나간다고 해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부용2구 능선으로 지나가는 세종시 전기철탑은 마을의 환경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설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세종시외 건설청, 한국전력에 마을이 피해보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한국전력에서만 답변이 안 오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오래된 마을 자연 환경 훼손 안되게 당초 계획대로나 지중화로 전기철탑 세워야"

소무길씨는 “호남고속철도에다가 전기철탑이 오락가락하면 마을이 이래저래 버리게 되어 걱정”이라며 “철탑이 당초 계획했던 예정지로 가던지, 아니면 지중화로 가던지 해서 마을경관과 자연을 살리는 쪽으로 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500년 동안 조용해 살던 마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오지마을이지만 부용1리는 현재 12개 성씨의 48가구 73명의 사람들이 오순도순하게 살고 있다.

소무길씨가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말은 밥상머리 교육이다. “웃어른에게 꼭 인사드리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신용이 떨어지면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선친도 항상 “아무리 학교 교육을 잘 받아도 가정교육을 못 받으면 소용없다”며 가정에서의 교육을 강조하셨다는 것이다.

조부와 선친이 술은 한잔도 안 드셨다는 소 이장은 즐겁게 사는 것이 건강비결이다. 소 이장의 노래실력은 지역에서 알아준다. 금남면노래자랑 우수상, 연기벚꽃축제 인기상 등을 받은 소 이장의 18번은 남인수의 ‘추억의 소야곡’이다.

박순환 부용1리 노인회장(77)은 “소 이장은 젊어서부터 마을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며 “남을 돕고 살았던 선친의 모습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마을을 위해 정열을 쏟은 소무길씨에게는 금남면장의 표창과 도지사 감사패, 군수 표창패, 조합장 등의 표창패에다가 금남면 주민일동의 공로패가 소중한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소무길 부용1리 전 이장의 손전화는 011-466-8015이다.

 소무길 이장과 부인 이무자 여사는 멀리 장군봉이 보이는 마을에서 화목하게 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예뿐여우 2013-02-15 06:38:39
저희 금남면에 계시네요~
사진으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훌륭하신 분이 곁에 계시니 든든합니다.
고맙습니다.(꾸벅)

임재한세종시 문화해설사 2013-01-30 22:55:36
소무길 이장님 대단하십니다 세종의 소리 세종인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