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님, 열반을 준비하시는 건가요"
"노스님, 열반을 준비하시는 건가요"
  • 임효림
  • 승인 2018.12.3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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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림 칼럼] 가을볕... "산중의 볕은 잘익은 배와 같은 것"

ㅡ가을 볕ㅡ

가을이 깊어가는 산중의 볕은 잘 익은 배와 같습니다. 한입 배어 물면 쉬원하고 단물이 뚝뚝흐르는 그맛. 가을은 시원하고 달콤한 배맛입니다. 그 배맛같은 가을 볕이 잘 든 어느날 인데요.


노스님은 당신이 거처하는 방앞에 화덕하나를 놓고 햇볕아래서 차를 다려마시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 자리에는 젊은 스님들이 자주 초대받아 함께 차를 마실 영광이 주어졌지요. 차라고 해야 절 뒤에서 따온 산죽 잎파리를 다관에 넣어 다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맛은 노스님 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맛이 있지요.


그날도 젊은 스님들 서너명과 같이 단맛이 흐르는 가을볕을 받으며 차를 마셨습니다. 그날의 차맛은 더욱 진하고 달았습니다.


"나는 말이야 열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지. 어떻게 마지막을 장식 할 것인가? 도를 닦아온 늙은이가 어떻게 마지막을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가?"


젊은 사람도 아닌 노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 졌습니다. 그때 제일 젊은 스님이 말했습니다.


"노스님! 왜요? 열반을 준비하시는 가요?"
"응! 나도 이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겠어?"
"............"


젊은 스님들은 그냥 노스님을 처다만 보았습니다.


"너무 심각 한 표정들이 아닌가? 자 가볍게 생각들 하라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나는 죽을 때 밤 여객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겠어 그래서 무거운 돌을 넣은 바랑을 매고. 끈은 단단하게 조여 매야 하겠지. 가판위에 혼자 서서 어두운 바다를 구경하다가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 한 후에 슬적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야. 그러면 몸은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 않고 내 시체는 물고기들의 밥이 되겠지. 나는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 할 것이야. 이 나이가 되도록 많은 생명들의 신세를 졌으니 죽어서 여러 생명들의 먹이가 되는 것도 좋지 않겠어."

그후 가을은 점차 깊어 갔고. 단풍이 지기전에 만행을 다녀 오신다고 나가신 노스님은 단풍잎이 다 지고 겨울이 와도 영영 돌아 오시지 않았습니다.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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