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학은 엄마의 개학
아이들 방학은 엄마의 개학
  • 강수인
  • 승인 2012.02.07 08:5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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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친구, 그리고 기다림

아이들 방학은 엄마의 개학이다. 부족한 공부에 취미활동 하랴, 체력 단련하랴 아마 집집마다 알찬 계획을 세우고 바삐 지내고 있을 것이다. 개학이 다가오면서 아이들은 밀린 숙제하느라 분주하겠지만 엄마들은 그 시간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 집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아침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아침준비를, 아이들은 자기가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갖는 수다시간은 식사 후 이삼십분이다. 그 시간이야말로 솔직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서로 앞을 다투어 기쁜 일, 힘든 일, 속상했던 일을 얘기하다보면 끝이 없어서 항상 마무리는 내 몫이다.

   느림은 곧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또, 배려와 존경심으로 이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어린 왕자'에서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
오늘은 둘째 아이가 요즘 읽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가 되었다. 제목은 '어린 왕자'.

언제 읽었는지 모자속 노란 보아구렁이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물가물했다. 무슨 의미인지 머리를 갸웃거리는 아이에게 그건 좀 어려운 책이라고 말하고는 같이 읽어보기로 했다. 한쪽은 내가, 한쪽은 아이가 읽어가며 단원이 끝날 때마다 아이와 얘기하면서 의미를 더듬어 보았다. 그 중에서도 자기 별에 두고 온 장미꽃 한 송이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야기가 제일 가슴에 와 닿는다.

장미꽃과 다투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러 별들을 다니다가 왕자는 지구에 오게 된다. 거기서 수천 개의 장미도 보고, 친구가 되자는 여우도 만난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친구가 되고 싶으면 자신을 길들여보라고 말한다.

"우선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서 풀 위에 그냥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쳐다보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돼. 말이란 가끔 오해를 낳기도 하니까. 그러면서 매일 조금씩 내게로 다가오는 거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효과적이야.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행복을 느끼게 되겠지. 그리고 오후 네 시가 되면 난 가슴이 뛰어 안절부절못할 거야.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는 거지.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불쑥 나타난다면 난 언제쯤 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잖아. 그래서 예의가 필요한 거야."

그러면서 어린왕자도 자기 별에 두고 온 장미만이 자신에게 특별하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길들여진 친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꽃을 위해 많은 시간을 같이 했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기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친구가 된다는 것,  참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 같다. 더욱이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가끔씩은 상대에 대해 다 알았다는 착각도 하고, 빨리 친해 보려는 마음에 말도 트자고 재촉하고 그러지 못하면 상대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책과 친구가 된다는 것, 아이와 친구가 된다는 것, 부부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다 같은 기다림의 연속 같다. 요즘 느림의 미학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어디는 슬로우 시티(slow city)를 만든다고도 한다. 느리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존경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 만나는 그 누군가와 “아, 그렇구나”하고 박자를 맞추고 공감을 나눈다면 당신도 또한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밤 여우가 비밀을 또 하나 알려 준다.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보면 가장 잘 볼 수 있다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미국 교육 방식에 대해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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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븐 2012-02-08 17:43:49
컴퓨터와 TV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아이들 독서가 그렇게 힘들다네요.
지면이주는 여유로움을 배우고 싶어요.

첫마을 2012-02-08 17:12:35
재미있게잘읽고있습니다
저도아이키우는데 도움이되는군요

오뚝이 2012-02-08 16:32:22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사실 빨리빨리 문화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쉽게 사귀고 쉽게 실망하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배려하는 그런 문화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강수인씨 글이 기다려 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