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사법부, 그리고 대한민국...이게 나라냐?"
"방탄 사법부, 그리고 대한민국...이게 나라냐?"
  • 김선미
  • 승인 2018.12.13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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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 방탄 소년단도 울고 갈 '방탄법원'
토붕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농단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성공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공(?)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방탄소년단이 K-POP 한류를 넘어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혁혁한 공이 아닐까 싶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방탄법원’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별 황당한 연상 작용까지 하게 된다.

‘혹시나’ 했던 일은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누가 뭐라 해도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법원은 사법농단과 관련해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거의 없다.

사법농단 주역들의 압수수색 영장이 ‘주거의 평온을 해친다’는 등,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줄줄이 기각된 판에 감히 전직 대법관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방탄법원’ ‘방탄사법부’라는 들끓는 여론에도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구속영장을 기각해왔던 법원의 전력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이기는 하나 국민적 허탈과 공분마저 방탄으로 막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주거 평온 해쳐 영장 기각한 법원, 박·고 전 대법관 역시 기각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낸 박병대, 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수하였던 임종헌 전 차장을 비롯 사법농단에 연루된 수십 명의 판사들은 “수뇌부의 지시를 받아서 한 일”이라고 실토하는데 정작 법원은 “밑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며 윗선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재판개입, 법관 사찰의 최정점에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근처는 가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충성심에 불타’는 아랫사람들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오버했다는, 이걸 믿을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이미 구속 기소된 임 전 차장만 홀로 책임을 떠안아 피의자가 아닌 ‘희생양’이 될 판이다.

윗선 지시 따른 임 전 차장만 구속, 피의자 아닌 ‘희생양’ 될 판

‘토붕와해(土崩瓦解)’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진다는 뜻으로, 어떤 조직이나 사물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림을 이르는 말이다. 캐도 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고구마 줄기 뽑히듯 줄줄이 드러나고 있는 사법농단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온 사법부의 신뢰가 지반이 무너져 기와가 깨지듯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작금의 사태는 나라를 결딴내다시피 한 국정농단보다 위중함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국정농단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단죄라도 내려졌다. 하지만 대법원장을 비롯한 몇몇 수뇌부가 사욕에 매몰돼 자발적으로 사법권 독립을 권력에 갖다 바친 사법농단은 꼬리자르기와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견고한 ‘방탄’에 막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방탄에 막힌 나라를 결딴낸 국정농단 보다 더 위중한 사법농단

대법원장을 비롯한 최고위 법관들이 청와대와 함께 자국을 수탈한 나라의 전범기업을 변호하는 로펌과 결탁해 재판에 개입하질 않나.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나.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사법농단 사례의 압권은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멀쩡한 판사를 정신병자로 몬 일이 아닌가 싶다. 시정잡배도 부끄러워 차마 하지 않을 일이다.

더 기막힌 것은 ‘정신병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의 증언마저 조작했다는 것이다. 연루 법관들은 평소 법관으로서 이러한 사건의 재판을 맡았다면 과연 어떤 판결을 내렸을지 궁금해진다.

시정잡배도 안 할 멀쩡한 법관 증언 조작해 정신병자 몰아

“사법농단을 다루는 태연한 보도와 일부 법관들의 태도가 더 충격”이라는 어느 현직 판사의 지적처럼 재판 개입과 법관 사찰은 그 자체로도 경천동지할 노릇이지만 관련자들의 염치와 부끄러움 없는 태도가 더 놀랍다. 부끄러움은 사욕과 권력을 탐한 이들의 몫이 아니라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평범한 법관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민심은 광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제는 사법부를 향해 외쳐야 할 판이다. “이게 나라냐!”고.

민주화 이후에는 사법부가 비록 보수적이기는 해도 ‘법률과 양심’에 의해 판결하리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보수적인 판결이 나오는 것은 법관의 보수성 때문이라 여겼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법이고 상식이니까 말이다.

국민을 불신지옥에 빠뜨린 사법부, 염치·부끄러움도 없어

이제는 이러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법부를 의심하게 된다는 것, 그것은 국정농단 그 이상의 참담함이다.

방탄소년단의 그룹명은 빠르게 움직이는 총알처럼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법부는 과연 어떤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철옹성 같은 ‘방탄법원’을 고수하는지 모르겠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교수신문이 선정한 지난해의 사자성어다. 한 해의 끝자락, 사법부의 파사현정을 기대하는 것은 한낱 연목구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들이 더 이상 ‘사법부 불신지옥’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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