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취,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에취,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 조한수
  • 승인 2013.01.27 06: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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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수 칼럼]뉴질랜드에서 겪은 정말 웃기는 재채기 예절

 
뉴질랜드에 간지 얼마 안 되어서 경험한 오래 전의 일이다. 한 조그만 다운타운을 걸어가다 자연스럽게 재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지나가던 한 행인이 “God bless you"(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하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당시 나는 속으로 ‘아니, 저 사람이 내가 목사인줄 어떻게 알았지?’라고 생각하며 “Thank you"라고 답례를 했다. 그리고 난 이후, 한 키위(뉴질랜드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친구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먹다가 역시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 부부 역시 ”God bless you"라고 이중창을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대학교수답게 재채기에 대한 오랜 고사를 들려주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옛날부터 옆에 있는 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독일인들은 ‘건강(Gesundheit)'이라고 말하고 이태리 사람들은 ’행복(Felicita`)이라고 말한다. 아랍사람들은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목례를 한다. 이같이 나라마다 재채기와 관련한 배려 문화가 각양각색이다.
그럼 이런 관습은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을까? 그 친구는 고대사로 뛰어 올라 재미있는 역사를 들려주었다.

오랜 세월 동안 고대 사람들은 머리에 담겨져 있는 삶의 진수인 사람의 영혼이 재채기를 통해 갑자기 바깥세상으로 빠져 나간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생각은 임종을 앞둔 병자들이 재채기를 하는 것에 의해 더욱 굳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재채기를 참으려고 애를 쓰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혹은 참을 수 없는 재채기를 하게 될 경우엔, 재채기 즉시 행운을 비는 인사를 주변사람들로부터 받았다. 세상의 문화가 과학적으로 발달하던 기원전 4세기경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의술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두 학자들은 콧구멍을 통해서 들어간 이물질에 대한 머리의 반응으로 재채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병든 사람이 재채기를 하는 것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만일 이런 불길한 재채기를 주변 사람이 할 때에는 ‘장수하기를’ 또는 ‘건강하기를’ 그리고 ‘주피터 신의 가호가 있기를’등의 덕담을 하라고 이들은 권유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로마의 의사들은 재채기에 관한 학식과 미신을 한데 묶어서 더욱 확산시켰다. 당시 로마인들은 건강한 사람이 하는 재채기는 닥쳐올 질병이나 나쁜 귀신을 몰아내려는 신체의 신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채기를 참는 것은 오히려 몸 안의 병을 키우는 것이고 결국 허약함과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고 충고를 했다. 그러한 결과, 재채기를 하는 유행이 전 로마 제국에 가득하게 되었고 재채기 후에 하는 새로운 덕담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즉 시원하게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는 ‘축하한다’고 덕담하고 이제 막 재채기가 나오려고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있기를’ 라고 하는 격려를 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우리 한국에서는 생소하고 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재채기 후에 ‘God bless You'(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라는 기독교적 덕담은 조금 다른 유래를 갖고 있다.

배려와 덕, 삶의 체질 본증되어야...세종시민 모두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이는 로마의 그레고리 교황의 통치시절 그의 명령으로 시작이 되었다. 당시 지독한 전염병이 이탈리아 전역을 휩쓸고 있었는데 그중 불길한 징후로 심한 만성 재채기를 하는 환자들이 급증했다.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런 징후를 보이고 난지 얼마 후에는 곧바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재채기는 임박한 죽음의 신호로 여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그레고리 교황은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모든 백성들에게 간청한 후, 재채기를 하는 환자에게 ‘건강하기를’이라는 평범한 덕담 대신에 더 급박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라는 기원을 말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줄 사람이 재채기한 사람 옆에 없다면 재채기한 사람 스스로가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큰 소리를 지르라고 충고했다.

그레고리 교황의 이러한 명령은 질병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재채기를 심각하게 간주하던 태도는 오늘날도 남아있어서 하나의 서방의 예절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그 친구의 재미있는 설명이었다.

한국에 와서 필자가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남을 위한 배려, 약자를 위한 배려와 격려가 참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좁은 땅에서 1억의 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다보니 스스로가 생존하기도 벅찬 여건이기에 그러할 것이라고 스스로 자답(自答)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할수록 배려와 덕은 살아가는 삶의 체질이 되어야 하고 본능이 되어야 한다. 우리 시구 안에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살고 있는 줄 안다. 장애이웃들, 그리고 빈곤한 저 소득층, 또한 외국에서 온 다문화 가정들 그 부류는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자들에 대한 세종시와 국가 그리고 시민 각자는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요사이 우리 세종시 안에서는 종합병원유치 문제로 의견이 갈려서 시 행정부와 의회가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도로 이름을 두고 현지 원주민들과 새로운 입주민들 사이에 갈등하는 소식들을 접한다.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라고 여겨지지만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작은 것에서 양보와 배려하는 습관은 이렇게 큰 사업을 하는 데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 그러한 것이 체질이 안 되다보니 이렇게 의견이 대립될 때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하기 보다는 갈등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세종시는 그야말로 시를 꾸려 나가는 것도,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충청도 식이나, 대한민국식이 되어선 안된다. 세계가 주목하도록 모두가 품격이 있으면 좋겠다. 상대가 재채기하면 이를 흉보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배려하는 수준있는 우리의 새로운 문화의식이 명품도시로서의 트래드 마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높은 품격과 의식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을 명품화 시킨다. ‘에이취~’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조한수, 서울출생, 미국 Lee University졸업(B.Sc), 동대학원 졸업(M.div), 총신대 수학,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수료, 뉴질랜드 선교 20년간 사역, 현재 세종개혁교회 목회 사역 중irchur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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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2013-01-29 19:48:19
내용있는글 역사와기원을알게되니 재미있고 내용을알려주셔서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