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드라마, 꿈같은 스쿨밴드..'ELMUNOS' 이야기
한편의 드라마, 꿈같은 스쿨밴드..'ELMUNOS' 이야기
  • 세종의소리
  • 승인 2018.12.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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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종촌초 장민주 교사, "우연히 시작한 스쿨밴드, 화려한 공연 주역으로"
종촌초 장민주 교사

지난해 벚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음악실로 갔다. 이따금씩 그랬던 것처럼 그 날도 피아노를 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 방음벽이 잘 갖춰진 덕분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기에는 좋았다.

그런데 그 날은 낯익은 개구쟁이 삼총사였던 6학년 남학생 세 명이 먼저 음악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혼자 피아노를 치며 피곤한 심신을 달래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 평화로운 연주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음악실에 무려 네 대나 비치된 드럼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드럼 방과 후 수업 덕분에 음악실에 드럼만 네 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세대의 드럼 소리가 동시에 울려대는 상황에서 나의 연주만을 즐기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장난감을 갖고 놀 듯 신이 나서 드럼을 치고 있는 학생들을 강제로 내보내기에는 어쩐지 미안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이 교실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자 피아노였기에 일단 전원을 켰다. 내가 원하는 곡을 치며 내 소리만을 즐기기는 불가능했지만 그날따라 피아노 치기를 포기하기도 싫었다. 그들의 드럼 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드럼의 8비트 기본 박을 신나게 두드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서로 자기가 더 잘 친다고 우겨대며 이따금씩 내 눈치도 흘끔 보았다. 그들 또한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 드럼을 치러 왔는데 예상치 못한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개구쟁이 삼총사의 드럼 연주를 감상하다가 전자 피아노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피아노의 음색을 ‘String’으로 바꿔서 저들과 함께 연주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8비트 기본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예고도 없이 나의 건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특정 곡을 연주했던 건 아니다. 단순히 몇 개의 코드를 반복적으로 들려줬을 뿐인데 드럼과 건반의 조합을 갑작스럽게 경험하게 된 학생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다. 그들은 이른바 신세계를 경험한 듯 두 개 악기의 합주에 놀라움과 찬사를 표시했다.

그날 우연히 음악실에서 만난 나와 세 학생들은 그렇게 드럼과 건반의 합주가 만들어낸 음악의 신세계를 얼떨결에 체험하게 됐다. 하지만 이내 점심시간이 끝났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엘무노스(ELMUNOS) 밴드 동아리 학생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다음날 전날과 같이 건반 연주를 하러 음악실로 갔다. 그런데 또, 그 개구쟁이 삼총사 6학년 남학생들이 음악실을 점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전날 어설픈 합주를 해본 터라 내친김에 이번에는 K-POP 중 한창 유행하고 있는 곡을 건반으로 연주해 드럼과 합주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혼자 건반을 치며 지친 심신을 달래러 왔지만, 학생들과 함께 이틀째 합주를 하게 된 셈이었다. 그날의 점심시간도 십분 넘게 학생들과의 합주로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다음 날 점심시간. 나도 모르게 또다시 음악실을 찾았다. 그런데 그 친구들도 역시 와있었다. 3일 연속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그들도 음악실에 제 발로 찾아간 것이었다.

합주가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화창한 봄날의 점심시간에 나와 학생들이 어떤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합주한 경험은 나와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무료한 학교생활에 조금은 신선한 재미를 준 듯 했다. 약속한 적은 없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점심시간에 음악실에서 건반과 드럼을 연주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 밴드하나 만들어도 되겠다.”

“우와! 진짜 멋지겠다! 만들어요, 우리!”

제안 아닌 제안 같은 말은 어떠한 계획을 갖고 내놓은 말은 아니었다. 혈기 왕성한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들이 앞뒤 생각해 보고 반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말을 하고 보니 갑자기 현실적인 문제로 생각해 보게 됐다.

진짜 밴드를 만든다면 가능한 일일까? 밴드 활동에 필요한 악기로서 학교에 갖춰진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드럼 밖에 없었다. 기존 전자 피아노는 밴드 연주용으로는 맞지 않았다. 밴드 연주용 건반 뿐 아니라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 그리고 이들에 연결된 앰프 일체도 필요할 터이다.

연습은 언제 할 수 있을까? 어떤 학생들이 할 수 있을까? 어떤 목적을 갖고 할 것인가? 내가 난생 처음 해보는 동아리 운영을 시작할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일까?

마침, 시교육청에서 내려온 공문이 하나 눈에 띄었다. ‘학교 예술 동아리 지원 사업’이었다. 예산 100만원을 지원해준다고 쓰여 있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100만원 정도의 예산이면 그럭저럭 저렴한 악기로 구입해 밴드 모양새는 갖출 것 같았다. 그리고 밴드 동아리를 만든다면 예술 동아리 범주에 당연히 들어가기 때문에 시험 삼아 계획서나 제출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서를 쓰고 나서 개구쟁이 삼총사에게 말했다. (그 때쯤, 나와 개구쟁이 삼총사는 거의 3주째 매일 음악실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합주를 하며 놀던 터였다.) 만약 예산이 지원되면 악기를 사서 정식으로 밴드를 한번 만들어보겠노라고.

아이들은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솔직히 아이들과 나에게 밴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간절함은 없었다. 우린 그저 점심시간의 합주가 즐거웠고, 그것은 학교생활의 작은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신청했던 계획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예술 동아리 사업 예산을 받는 운 좋은 학교들의 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포기할까 말까 생각할 무렵, 교장 선생님께서 예산을 지원해 줄 수 있으니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써놓은 계획서가 조금 아깝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밴드 동아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책임감도 들어 결국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예산으로 밴드 악기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2017년 결성한 엘무노스(ELMUNOS) 밴드 일원

밴드 동아리를 만든 첫 번째 목적은 매일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합주함으로서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밴드 동아리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 보았다.

‘Every Lunch time with Music No Stress = ELMUNOS (엘무노스)’

라틴어 같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매일 점심시간의 낙(樂)으로 자리 잡은 밴드 합주인지라 밴드 동아리의 창립 동기이자 목적을 꼭 담고 싶었다. 같이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에게 이름에 대한 자문(諮問)을 받았다. 그다지 이상할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도 없단다. 마침내 밴드의 이름을 ‘엘무노스(ELMUNOS)’로 결정했다.

악기가 한 대, 두 대 들어오고, 함께 할 아이들이 모였다. 이제 개구쟁이 삼총사 이외에도 관심 있는 아이들이 소문을 듣고 엘무노스의 일원이 되기 위해 찾아왔다. 악기 구입을 시작한지 한 달 후, 악기와 엠프가 모두 갖춰지고, 악기별 연주자도 다 모였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봄날, 우연히 만나 시작한 개구쟁이 삼총사들과의 합주 놀이가 어엿한 ‘스쿨 밴드’를 탄생시킨 것이다.

5월부터는 구성원 모두가 자리를 잡았다. 밴드의 이름대로 매일 점심시간 만나 합주하기로 했다. 사실, 학원 등의 각종 개인적인 일정으로 방과 후에는 동아리 활동을 할 엄두조차 못내는 아이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출석률이 좋았다. 게다가 굉장히 의욕적이어서 아침에도 개인 연습을 올 정도였다. 하루 연습량은 소소할지 몰라도 그것이 쌓여가자 학생들의 실력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밴드 합주를 어디 자랑하고자 하는 목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합주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나의 동아리 운영 철학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 학생들의 합주 소리를 들은 교장 선생님의 전폭적인 격려에 힘입어 결국 세종시 대표로 서울 잠실에서 열리는 전국 학교 예술교육 페스티벌 동아리 부문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설레고 값진 경험이었다.

첫 경험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공연의 매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엘무노스 콘서트라 할 수 있는 교내 공연, 각종 학교 행사 응원 공연, 세종 시민축제 공연, 세종 학생 축제 공연, 전국 학생 밴드 경연대회 참가 등 소소하고 미약한 출발에 비해 너무나 화려한 공연 무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지도교사로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수고로움보다는 보람이 컸기에 2년째 엘무노스를 운영하고 있다.

교단에 처음 섰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 중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벚꽃 흩날리는 날 만났던 개구쟁이 삼총사를 비롯한 엘무노스 1기 학생들과 졸업식 전날, 마지막 동아리 합주를 마쳤을 때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저희들이 일 년 동안 너무 즐겁고 신났어요. 큰절 한번 올리겠습니다.”

여덟 명의 학생들이 갑자기 교실 바닥에서 일제히 큰절을 하는 모습에 그만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눈물과 감격이 밀려왔다. 동아리를 시작할 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 인생의 드라마이자, 교단에서 경험한 가장 꿈같은 장면이었다.

엘무노스(ELMUNOS) 밴드가 세종호수공원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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