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처럼 편안하게 어르신 모시고 싶어요”
“내 집처럼 편안하게 어르신 모시고 싶어요”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8.11.0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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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고향 세종시 금남면 성덕리에 요양원 세운 홍창수 대표
홍창수 성덕효성원 대표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땅에 어른신들을 위한 요양원을 개원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홍창수 성덕효성원 대표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땅에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원을 개원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오랜 객지생활 끝에 말년에 노모가 사시는 고향에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어르신들을 모시는 요양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세종시 금남면 성덕리에 요양원(성덕효성원)을 개원한 홍창수 성덕효성원 대표이사는 고향땅에 꿈을 실현해 감개가 무량한 듯 소감을 밝혔다.

홍창수 대표는 금남면 성덕리 264번지에서 당시 성덕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 홍석우(2000년 작고) 선생과 모친 이진 여사(88)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지금은 42녀의 형제가 모두 타향에서 살고 성덕리 고향에 노모가 살고 계신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홍 대표는 성덕초(25)와 금호중(19)을 졸업하고 시골에서 좀처럼 가기 힘든 명문 대전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모의 기대를 받았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13년 간을 근무하고 직장을 옮겨 한국능률협회에서 컨설팅 업무(공장관리기술사 자격 취득)4년 간 배운 후 기업체의 경영혁신을 지도해주는 프로인경영컨설팅회사를 차려 대표로 현재까지 업무를 보고 있다.

객지에서 열심히 맡은 직업을 하다 보니 항상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고향 성덕리 본가에서 홀로 사시길 원하는 노모와 대전에 계신 연로하고 병약한 장인, 장모였다. 대가족제도에서 급격한 산업화시대를 거쳐 21세기 정보화시대 초고령 개인사회를 맞으며 노인 모시기는 이제 개인과 가정을 떠나 국가가 나서야 하는 과제가 된 것이다.

요양원과 인연이 된 것은 장인, 장모가 급격히 노쇠해지면서 아내인 남현(성덕효성원 원장)씨와 같이 2005년 대전으로 이사 오면서 부터이다. 2007년에는 장인집에서 요양원을 시작하였고, 200912월 대덕구 비래동에 건평 3304층 규모의 성덕요양원을 신축 개원하여 본격적으로 요양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홍 대표는 부인 남현 원장과 장인, 장모를 열심히 모시면서 요양원을 운영하였고 대전 성덕요양원에서 두 분의 임종까지 지켜보았다. 이후 고향 성덕리에서 홀로 사시는 노모를 위해 귀향을 결심했고, 올해 4월 대전 성덕요양원을 문 닫고. 바로 금남면 성덕리에 상덕효성원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준공을 마치고, 111일부터 개원했다. 성덕효성원은 지역주민들의 축하 속에 11(일요일) 오후 1시에 개원식을 갖는다.

홍 대표는 그동안 금남면에 요양원이 없다 보니까 인근 대전, 청주, 공주에다가 멀리는 서울지역까지 어르신들이 나가 계신다자식과 친척, 친구들이 사는 고향땅에서 머물게 되어 좋아하신다 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햇볕이 잘 비추이는 오후 시간에 요양보호사들과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어르신들이 햇볕이 잘 비추이는 오후 시간에 요양보호사들과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그는 물질만능시대에 효도의 개념이 점차 쇠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효도는 물질적인 것보다 어르신을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자기 집처럼 편하게 사실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고, 종사자들이 친부모 모시듯 효도에 정성을 다한다는 뜻으로 효성원(孝誠園)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홍창수 대표의 호는 약산(若山)이다. 어느 도인이 산처럼 흔들림 없이 항상 그 자리에서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호이다. 그래서 홍 대표는 이해득실 따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인생의 말년을 고향에서 살겠다는 각오이다. 요양원 뒤편에 조그만한 약산재(若山齋) 건물은 그의 서재이자 수행터이다. 금강과 원수산, 정부청사가 보이는 명당 성덕효성원에는 또 한 사람의 세종인이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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