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에는 어리둥절했다. 이제 교사로서 일 년 반. 고작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 교사로서 어떤 글을 보여드려야 할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는 충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교사로서 ‘나’의 이야기는 엄청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의 종착점은 단순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떤 교사인가?’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풍겨오는 카리스마라던가, 한없이 아이들만 사랑한다던가, 똑똑하거나 일을 잘하거나.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어른’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나는 저 이상적인 이미지인 ‘어른’에서 조금씩 엇나간 사람이다.
올해 초. 학교에서 자기소개서 특강이 열렸다. 작년 3학년을 맡으며 자소서로 꽤나 많은 고생과 보람을 함께 느꼈던 터라 유명한 강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은 나의 맘을 설레게 만들었다. 유명한 사람들은 자소서를 어떻게 쓰라고 하는 지 너무 궁금했고, 나와는 어떤 다른 시선으로 자소서를 보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들어간 시청각실의 적당한 가운데 자리에, 학생들의 사이에 껴서 특강을 듣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강사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무한의 긍정을 보내던 와중, 강사님께서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여기 교사가 있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굳이 거기서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기에 수줍게 손을 들자 강사님께서 1초간 나를 게슴츠레 쳐다보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바꾸시며 마이크를 꽉 잡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니가 교사야?”(물론 이 농담과는 별개로 특강은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이 농담으로 분위기가 정말 좋아졌다.)
나에게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스했던 5월, 호수공원에서 개최되었던 ‘2018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행사 부스 운영을 위해 나갔을 때 방송반 아이 2명을 양 옆에 끼고 다른 부스로 가다가 “거기 세 친구! 저희와 함께 과학에 대해서 논하지 않으실래요?”라는 영재고 학생의 의도치 않은 개그로 같이 있던 방송반 아이들이 빵 터진 것처럼 확실히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 심지어 학생의 눈에도 교사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올 해 여름. 나와 방송반 아이들은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냈다. 말 그대로 무진장 뜨거웠었다. 올해 초 업무를 받으면서 ‘방송’이 나의 일로 추가되었다. 다행히 새로운 기계를 만지고, 연구해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방송에 대해서는 1도 모른다. 애초에 방송이라는 것 자체가 보는 것이 쉽지 제작 과정을 접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던 나와는 반대로 2학년 아이들은 ‘무언가’를 하길 나에게 바라고 있었다.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다.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름대로 본 것들을 바탕으로 활동을 제시해주었지만 언제나 마지막에 나오는 결론은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뿐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하는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섣부를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마침 구원의 빛줄기처럼 ‘학교로 찾아가는 방송부 활성화 특강’이 등장했다. 그 특강을 시작으로 우리 방송부는 ‘학교뉴스경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것이 뜨거운 여름의 시작이었다. 개회식을 시작으로 세종시청,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특강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고, 밥을 먹고, 함께 교육을 듣고. 특강과 특강 사이의 뉴스 제작에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뙤약볕 아래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아이들은 더위 속에서 지쳐 집에서 부모님을 보는 것보다 선생님을 많이 본다며 징징거리면서도 행복함을 드러냈고 나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한 편으로는 함께 방송을 몸으로 서서히 익혀가며 스스로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더위 속에서 엄청난 일들을 겪으며 간신히 뉴스를 2편 제작했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1차와 2차 예선을 생각보다 우수하게 통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본선. 여기서 우리 방송반은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많은 이들의 기대를 품고 소리가 출력되지 않는 엄청난 사고와 함께 여름의 끝을 맛보았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했으면 더 즐거웠을걸!,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좋은 상을 타지 못한 아쉬움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이 되어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도 달래고, 나 자신도 달랬다. 어렸을 때부터 교사를 꿈꿔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교사를 꿈꿔왔고, 다른 꿈에 한 눈을 살짝 팔더라도 어김없이 교사로 돌아왔다. 부모님도 꿈에 대해서 딱히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는 그게 정말 어울린단다.’라는 표현만 하실 뿐이었다. 좋은 말로 하면 교사는 나의 ‘천직’이고, 비꼬아 표현하자면 다른 직업의 가능성은 0%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교사’라는 직업에서 ‘즐거움’을 갖고 있고, 계속해서 찾게 될 것이다. 사실 ‘즐거움’이 나의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인 ‘어른’이라는 단어와 크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결국 현실인 것이다.
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시간이 알아서 잘 메꿔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은 ‘즐거움’ 속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어른’으로 봐주지 않아서 감사하다. 아이들이 어려워하지 않고 나에게 쉽게 다가올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던졌던 ‘나는 어떤 교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찾는 교사라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이 즐거움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와 함께한 아이들이 그늘에서 선선한 바람은 맞이하며 잠깐 짬을 돌릴 때 ‘즐거웠지’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교사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