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어린이집 안보낼거야"
"내 아이는 어린이집 안보낼거야"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8.10.3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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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수기 공모 대상작] 김경란-'선생님은 희망입니다', 김보미-'어린이 집은 최고의 선물'

세종시 어린이집 연합회는 매년 보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들을 소재로 한 보육수기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어린이 집 학부모와 근무 교직원을 대상으로 양육자, 보육교직원으로 나눠 수기를 모집했다. ‘공감’, ‘소통’, ‘화합’을 함께 나누는 보육인들의 잔치인 ‘보육인 한마음대회’를 앞두고 보육 현장의 고뇌를 담은 수기 2편이 대상으로 발표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는 일을 두고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부모의 심정과 실제로 그 속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교직원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기는 보육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세종의 소리’는 대상을 차지한 ‘선생님은 희망입니다’(교직원 김경란)와 ‘어린이 집은 최고의 선물’(양육자 김보미)을 전제해 어린이집 현장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저 한다. ‘보육인 한마음 대회’는 내달 8일 오후 2시30분부터 세종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편집자 씀

세종 어린이집 연합회는 매년 보육 수기 공모전을 열고 보육인대회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사진은 2017년 보육인 한마음 대회 모습
세종 어린이집 연합회는 매년 보육 수기 공모전을 열고 보육인대회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사진은 2017년 보육인 한마음 대회 모습

◆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김보미(고운 어린이집, 양육자)

김보미

잊을만하면 터지는 것이 어린이집 학대사건사고뉴스이다. 2년 전만해도 그런 뉴스를 접하면 심장이 벌렁 벌렁거리고 눈물이 나고 ‘나는 어린이집 보내지 않으리’ ‘무조건 말 잘 할 때 최소 36개월 이상은 돼서 보내야지’ 등 다짐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신랑은 집근처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생긴다면서 ‘이제 곧 둘째도 태어나면 너도 힘들고, 첫째도 어린이집 가게 되면 배워오는 게 더 많을 거야’라며 설득을 하곤 했는데 그말이 서운하게 들릴 정도로 나는 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린이집 얘기만 나오면 주책맞게 눈물이 나면서도 자의반 타의반 입소신청을 하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합격 전화가 오고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그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몇 시간 동안의 걱정과 미안함에 몇날며칠이 힘든 나날이 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민망함과 쑥스러움에 피식 웃어버린다.

이렇게 좋은 곳 인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보냈을걸...오히려 어린이집을 늦게 보낸 것을 오히려 딸에게 미안해하는 요즘이다.

36개월에 첫 기관생활을 하게 된 딸은 엄마 껌딱지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적응을 잘했고, 집에 오면 선생님이 올려준 일과사진을 보며 엄마와 하루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 해주는 덕에 그 시간만큼은 엄마도 마치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 가곤했다. 어린이집 생활을 얘기 할 때의 아이표정을 보면 행복·즐거움·기대감이 가득 차 있는 들뜬 마음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엄마는 너무 뭉클하고 또 뿌듯하다.

첫째를 그렇게 36개월에 보내고 어린이집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어버린 후 둘째는 두 돌이 되기 전 보냈다. 처음에는 첫째보다 일찍 보낸다는 미안함이 살짝 있었지만 지금 아니면 이 좋은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을 거란 걸 알았기에 쿨하게 보냈다. 두 돌이 안됐으니 혼자 밥을 먹을 수도, 단체생활을 안해 봐서 규칙도 모르고, 더군다나 엄마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으니 첫째보다 더 걱정된 그 상황, 그렇지만 둘째를 믿었고, 우리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믿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을 다닌 7개월의 생활이 지난 지금, 변화된 모습이 너무나 확연히 보여 이게 교육의 힘이구나 싶은게 머릿속에 스칠 때가 많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밥 먹기 전 감사노래를 하는데 왜 그리 웃기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감사하다는데 기분은 좋더라. 장남감 정리도 하고, 차례 차례라고 중얼중얼 거리기도하고... 역시 이게 꾸준히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습관이 아닐까싶다.

두 아이들을 보면서 공부보다는 하나의 인격체로 좀 더 바르게 밝게 자랐음 하는 게 부모마음이기에 늘 선생님과 소통하길 원했고, 선생님도 아이들이 고쳤음 하는 게 있으면 바로 얘기해주시니 가정과 어린이집의 관계는 무엇보다 나에겐 너무 소중했다. 선생님과의 관계는 “믿음” 이 하나만을 가지고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니, 어린이집도 선생님에게도 아이들만큼이나 나에게 또 다른 안식처이자 아이들의 고민상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육아에 대해 조언이 필요할 때면 선생님들께 팁을 얻기도 하고, 하루 활동을 엄마가 지켜보듯 엄마마음으로 꼼꼼하게 활동수첩에 적어주시는 선생님의 글을 보며, 우리 애들이 어떤 활동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집에서 어떤 역할을 더 해줘야할지 엄마로써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바로 어린이집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다니며 많이 배우듯, 나도 어린이집을 보내고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그만큼 성장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보니‘부모교육’이란 프로그램을 듣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교육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였다. 나름대로의 육아기준을 가지고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기준과 교육의 충돌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엄청 많이 받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잘못했었나?’‘아직 아긴데 내가 너무했어.’‘엄마가 미안해’ 자책도 하고, 자는 아이를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다시는 교육을 듣지 않겠다고 회피하다가도, 새로운 교육 일정이 소개되면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신청을 하게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나도 실천하다보면 뭔가 나아지겠지하는 그런 엄마마음으로 부모교육을 열심히 찾아 들으려고도 하고, 어린이집에서도 많이 추진해줬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우리 어린이집은 부모급식모니터링을 한다. 식단표만 보다가 직접 가서 주방도보고 배식도하고 먹어보는 기회가 몇 번 있는데 난 너무 맛있었다.

지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날 첫째가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게“엄마! 어린이집처럼 반찬 이렇게 채워서 줘~ 어린이집 밥도 맛있고 엄마가 해주는 것도 맛있어”라고 얼굴을 빤히 들고 말을 했다 . 어? 이거 나 위로 하는 건가? 엄마 칭찬인지 어린이집 칭찬인지 아님 어린이집처럼 맛있게 반찬 많이 해달라는 건지 의문을 가지고 있던 그 즈음에 부모급식모니터링을 지원 했었다.

그날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엄마보다 더 정성스레 차려지는 식판을 받아들고 씩씩하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집에서와는 또다른 그저 행복한 일상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자주 못해주는 반찬도 골고루 해주다보니 그 식단하나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에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많지만 이렇게 부모들을 위한 교육정보나 프로그램 정보, 건강정보가 자주 올라온다. 이런 걸 적극 활용하다보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크게는 가정에도 더 나은 삶을 선물해주지 않을까싶다. 이렇게 무언가 참여를 하고 온 날은 밤늦은 시간 나에게 차 한 잔과 생각정리 할 숙제를 주지만 그 어떤 것과 바꾸지 못할 그 이상의 가치를 주기에 너무 뿌듯한 것 같다.

우리집은 아침마다 전쟁이다. 두 아이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서 어린이집에 빨리 가야 한다며 아침부터 아빠엄마를 재촉하고, 등원길 어린이집 앞에선 아빠엄마는 안중에도 없이 너무 신나 다다다~ 뛰어 들어가는 애들을 볼때마다 ‘그래...이렇게 즐겁게 가고 싶은 곳! 이여야말로. 진정한 어린이집이지.’생각한다. 애들은 말과 표정으로 다 표현되듯 어린이집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며 그날 있었던 일을 어찌나 조잘조잘 거리며 얘기하는지. 듣는 엄마도 이미 어린이집 원생, 새싹반 솔잎반 어린이가 되어있는 기분이다.

오늘도 우리 첫째는 하원길에 ‘엄마, 나 더 놀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내일은 더 늦게 와야해.’하며 팔짝팔짝 뛰는데 그 모습을 보면 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집에 오자마자 간식 먹으면서도 씻으면서도 자기 전 누워서도 어린이집 생활을 얘기해주며 즐거워하고, 속상한 이야기도 해주고, 친구와의 관계도 얘기해주며, 내일은 뭐할건지 들뜬 마음으로 잠을 드는 아이를 보며 ‘난 참 어린이집 선택만은 잘했다’라며 어디 가서 큰소리로 얘기 할 수 있다.

나도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육아로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면서 수다도 왕창 떨면서 스트레스도 날려보고, 어린이집이 있기에 우리 아이들이 재미있게 다닐 수 있고, 그로인해 나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 듯하다.

어린이집 보내고 여유로운 삶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요즘 하루 24시간이 모자랄만큼 나에게 1분 1초도 아깝고 소중한 시간인 것 같다. 처음에는 악기 하나쯤 배워야지 했는데 1년이 다 되도록 못하고 있다. 조만간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 간 사이 무언가 도전하는 엄마! 배우는 엄마! 열정적인 엄마!가 되어 두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사는 엄마가 되도록 파이팅 해야겠다.

◆ "선생님은 희망입니다"...김경란(예그린 빅스맘 어린이집, 보육교직원)

김경란

인생의 굴곡을 넘고 또 넘으며 어느덧 사십 초반의 나이, 나는 아동심리상담을 전공한 전문상담사였다. 시청에서 파견되어 인터넷중독 예방교육강사로 우연히 어느 국공립어린이집에서 교육을 하게 되었다. 딱 삼십분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이었는데도 내가 심리상담을 하며 만났던 내담자들과는 다른 유아들만의 순수함으로 따뜻한 행복감을 느끼며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곳의 보육교사가 부럽게 느껴질 정도의 강한 자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길로 나는 상담을 그만두고 보육교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선택한 일인 만큼 보육교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사랑으로 긍정적이며 열정적으로 상호작용하겠다는 굳은 다짐도 하였다. 그렇게 처음 만 1세담임으로 반을 이끌게 되면서 보육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 딛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상태로 놀라움과 혼란을 반복적으로 느끼며 늘 피로감에 가득 차 퇴근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영아의 어린이집 초기 적응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게 되었던 때인 듯하다. 그 중 한 아이가 집에서는 말을 곧잘 한다고 하던데 원에서는 말 한마디가 없고 혼자 조용히 놀이하다 가는 그런 새침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0세 때부터 원에 적응이 된 영아라 그런가보다 하였지만 상호작용이 전혀 되지 않아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내가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눈만 꿈뻑꿈뻑 뜰 뿐 답이 없는 아이였다. 친구와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혼자 놀이하다 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날도 나와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홀로 놀이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다보고 있으며 서러움에 복받쳐 멍하니 있었다. 그때 문득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볼을 만지며 “션섕님”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이었다. 아이가 내게 처음으로 볼을 만지며 다가서는 것은...어쩜 아이는 함께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지 모른다. 무조건 좋은 보육교사가 되려고만 노력했을 뿐, 진정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한 번 성장하며 보육교사로서의 경험도 쌓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만 2세반을 맡은 지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게 지키고 있다며 자랑했던 내게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엔 허리통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이젠 종아리까지 통증이 내려와 걷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입원을 하게 되고 누워서 2주 동안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직을 하기까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깊이 있게 고민하며 결정한 길이기에 일에 대한 열정과 끈기로 가득 차 있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면서 또 한 번의 좌절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몸이 아프고 나니 나를 돌아보게 되고 다시 보육현장에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내 볼을 만지던 그 아이의 어머니가 보낸 음성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 허리가 많이 아프시지요, 빨리 나아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나는 순간 입원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울먹였다. 아픔의 서러움과 진한 감동이 복합적으로 오가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즈음 나는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원장님께 전했던 참이었다. 점차 기운을 차리고 다리 통증도 없어지게 될 무렵 그 음성하나로 나는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복귀한 첫날 내게 음성을 남겼던 그 아이를 얼마나 뜨겁게 안아주었는지 모른다. 그러자 아이가 “선생님 병원 가지마. 아프지마”라고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해주는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제는 내 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거나 아이가 떼를 부릴 때 비장의 무기로도 써먹게 되었다.

“선생님 병원 또 갈까?”하면서 말이다. 그럼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아니야” 한다. 아직도 그때 그 통증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신기하리만큼 꼿꼿한 허리를 자랑한다. 지나고 나니 모든 상황과 관계에 감사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벌써 작년의 일이 되었다. 이제 만 3세반 담임으로 근무한지 어느덧 7개월이 지나고 있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감사한 것은 첫 해에 맡았던 대부분의 영아들과 3년째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 음성을 남겨주었던 영아가 이제 커서는 내게 “선생님 내 머리 사랑스럽게 묶어주세요”라고 얘기해주고 있는 상황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제는 아이들의 눈빛만 보아도 기쁜지 슬픈지, 배가 고픈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를 알아차릴 만큼의 친밀감이 쌓이고 있었다. 그 시점에 6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있는 어머니께서 아이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며 내게 부탁을 하셨다.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짧아 불안해 할 수 있으니 그 부분을 염려하며 잘 부탁한다는 말씀이셨다. 유아는 동생과 함께 원에 오는데 늘 엄마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등원하던 아이였다. 어머니의 출근과 동시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등원하던 첫 날, 아이의 그 불안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의 출근 시간에 맞춰 일찍 등원하느라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나를 보며 인사하지만 그 행복한 미소는 볼 수가 없었고 무표정으로 일관한 등원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 며칠 동안 아이는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불안의 행동들을 보여주었다. 친구들과 잘 놀이하다가 갑자기 구석으로 가서는 “선생님 애들이 나랑 안 놀아줘요” 하거나 장난감 양보도 잘하던 아이가 친구와 장난감 하나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다가가 “안아줄까?” 하면 내게 안기어 엉엉 서럽게 울기도 하였다. 어떻게 아이의 불안을 해소시켜 줄까, 어떻게 엄마의 부재의 시간을 채워줄까를 고민하던 나는 아이의 불안을 부모님도 고스란히 느끼셨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원에서 아이가 지내는 모습을 사진으로 자주 보내주거나 일상을 평소보다 더 많이 전해드리며 걱정을 덜어드렸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휴일 날이면 아이에게 집중해서 놀아주며 사랑을 쏟고 있다는 소식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러던 중 아이가 감기기운이 있는 채로 등원을 한 날이었다. 다행히 열은 오르지 않았지만 아이를 등원시키시는 아버님의 걱정된 눈빛이 생각이나 시간시간 틈을 내서 연락을 드렸었다. 아이가 무사히 낮잠을 자고 잘 놀이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드렸을 때 아버님께서 내게 “선생님은 희망입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저희 부부가 삽니다”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나려고 했다. 눈물을 간신히 참고 통화를 마무리한 뒤 화장실로 달려가 휴지로 눈물을 훔치며 나는 또 한 번의 성장을 느낀다.

“선생님은 희망입니다”하루 종일 보육 후 퇴근하면 지쳐 쓰러져 잘 때 나는 생각한다. “나 지금 뭐하고 있나? 이 길이 맞는 길일까, 잘하고 있는 걸까?”하고 회의적 물음을 던지곤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그 한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한 지난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후회할 수가 없다. 흔히 외부에서는 보육교사라고 하면 훌륭한 교사, 좋은 교사여야 한다는 짐만 지워 놓고 정작 우리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들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또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참으로 피상적인 문장인 것이다. 이것이 현재 보육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보육교사라는 직업은 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는 교수자, 또 유아의 적응을 돕는 상담자. 유아교육기관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행정 실무자 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된다. 그 다양한 역할을 해내면서 또 나의 보육 경험치가 쌓이면서 나는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선택은 완성되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은 희망입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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