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40% 세금, 억울하지 않은가요"
"소득 40% 세금, 억울하지 않은가요"
  • 세종의소리
  • 승인 2018.10.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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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칼럼] ‘미래의 노인들’과 ‘과거의 젊은이들’ 모두가 행복해야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총칭하여 '소수자'라고 한다. 유색인, 장애인, 이민자, 난민, 소수민족, 동성애자, 노인 등 다수자와 함께 살아가지만 자기 권리와 인권을 찾기에는 힘이 없는 집단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한다. 아직도 여성의 권리와 인권이 보장 되지 않는 곳에서는 여성까지도 소수자다. 소수자는 단지 숫자가 적은 사람들이기 보다는 힘이 없는 자, 약자들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소수자는 다수자 강자들과 비교해서 지칭하는 말이지만 노인은 강자, 약자, 숫자가 적은 사람들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총칭한다. 그런데 노인 중에서도 돈과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노인이 안 되는 사람은 세상에 한사람도 없다.

그래서 에이지즘(Ageism)이란 책을 쓴 애슈턴 에플화이트는 그의 책에서 젊은이들을 ‘장래노인’이라고 불렀다. 모든 젊은이는 미래에 노인이란 뜻이다. 그러니 범위를 넓혀 보면 현재의 노인들과 미래 노인들을 합하면 결국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노인이란 말이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가 ‘시간이 참 빠르다’는 회상을 한다. 그것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그 느낌대로라면 지금의 젊은이들도 순식간에 노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그리는 노인은 곧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대하는 자세는 곧 자기 자신에게 대하는 자세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행복한 사회는 젊은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이다. 왜냐 하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노후걱정을 하지 않고 젊음을 온통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국의 젊은 기자가 스웨덴에서 길을 가던 젊은 여인을 붙들고 인터뷰를 하였다. 한국 기자의 질문은 “지금의 노인복지를 위해서 당신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억울하지 않는가?”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답은 “그것이 왜 억울합니까? 내 세금은 내가 어려울 때, 노인이 되었을 때 나를 위해 내는 것인데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다. 노인복지는 곧 다가올 나의 복지이다. 그런데 노인복지 때문에 젊은이들이 부담이 크다고 느낀다면 이는 곧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의 복지를 위해 내는 세금이 부담이 된다’ 라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모순되는 말인가?

‘건강하고 품위 있고 행복한 노인’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노인 소외나 노인 혐오는 곧 미래에 나를 소외시키는 것이고, 미래에 나를 혐오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미래의 노인들과 과거의 젊은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하자. 그러면 젊은이들도 노인들도 행복해 질 것이다.

김준식 세종민주와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행정수도완성 세종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세종 매니페스토 네트워크 자문위원 다문화사회 이해 강사 아시안 프렌즈 이사 한국외국어대학 경제학과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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