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전쟁터 음식점업계, 그렇게 만만한가
핏빛 전쟁터 음식점업계, 그렇게 만만한가
  • 세종의소리
  • 승인 2018.09.2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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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칼럼] 욕받이 된 청년몰과 어느 우동집..."음식에 정성이 들어가야..."

후다닥 차렸다 후다닥 망하기 일쑤여도 되는 집은 된다

김선미 편집위원
김선미 편집위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꼭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내 손을 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 가서 뭘 먹지?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테이블이 열 개도 안 되는 작은 우동집이었다. 평일 저녁, 시간이 일러서인지 손님들은 듬성듬성 했다.

처음 가보는 음식점인 만큼 추천 메뉴에 이어 사이드 메뉴로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친구는 그런 나를 말리지는 못하고, 이 집 음식량이 적지 않다는 말만 했다. 친구의 말은 귓등으로 흘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원이 나섰다. 내가 주문한 양이 너무 많을 거란다. 그래도 섭섭해 기어이 새우튀김 하나를 더 시켰다. 하지만 결국 음식을 남기고야 말았다. 이것저것 다 시켰더라면 민망할 뻔했다.

행여 음식을 남길까 주문을 만류하는 남다른 식당

양만 많았냐고?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라면 인생 우동쯤 됐다. 면발은 내가 먹어본 우동 중 최고였다. 유레카! 탄력 있는 면발이 미끄러지듯 목으로 넘어갈 때 내 친구가 그랬듯 함께 오면 좋겠다 싶은 지인들의 얼굴이 죽 떠올랐다.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 주말 점심에 지인과 다시 우동집을 찾았다. 세상에나! 대기자 명단이 노트에 빼곡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땡볕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리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지인은 기왕에 왔으니 기다리자고 했다.

다행히 지인의 만족도는 높았다. 내가 그랬듯 그 역시 함께 오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후에도 다른 각각 이들과 몇 번 더 갔었는데 반응은 비슷했다. 주변사람들과 다시 오고 싶다고.

면발이 목으로 넘어갈 때 함께하고픈 지인들을 떠올리다

어느 날의 풍경. 밖에서 기다리느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인솔자(?)는 올망졸망한 여러 명의 아이들 수대로 1인1메뉴를 시키고도 사이드 메뉴를 여러 개 주문했다. 그러자 주문을 받던 직원은 첫 방문날 내게 그랬듯 음식이 너무 많다며 줄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야!" ‘골목식당’ 대전 청년구단, 맛도 위생도 모두 엉망 ‘충격’

‘골목식당’ 백종원 “대전 청년몰, 최악의 입지…기획부터 잘못”

최근 한 유명인이 방송하는 식당 관련 프로그램이 나간 뒤 언론매체들이 쏟아낸 기사 제목이다. 전통시장인 대전중앙시장 메가프라자에 야심차게 문을 연 청년상인 창업몰, 대전청년구단은 졸지에 전국 욕받이가 됐다.

음식업을 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청년 창업자들만이 아니다

물론 청년 점포의 부실 운영 책임을 청년들에게만 묻기에는, 국민 세금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부은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이 훨씬 더 무겁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청년 점주들을 옹호하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방송에 비춰진 청년 사장들은 음식점의 기본인 맛은 고사하고 식자재에 대한 기본인식과 위생관념,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 정신 등등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준비와 기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음식점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식당 창업을 만만하게 여기는 것이 어디 청년들뿐이겠는가. 자영업 비중이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성이 크게 요구되지 않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창업이 가능한 음식점업은 과잉, 과포화 상태가 된지 이미 오래 전이다.

음식점 폐업률 다른 산업 2배, 10곳 중 8곳 5년 이내 폐업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어도 음식업 경쟁은 핏빛 전쟁터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이 된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년간 신규 사업자 중 음식점업자 비율은 평균 약 17%나 된다. 통계청이 구분하는 53개 사업자 업종 중 음식점업 하나에만 전체의 5분의1 가까이 몰린 것이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사업을 접게 될 확률도 높다. 음식점업 폐업률은 다른 산업의 2배나 된다. 5년 이내 폐업하는 경우가 무려 81%에 달한다고 한다. 10곳 중 8곳이 5년을 못 버티는 것이다. 후다닥 차렸다 후다닥 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줄 이은 폐업에도 예약을 하지 않거나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음식점들도 꽤 있다. 음식점이면 일단 음식으로 승부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잘 되는 집의 경우 음식 맛만으로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를 뛰어넘는 남다름, 주인의 남다른 마음씀씀이가 스며들어야 한다.

음식 맛이 전부는 아니다 남다른 마음씀씀이가 맛까지 좌우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음식점을 다녔지만 음식이 많을 거라며 주문을 자제시키는 식당을 경험한 적이 없다. 우리집 음식은 다 맛있다며 이것저것 더 권하면 권했지 매출과 직결되는 주문을 만류하는 주인장이나 종업원을 본 적이 없다. 고객에게 주문을 만류하는 직원들. 사장의 지시가 없으면 결코 종업원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첫날 내 마음을 파고든 것은 인생 면발에 앞서 젊은 사장의 배려와 세심함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 그것이 설령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를 초대해 따끈한 우동 국물에 녹아든 세심한 배려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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