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큰 길이 있습니다. 그 길옆에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길 위로 아이들을 위해 신호등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옆에는 큰 나무가 있었고, 옆에는 조각상과 조그만 밭이 있습니다. 마을 앞에 밭이 생겼고, 한 사람이 밭에 물을 줍니다. 큰 나무 옆에 한 사람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 하늘에는 해와 구름이 떴습니다. 그 집 옆에는 꽃과 나무가 활짝 폈습니다. (중략) 다른 아이들도 학교에서 놀고 있습니다. 아이들 옆으로 강아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강아지 머리 위로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어느 날 학교 옆으로 예쁜 봄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길 위로 아이들과 나비가 봄 구경을 합니다. 우리 마을은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글. 주인공도 없고 사건도 없는 이야기다.
통합교과 봄을 마무리 할 때 아이들은 배운 내용을 몸으로 표현했다. 표현한 장면을 다시 그림으로 조각조각 그렸고, 아이들은 그 조각을 다시 하나하나 이어가면서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 문장은 연결되어 하나의 글이 되었다. 제목은 ‘아름다운 마을’, 우리 반이 처음 만든 공동이야기, 공동작품이다.
이야기는 다시 작은 연극으로 재탄생되었다. 책상을 이리저리 움직여 마을 공간을 만들었다. 상상과 변형으로 꾸며진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마을 사람, 나비와 강아지, 키 낮은 꽃으로, 가지를 쭉 뻗은 나무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은 3월에 만나 지금까지 다양한 몸짓과 연극놀이로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그 사이를 촘촘히 채우고 메꿔가면서 지내고 있다.
교육연극은 혼자 할 수 없다. 관찰, 의사소통, 협동, 모방을 기반으로 같이 극을 만들어 발표하고 배우와 관객 두 가지 옷을 동시에 입어야 한다. 다양한 교육연극 기법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 깔린 사람에 대한 태도와 관계 형성이 더 매력적이다. 그래서 16년 이상 교육연극을 배우고 나누고 있다. 여전히 교육연극은 나에게 좋은 수업방법이고 연구주제이며, 교육철학이다.
교육연극은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약속에서 출발한다. 그 상황을 유지하려는 진지함이 중요하다. 봄에 했던 씨앗의 자람 수업이 생각난다. 색깔 천으로 씨앗 역할을 맡은 아이를 흙처럼 덮어주고, 햇살과 비를 표현하는 아이들이 씨앗을 손가락으로 반복적으로 툭툭 두드려준다.
씨앗은 두드릴 때 마다 몸을 서서히 일으켜 싹으로 성장하고 마지막엔 두 팔을 활짝 펴서 나무나 꽃으로 자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다섯 모둠에서 나온 다섯 명의 씨앗 모두 장면이 끝날 때까지 두 발을 고정시키면서 식물의 특징인 ‘움직이지 않는다,’를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또 다른 수업에서 아이들은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겨울나라 도깨비를 도와주었다. 겨울옷차림을 한 나에게 다가와 왜 더운지 설명해주고, 무엇을 벗고 어떤 여름 도구를 사용할지 알려주고 자기 부채와 물병을 쥐어주었다. 겨울 모자를 벗겨주다가 헝클어진 내 앞머리를 자기 머리핀으로 꽂아준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친절했다. 우리가 주고받은 건 질문이나 학습내용 이상의 것이었다. 믿음과 신뢰, 정겨움, 서로에 대한 진지한 태도 등을 나눴다. 한 시간 동안 수업만 한 게 아니었다.
오늘은 점심으로 만둣국을 먹었다. 오래전 칼라찰흙으로 빚은 주황색 만두가 생각난다. 해설팬터마임과 연극놀이로 ‘카카오 농장’ 아이들의 노동력 착취를 가상 체험했고, 왜 초콜릿이 검은 눈물로 불리는지 이유를 생각하며 ‘초콜릿은 ○○이다.’로 한 문장 발표로 마무리 했다. 지금은 26살이 되었을 13살 남학생이 투박하게 빚은 주황색 만두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만두는 맛있습니다. 초콜릿도 맛있습니다. 이 맛있는 만두 속에 두부가 으깨져있습니다. 고기, 당면, 야채가 으깨졌습니다. 그래서 만두는 맛있습니다. 초콜릿 속에 그 어린이들의 꿈, 희망, 가족, 공부, 사랑 모든 게 으깨져서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맛있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이 아이가 나를 가르쳤다.
이처럼 교육연극으로 카카오 농장 문제를 지금 바로 이곳, 아이들 앞으로 가지고 왔고, 역할체험과 감정이입으로 자신의 소비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반응과 수업장면들은 내 생활 속에 들어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함께 하고 있다. 나의 1년은 그들의 1년으로 차곡차곡 채워진다. 아이들은 내 삶의 일부로 깊숙이 들어온 귀한 손님이다. 정성을 다하고 싶다. 좋은 수업으로 대접하고 싶다. 내일 나는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