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표, 생각보다 힘이 크다
내 한표, 생각보다 힘이 크다
  • 김선미
  • 승인 2018.06.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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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내 주머니 털고, 숲을 사라지게 하는 지방선거

만약 히틀러가 1표차로 나치당 당수가 되지 않았다면…

   김선미 편집위원

선거에서 1표의 가치와 힘을 강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 중 하나가 아돌프 히틀러가 1표 차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당수가 됐다는 내용이다. 히틀러의 1표차 전설(?)은 선거철만 되면 투표를 독려하는 사례로 인용되며 유명세를 치르고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이런 불확실한 이야기가 사실처럼 널리 회자되는 것은 1표가 불행하고 잔악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꾸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에서 일 것이다. ‘히틀러 1표차 나치당 당수 당선’이 사실이건 아니건 분명한 것은 투표에서 1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사실이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총알은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폭력적인 수단이지만 투표는 소리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소리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굳이 히틀러를 들먹이지 않아도 1표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국내 선거사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 차이도 나지 않는 소수점 이하의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 경우는 부지기수이고 한 두표라는 거짓말 같은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경우도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북 충주시의원 가 선거구에서 3위로 턱걸이 당선한 곽호종 후보는 이전 지방선거에서 1표차로 낙선했으나 4년 후 선거에서는 1표차로 당선돼 믿기 어려운 드라마를 연출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극적인 장면이 연출돼 정가는 물론 시중에서도 한동안 회자됐던 경우가 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 광주의 경우 당시 당선자 한나라당 박혁규 후보와 낙선자 새천년민주당 문학진 후보와의 표차는 불과 3표였다. 재검 결과 2표 차로 줄었으나 이처럼 초박빙 선거전에서 1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은 당사자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지만 소속당의 운명을 가르기도 한다.

1표 차로 낙선과 당선을 오간 후보, 3표가 가른 금배지

투표는 후보자와 정당의 운명을 가르기 이전에 국민들의 주머니도 사정없이 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숫자로 보는 제7회 지방선거' 자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 투입되는 비용은 모두 1조700억 원에 달한다. 유권자 한 명에게 드는 비용은 2만5천 원에 이른다.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들로 인해 버려지는 세금은 무려 4천622억 원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와 같다고 가정했을 때 그렇다. 당신이 투표장으로 가지 않는 순간 4천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이 한 순간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유권자 1명이 행사하는 투표의 파생가치도 어마어마하다. 올해 전국 지자체 예산은 310조1612억 원이다. 이를 4년간으로 계산하면 지방선거에서 선출되는 광역·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3994명이 임기 동안 운용하는 예산이 1240조 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권자 1명이 갖는 파생가치는 2891만 원이나 된다. 내 한 표가 웬만한 직장 연봉에 달하는 금액을 좌우하는 것이다.

웬만한 직장 연봉에 달하는 금액을 좌우하는 내 한 표

사라지는 것은 내주머니에서 나온 세금만이 아니다. 숲도 사라진다. 투표용지와 후보자의 선거공보·벽보에 사용될 종이의 무게는 모두 1만4천728t에 달한다. 종이 1t을 생산할 때 통상 30년 된 나무 17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번 선거로 25만376그루의 나무가 베어지는 셈이다. 이는 독도의 4.5배, 제주 여미지식물원의 7배 규모에 이르는 숲을 조성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전국에서 4천여 명의 '지역 일꾼'을 뽑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2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8-9일 사전선거가 실시됐다. 이틀간 진행된 사전투표율이 최종 20.14%를 기록, 20%를 돌파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사전투표율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전국 단위 선거로는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사전투표율이다. 이를 놓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해석이 각기 다르지만 일단 6.13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

   내 한표가 소중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선거일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1조700억 원짜리 풀뿌리 축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하지만 비교적 높은 사전투표율이 본 투표율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여당 압승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이유에서 혹은 하나마나한 게임이라는 좌절감에서 투표를 회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한 표가 갖는 힘은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막강하고 비용도 비싸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방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기반이다. 내주머니를 털어가고 숲을 사라지게 하며 내가 사는 지역과 나라의 명운을 가를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들을 욕하기 전 먼저 투표장으로 발길을 옮겨 한 표가 갖는 무한대의 가치와 힘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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