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했던 미국의 크리스마스
나를 울게했던 미국의 크리스마스
  • 강수인
  • 승인 2012.12.14 16: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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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트리 준비하면서 느꼈던 따뜻한 마음

몸을 잔뜩 움츠리게 하는 계절이다. 12월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적이 있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다 보니 몇 해 전 미국에서 귀국하던 날에도 정말 많은 눈이 왔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비행기표를 예약해 놓고 눈 때문에 참 막막했었던 기억이다. 세인트루이스(미국 중부 미주리주 소재)에서 시카고까지 그리고 시카고에서 인천공항까지 이동하는 항공편이었다.

12월 29일, 연말 들뜬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시기였지만 출국 전 한 달은 이 것 저 것 정리하느라 한가로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서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하나씩 장만한 짐을 정리하고 가져갈 짐만 이민가방에 덩그러니 챙겨 놓고 떠날 날만 기다렸으니 그 모습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게 쓸쓸한 연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때가 가장 따스한 크리스마스로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케이시(Casey)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고 제안을 했다. 한 달 전부터 나를 보고 이별의 아쉬움을 눈물로 표현했던 가족이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타고 다니던 차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눈까지 오면 약속을 취소해야 하니 그러면 상황만 더욱 꼬이게 되기 때문이다. (눈이 와서 일주일을 꼼짝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드디어 약속한 날, 옷을 단단히 입으라는 조언에 따라 두껍게 옷을 껴입고 그 집 차를 뒤따라 산으로 산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산장 같은 곳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들과 함께 따끈한 코코아를 마시며 우리 일행을 더 깊은 산속으로 싣고 갈 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매연가스가 나오는 차(언뜻 트렉터처럼 보였다) 뒤에 사람 운반 짐칸이 달려 있는 이동차량이 왔는데 옛날 경운기 탔던 생각이 났다. 이렇게 칼바람 속에 짐칸 난간에 몸을 매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손발이 얼어 어쩔 줄 모르는 이는 우리 부부뿐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자연그대로의 겨울을 즐기기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면서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듯 했다.

묘목장이라고 하는 곳에 내려놓고 7피트(2미터 이상) 이상의 소나무를 잘라오는 것인데 묘목장이 아니라 그냥 산에서 소나무를 베어온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 같았다. 앞서가던 아이들이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찾아내서 준비한 톱으로 아이들과 같이 나무밑동을 자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케이시 아빠(테드 솔로몬)가 어느 정도 자국을 내놓고 아이들을 차례차례 시켜 본 뒤에 나무가 쓰러질 즈음에는 아이들은 쓰러질 나무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고는 테드가 마무리를 했다.

나무를 끌고 가는 아이들과 부모들은 사냥 나갔다가 무슨 짐승이라도 잡은 듯 신나는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직접 자른 나무 한 그루와 한 그루를 더 사서 차위에 싣고 집에 왔는데 그 때부터 더 바빴다. 온 식구가 매달려 1층과 지하에 나무 한그루씩 세운 다음 작년에 했던 장식과 새로 장만한 기념품을 트리에 걸었다. 그리고 나서야 아이들은 놀고 어른들은 서로 얘기하며 저녁을 준비했다.

지금도 그날, 케이시 가족과의 크리스마스를 잊을 수가 없다. 나무를 찾는 과정에서 또 나무를 자르는 과정에서도 어른들의 배려아래 아이들이 같이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미숙한 아이들이 뭔가를 이룰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그 인내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자신들이 직접 참여해 함께 해냈다는 자신감과 부모로 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은 듯한 아이들은 내내 신나고 즐겁고 당당함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아주 인상적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남 보기에 예쁘게 꾸민 세련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닌 조금은 엉성해도 온 가족이 웃고 떠들며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트리였던 것이다. 그 트리에는 나무 고유의 냄새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희망과 사랑이 매달려 있었다.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선물받을 양말 주머니를 걸어 놓는 아이들의 천진함과 순수함에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마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이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양말을 걸어 놓는 아이의 마음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뭔지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한 때가 왔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부모의 사랑과 희망, 기다림과 배려라는 선물을 가득 채워주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케이시 엄마(캐런 솔로몬)는 나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정과 애틋함이 절절이 느껴져 왔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던 그들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리워진다.<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그곳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잔잔한 가족 얘기를 주제로 한 글을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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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2013-01-03 12:38:08
저도 Canada에서 약 1년 정도 지내면서 현지인 집에서 하숙한 적이 있어요. 부모님과 애들 셋이 있는 집이었는데 제가 Canada를 떠날 때 식구들이 저를 잡고 무척 많이 울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