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생명화된 도시 만들어야"
"세종시는 생명화된 도시 만들어야"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2.12.13 20:0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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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별인터뷰]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충청도가 새로운 중심"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전 장관은 충청도가 이제는 세종시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박사.
그와는 세 번 만났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
대학가 하숙집에 그의 수필집 ‘흙속에 저 바람 속에’는 통기타, 청바지와 함께 대학교재였다.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내용, 풍요한 상식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인용, 그리고 단문 위주의 그만의 독특한 문체가 젊은 대학생을 매료시켰다.

이 가운데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의 압축도(壓縮圖)’로 표현한 ‘윷놀이’는 압권이었다. ‘어쩜 그렇게 보았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일독(一讀) 후 머리가 더 복잡하게 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첫 번째 만남이었다.

20년 후 모 지방신문 정치부장으로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창간 기념호 특집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다. 88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했던 이 박사께 ‘굴렁쇠 소년’을 오버랩시키면서 문화가 여는 새로운 시대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당시 ‘받아쓰면 바로 문장이 되어버리는’ 화법을 보고 “아! 정말...”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역시 맨 먼저 떠올랐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16년이 지난 2012년 12월 11일.
서울 서소문구 배재빌딩 10층 ‘한·중·일 비교 문화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이제는 대학생도, 정치부장도 아닌 명품도시 세종시에 소재한 자그마한 인터넷 신문 ‘세종의 소리’ 대표기자라는 신분이었다. 설레였고 기대감으로 약간은 흥분하게 만들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의 대표 지성이자 최고의 석학인 이어령 박사와의 세 번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 부여 출신으로 ‘신부여 팔경’을 펴낸 윤재환 사무국장의 안내로 그의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황맥’(黃麥)이란 제목의 누런 보리밭 풍경이 그려진 그림 밑에 앉았다. 책상에는 원고 뭉치가 어지럽게 뒤엉켜있고 뒤 켠에는 각종 강연, 원고, 자료, 논문 등이 가지런히 정리된 파일이 책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약 20여 평 남짓한 ‘한·중·일 비교 문화연구소’에는 윤 국장과 2명의 연구원이 있었다.

   신간 저서에 사인을 하는 이어령 전 장관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합니까. 장관님이라고...”
“그냥, 뭐, 편한대로...그냥 장관...”

한참 휴대폰 통화 후 마주앉자 ‘호칭’ 얘기로 시작했다. 대학시절 감명을 받았던 ‘흙속에 저 바람 속에’가 올해가 출판 50년이라는 말이 오갔다.

“장관님! 인터뷰 약속을 하고 서재를 살펴보니 장관님 책이 4권 있었습니다. ‘흙속에...’, ‘서양에서 본 동양의 아침’,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이었습니다. 어떤 책을 가장 아끼는 지요.”

“허허허! 다 아끼죠. 자식 다 낳아놓고 누가 이쁘냐 하고 묻는 거죠. 젊은 시절 문단이라는 좁은 벽에서 문화를 열어준 책이 ‘흙속에 저 바람 속에’였죠. 금년이 50년이 됩니다. 최초는 아니지만 그게 나한테 가장 어필한 책입니다. 그런데 실제 아끼는 책은 남들은 잘 몰라요. 완전히 예술적으로 쓴 책인데 ‘문학사상’에 매달 써왔던 ‘이달의 말’을 모아 낸 책 ‘말’이죠. 권두언 비슷하게 쓴 글인데 시적 산문으로 썼었죠.”

서서히 대화의 물꼬를 옛날 얘기로 튼 다음 바로 세종시 문제로 들어갔다. 그는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말과 함께 자세하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할애해서 질문에 답했다.

- 세종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요.
“충청도 출신(충남 아산이 고향)이고 세종시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원로회의 멤버로 얘기를 많이 나눠 세종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개발이 되는 데 어떻게 봅니까.
“행정도시라고 해서 도시가 번영이 되는 건 아닙니다. 워싱톤을 보면 그래요. 혜택은 있지만...혜택을 주니까 흑인들이 모여들죠. 조건이 좋으니까. 그런데 도시는 공동화 현상, 즉 섬처럼 되어버리죠.”

- 충청도가 행정도시가 된 건 필연일까요.
“한국지형을 놓고 보면 충청도가 중심이에요. ‘충’(忠) 자를 보면 가운데 ‘중’(中)자에다 마음 ‘심’(心)자를 쓴 겁니다. 중심이라는 말이죠. 충청도가...도시자체가 기능을 발휘하면 가만두어도 수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전 장관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 편의를 위해 도청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파행적인 구조’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개발 논리를 앞세운 무분별한 도시 계획은 부동산 업자들이 만든 도시라고 폄하하고 “산업자본주의 형태의 시장주의가 만들어낸 도시가 현재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 그러면 세종시는 어떤 성격의 도시가 되어야 하나요.
“인간이 사는 도시, 즉 생명화 도시가 되어야죠. 세종시는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시킨 슬기를 하나로 모은 생명화 도시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에너지, 환경, 교육을 갖춰서 아프리카, 파리, 뉴욕에서 ‘인간이 사는 도시’는 어떻게 생겼나하고 견학을 오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죠.”

   그는 간단하면서 명료한 말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설명하고 대책을 얘기했다.
- 장관님이 말씀하신 ‘생명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콘크리트 아스팔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겁니다. 그게 가방이나 트렁크나 같은 거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도시는 보자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싸고 생명으로 싸는 도시가 곧 생명화이죠. 걸어서 모든 업무와 일상사를 다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개념이 바로 생명화입니다.”

이 전 장관은 충청도 아산 태생이다. 고향에 대한 애착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만 그의 고향 사랑은 남다르다. 1996년 인터뷰 당시, 부여 낙화암을 소재로 한 ‘백제 축제’를 제의했으며 이번에도 고향 충청도를 매우 아름답게 해석했다.

「요컨대 성격이 온순하고 덜 보채니까 소외되어서 ‘멍청도’ 소리를 듣는다. 그게 좋은 말이야. 재빠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가 봐. 멍청하니까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야. 세종시가 들어설 자리가 남아있는 거야. 스티브 잡스가 뭐라고 했어. ‘배가 고파라’, ‘어리석은 사람이 되라’고 했어. 너무 똑똑해 사람들이... 멍청해야 해요. 멍청하다는 건 그때그때 이익을 쫓아가지 않는거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던 세력에 이어 이제는 생명화를 이끌어갈 지역으로써 충청도가 부상되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특히, 남북 통일이 되면 상황은 달라지지만 현재로서는 세종시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이고 그걸 동력으로 대전, 청주, 계룡 등 인근한 도시와 힘을 합쳐 상징적인 명품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번 질문을 던지면 이 전 장관은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얘기를 쏟아냈다. 마치 얇게 쌓인 눈을 빗자루로 이리저리 쓸면 어느 새 맨 땅이 드러나듯 대화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그야말로 좌우로 흔들리며 원하는 답변을 그 속에다 넣었다. 세종시 관련은 이제 맨 땅을 보았다.

화제를 사회문제로 돌렸다. 젊은이들의 고용을 걱정하면서 ‘고용없는 성장’과 노동력 간 에 호환성이 떨어지는 경직성을 우려했다. 이를테면 산업구조가 자동화로 되면서 그걸 만드는 아주 고급한 인력은 부족하지만 반대로 저급한 노동력은 아예 남아 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문명적 구조에서 오는 것이 있고 그 나라의 정치적 현실이나 지역적 특성에서 오기도 하죠. 문명적인 것은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당연히 문명적으로 해결해야합니다. 국내 문제, 즉 지역적인 것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고 이 민족이 어떻게 해야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것을 만들어 낼 때 가능해질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하는 것처럼 개화기부터 지금까지 모든 자료를 전산화 작업을 할 경우 이를 필요로 하는 부자들은 투자를 하고 젊은이들은 앱(App)을 개발하는 걸 예로 들었다. SNS와 같은 시스템을 활용해서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부자가 되고 기업인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창출을 얘기했다.

“복지문제도 그래요. 이제는 산업의 힘, 경제의 힘이 아닙니다. 문화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감동하고 끌어안아주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그런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하죠. 행정력으로만 복지 사회를 만들면 그건 ‘얼굴 없는 복지’야. 부자들은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약탈했다고 여기게 되죠. 보자기처럼 받는 사람들이 고마움으로 받게끔 사회가 주어야 하죠.”

언론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종이신문은 몸과 같은 것이고 산업화 되지 않는 매체지만 영향력은 떨어져도 없어질 수는 없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언론은 전통적이고 체계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개인 언론도 있어요. 서로 못가진 걸 가지고 있죠. 인터넷은 끼리끼리 공간입니다. 그래서 정보가 많아졌지만 정보화는 더 좁아졌어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독안에 들어가서 소리를 치면 외부와 단절되고 저희들끼리만 가치를 공유하게 되죠. 반면 종이신문은 강한 공공성을 가지면서 길거리 여론과 같은 것이죠. 둘 다 문제는 있어요. 인터넷 신문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전통 신문은 오랜 관행에 안주하고 있죠. 이제는 두 미디어가 가치를 교환하고 공유, 전달, 공생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약 40여분에 걸친 인터뷰는 어느 정도 준비한 질문을 소화했다. 마무리를 위해 가벼운 소재를 물었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었다.

“큰 과오는 영원히 젊을 줄로 아는 것이죠. 늙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50년 후에 내 모습은 어떠할까를 생각하고 살길 바랍니다. 노인들을 보면 괴물보듯 하는데 그분들이 오늘날 자본과 부를 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죠. 또, 내가 80세가 되었을 때 그렇게 해 줄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합니다.”

어느 덧 오전 11시 45분이 되었다. 대담 시간은 약 50분이 지났다. 출판사에서 신간 저서를 가지고 대기 중이라는 전갈이 왔다. 이 전 장관은 서둘러 인터뷰를 “고맙다”는 말로 정리를 하고 새로운 방문객을 맞았다.

책은 KBS TV에 방영되었던 ‘이어령의 80초 감동나누기’를 모아서 펴낸 ‘느껴야 움직인다’는 신간이었다. 그는 ‘김중규 대표기자님’, ‘이어령 근정’이라는 서명을 해서 건네주었다. 예전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벅참이 50년 만에 재생되었다.

그는 “내 나이 80이니까 정리를 할 생각”이라며 “대학에서 가르친 것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령 박사와의 세 번째 만남은 이제 기약 없는 네 번째로 바통을 넘겨주면서 마쳤다. 다음 만남은 새롭게 나오는 책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또 기대되었다.

▲약력
1934년 충남 아산 온양 출생, 1956년 서울대 문리대 및 동 대학원 졸업, 1960년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신문 논설위원, 1967년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1989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1999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주요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과 한국인>, <생각에 날개를 달자>, <지성의 오솔길>, <휴일의 에세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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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에서 2012-12-17 16:11:56
좋은 인터뷰하셨네요.이 장관님의 혜안도 좋지만 그것을 맛깔스럽게 풀어낸 김중규 대표기자의 글솜씨도 일품입니다.잘 보았고, 앞으로 세종의 소리의 큰 발전 기원합니다.

세종시민 2012-12-14 11:19:14
세종시에 관심이 많으시다니 좋습니다. 뭔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세종시를 빛나게 해주세요. 흙속에 저 바람속에 아~~~ 정말 좋았죠.

한류민 2012-12-14 11:18:08
이 박사님, 너무 반갑습니다. 젊은 시절 책을 읽고 감명을받았던 생각이 납니다. 얼마전 tv에서 자주 뵈었습니다. 이어령 학당 이던가요. 그 프로 너무 좋았는데 빨리 끝났어 아쉬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