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식'들은 왜 그렇게 당당한가
'개자식'들은 왜 그렇게 당당한가
  • 김선미
  • 승인 2018.05.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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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한진의 갑질, 특권 자본주의와 조직적 방관이 낳은 괴물

처벌과 반성 대신 한글날 유공자 표창 받을지도 몰라

   김선미 편집위원

애플 신화를 낳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 초기 전성시대에 자기가 뽑은 최고 경영자에 의해 쫓겨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애플 창업공신이었던 잡스는 전 세계 혁신가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한편으로 참을성과 배려심 없는 오만한 성격, 주변인들과의 불협화음으로 괴팍하고 안하무인인 나쁜 남자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는 젊은 날의 잡스 모습이고 나이 들면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잡스 친구였던 브렌트 슬렌더와 릭 텟젤리는 평전 《스티브 잡스 되기》에서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뒤 남의 말을 듣기 시작하고 실패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세간의 평가를 뒤집었다.

오만함 독설 주변과의 불협화음으로 자기회사서 쫓겨난 잡스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철학 교수인 아론 제임스가 쓴 《그들은 왜 뻔뻔한가》라는 제목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부도덕한 특권 의식과 독선으로 우리를 욱하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의 영어 원제는 ‘Assholes, A Theory’ 이다. Asshole은 점잖게 표현하면 ‘항문’이다. 내용상으로는 ‘개자식’ ‘개망나니’ 정도의 수위다. 번역자는 이를 ‘골칫덩이’로 번역했다.

저자가 골칫덩이라고 지목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글러스 맥아더, 랄프 네이더 등등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자랑하는 이들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유명인들이다. 당연히 스티브 잡스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도덕한 특권 의식과 독선으로 우리를 욱하게 하는 사람들

하지만 ‘을’인 약자에 대한 수많은 몰상식과 ‘갑질’을 넘어 ‘패악질’을 시도 때도 없이 목도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정도가 골칫덩이?”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불만에 면역력을 갖는 뿌리 깊은 특권 의식으로 자신이 특전을 누리는 것을 ‘조직적으로 허락’할 때 개자식이 나온다.”는 설명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그 배후로 “특권 자본주의”를 지목한다.

제 성질에 못 이겨 던진 물컵 하나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키듯 굴지의 대기업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쓰나미처럼 몰려온 태풍이 진짜 태풍이 될지 아니면 특권 자본주의의 위력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물벼락이 가져온 쓰나미, 태풍이 될까 지나가는 바람일까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세상에 드러난 지 20여 일 동안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점잖게 말해 갑질이지 입에 담기도 험한 ‘패악질’과 탈법, 위법, 비리 행위가 그야말로 탈탈 털리고 있다.

상당 부분은 그 누구도 아닌 철저히 ‘을’인 대한항공 직원들의 집단 내부고발에 의한 것이다. 익명의 단체 채팅방에는 불과 열흘 사이 전·현직 직원 1800여명이 가입해 영상, 음성 녹취 파일, 각종 내부 문서 등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와 수많은 제보로 재벌 총수일가의 전횡과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경찰뿐만 아니라 관세청과 공정위 국토부와 노동부까지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이 국격을 추락시킨다며 ‘대한’이라는 회사명을 취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숨죽였던 ‘을’들의 반란, 3세 일탈에서 그룹 전체 탈탈 털려

잡스는 회사에서 쫓겨난 후 많은 것을 배웠다는데 한진 일가는 비록 잠깐이지만 감옥살이까지 한 땅콩회항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일까. 교훈을 얻기는커녕 언니의 땅콩회항 사건 때 날렸던 조현민의 트윗처럼 복수혈전만 벼린 것 같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TV캡처>

그러기에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린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 엄연히 실형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보란 듯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발령을 냈을 테지만 말이다.

’특권 자본주의’에 취해 ‘개자식’들의 일탈을 조직적으로 허락한 사회는 ‘개자식’들의 갑질 특히 재벌의 갑질에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오고 있다. 세상을 그렇게 들끓게 했음에도 당사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회사가 망하기는커녕 오너 일가가 쫓겨난 기업도 없다.

회사가 망한 적도 쫓겨난 적도 없어, 1일 조현민씨 경찰 소환

5월1일 내일, 조현민씨가 경찰에 소환된다. 3남매는 물론 3남매 어머니의 갑질로 야기된 그룹의 총체적 위기에 한진 일가는 어떻게 대처할까. 자식의 욕설과 고성이 문제 되자 회장실 방음시설부터 했듯이 더욱 더 ‘을’들을 옥죄는 철저한 갑질로 무장할지 모를 일이다.

물의의 당사자들은 강력한 처벌과 철저한 반성 대신 어쩌면 돌아오는 한글날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이라는 한국어를 만방에 알린 공으로 유공자 표창을 받는 블랙코미디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수많은 재벌들의 위법과 불법 일탈에도 특권 자본주의의를 조직적으로 방조했던 사회이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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