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용천, 상려암, 그리고 임난수 장군
아! 용천, 상려암, 그리고 임난수 장군
  • 임영수
  • 승인 2012.01.27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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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의 세종을 만나다]전월산 골짜기에 얽힌 전설들

   전월산 산제당
자, 이제 전월산을 오르면서 산위에 있는 유적에 대하여 알아볼까?

재영이와 아빠는 양화리 뒷산인 전월산에 오르기 시작 하였다. 전월산은 해발 230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금강변에 있기 때문에 높아 보였다. 산위에 오르는 길은 바위가 많고 경사가 심하였다.

재영 : 아빠, 저기 돌탑이 보이는데 무슨 집이예요?

아빠 : 응, 그곳은 전월산 산신께 제를 드렸던 산제당이지. 이곳 마을은 해마다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전월산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내었는데 지금은 지내지 않는단다.

이곳 산신제는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890년대 석담 선생이 마을의 풍년과 평안을 위하여 산신각을 건립하고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하여 100여 년 동안 지내왔는데 어느 해(1980년대)에 마을 주민 중 정신 이상자가 산제당을 파괴한 후 산제를 중단하였어. 그 후 여러 차례 산제를 복원하려 노력하였지만 마을에 교회가 2곳(침례교회, 감리교회)이 들어서면서 교인들이 반대하여 복원이 더욱 어렵게 되었지.

예전에는 산제를 크게 지내어 참가 하는 곳이 동촌, 서촌, 정자동 3개 마을에서 참여하게 되었고 산신제를 지내고 나면 많은 돈이 남아서 땅을 사기도 하였는데 현재 1,200평의 땅이 남아있어 마을 노인회에서 경작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얻어지는 도지 백미 여섯 가마는 마을이장이 관리하고 있단다.

제사지내는 날은 동지(12월), 초사흗날(3일)지내지. 제일이 가까워지면 동네 회의를 열어 제관을 선출하는데 그해 부정 타지 않고 몸이 깨끗한 사람으로 선출하여 지내는데 제관 외에 3~4명을 더 선출하여 만약을 대비 한단다. 동네에는 몸종이 있어 미리 7일 전부터 징을 치고 돌아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산신제를 올린다고 알려주지, 그러면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은 금기에 들어가는데 비린 것을 먹지 않고 나쁜 행동이나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는단다. 특히, 제관으로 뽑힌 사람은 더욱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는데 찬물로 목욕재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청결을 유지하며 또한 빨래를 빨지 않으며, 비린 것을 먹지 않는 등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였지.

   산제문

제관과 축관 등은 산제 전날 유사 집에 모여 함께 자고 산에 올라 산제를 올렸어, 제물은 소고기 한 근, 포, 깨끗한 삼색실과(대추, 밤, 감), 백설기 한 시루, 국은 없고, 밥, 술(추석 때 동네에서 담근 것)을 사용하며 산신제에 필요한 제물은 주로 대평리, 종촌, 조치원장에서 마련하는데 장을 보러가는 사람은 부정한 것을 보지 않도록 땅바닥만 쳐다보고 가야하며 또한 물건 값은 일체 깎지 않고 부르는 대로 다 지불했어.

제를 지내는 순서는 제물을 차려 놓고, 큰절을 두 번 한 다음, 술잔을 올리고, 소지를 올리지, 소지는 석장을 올리는데 맨 먼저 제관의 개인 소지를 올리고, 이어 산신령소지, 산소지 순으로 올리지, 제가 끝나면 제물 중 일부를 떼어 종이에 싸서 제당 동쪽에 묻어 산신령에게 바치고, 제관이 음복을 한 후 남은 음식을 싸서 가지고 내려와 이튿날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단다.

산신제 복원 노력에도 교회들어와 반대로 무산돼, 복원은 어려운 과제

재영 : 그렇게 지내던 산제는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고요?

아빠 : 그래, 지금은 무속인이 이곳을 수리하여 기도 터로 사용하고 있기에 이렇게 돌탑을 여러 개 쌓고 관리를 하고 있단다.

우리는 험준한 바위로 된 산길을 올라 산중턱에 이르니 커다란 바위가 보였는데 고인돌처럼 2개의 돌로 이루어져 하나는 아래에 받치고, 다른 하나는 그 위에 웅장하게 서 있었다.

재영 : 아빠 저 바위는 신기하게 생겼는데 뭐라 부르지요?

아빠 : 응, 저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부른단다.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들어보련?

재영 : 예, 들려주세요.

아빠 : 아주 먼 옛날 이곳 마을에 큰 부자가 살았어, 그런데 그 부자는 돈을 모를 줄만 알았지 남을 위하여 쓴 적은 한번도 없었어. 어느 날 비암사 스님이 이곳에까지 탁발하러 왔다가 부잣집 대문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하기를 청하였지, 한 참 후에 대문을 열고 주인이 나오는데 주인 손에는 두엄이 들려있었고, 그 두엄을 스님 바랑이에 넣어 주었지.

스님은 기겁을 하면서 달아났고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던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행동이 잘못 되었음을 느끼고 얼른 광에 가서 쌀을 한 대박 퍼서 스님을 따라갔어, 며느리는 스님께 쌀을 드리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 스님은 며느리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여 주었어.

   전월산 며느리 바위
「내일 모래 마을 뒷산인 전월산에 올라가시오. 정상까지 오르는데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뒤 돌아 봐선 아니 되오」라고 말씀하시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어. 스님이 말한 날이 되자 며느리는 전월산에 오르기 시작했지. 그런데 산중턱에 다다르자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물난리로 잠기는 소리,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그 목소리에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부르면서 살려 달라는 소리까지 들려왔지,

며느리는 순간 뒤를 돌아보았어. 그랬더니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었고, 시아버지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며느리의 몸이 스르르 돌로 변하기 시작 했어. 그래서 그 며느리가 변한 바위가 바로 이 바위이고, 저 뒤에 작은 바위들은 며느리를 따라왔던 개와 고양이가 굳어서 된 바위이지.

착한 며느리가 마을 전체 홍수가 난 걸 뒤돌아 보다 화석이 된 며느리 바위

재영 : 착한 며느리가 바위로 변해서 안타까워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했는데…….

아빠 : 힘들지~
이제 산 정상에 다가왔단다. 저 곳이 정상이고 그 아래 움푹 페인 곳이 보이지?

재영 : 예, 돌로 쌓았는데 우물 같아요.

아빠 : 그래, 우물이란다. 이곳의 우물을 용천(龍泉)이라 부르지.

재영 : 용천이라 부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아빠 : 그래, 이곳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우선, 마을에서 이야기하는 전설과 임난수 장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지.

전설에 의하면 산 아래에 흐르는 금강에는 커다란 이무기(용이 되기 전의 모습)가 살고 있었어.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하여 금강에서 천년을 살았는데 시간이 되어 하늘로 오르면서 용이 되려는데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까지 구멍을 내어 올라가야 했어. 그래서 전월산 정상에 구멍을 내었지.

   전월산 산제탑
어느 날 하늘나라로 승천하는데 어느 정도 하늘위로 높이 올라가는데 옥황상제가 노여워하는 목소리로 “왜, 오늘 올라오는 것이냐”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어. 알고 보니 강 건너 반곡리에서 여인이 아기를 낳고 있었고, 옥황상제는 이무기에게 승천하는 날에는 절대로 이러한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기에 옥황상제는 이무기를 떨어뜨렸지.

하늘에서 떨어진 아무기는 반곡리가 원망스럽고, 더군다나 아기를 낳는 여인이 더욱 얄미워 버드나무로 변하였어. 그리고 가지를 반곡리 쪽으로 뻗으면 반곡리 여인들이 미쳐서 돌아다니게 되며, 반면 나무가 잘 자라면 그 나무가 양화리를 지켜준다 하여 반곡리 사람들은 반곡리로 향하는 가지를 몰래 베었고, 양화리 사람들은 이 나무를 지켜왔어. 

재영 : 그런데 그 이야기가 사실인가 봐요, 이렇게 오래된 느티나무가 이곳에 있으니 신기해요. 

아빠 : 또 하나의 이야기는 임난수 장군에 관련된 이야기야. 임난수 장군은 양화리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매일 이곳 전월산을 올라왔어. 우선 이곳의 우물에서 물을 정성스럽게 떠서 산 정상에 있는 제단에 올려놓고 고려의 왕궁이 있는 개성 쪽을 향하여 절을 하면서 고려왕의 건강을 기원하였으며, 물을 뜬 우물을 용천(龍泉)이라 불렀지, 즉, 용(龍)은 왕을 상징하는 말로 고려왕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물이란 뜻이지. 

제단이 있던 곳을 부왕봉(俯王峰)이라 불렀으며, 이는 고려왕에게 절을 올린 곳이란 뜻이지. 이곳 부왕봉에는 그 당시 제단이 설치되었던 돌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흩어져 지금은 땅속에 묻히거나 주변으로 물러나 있어. 

재영 : 우물이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신기해요. 

아빠 : 그래, 우물은 산 아래 마을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산 정상에 있으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더욱 신기하지, 보아라. 요즘도 가물 때 인데 이곳 우물에는

   용천
이렇게 물이 많이 나고 있지 않니. 저쪽 바위를 상려암(想麗岩)이라 부르는데 이는 이곳에서 절을 하고 저 바위에 올라 고려를 생각하며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임난수 장군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면서 시름에 잠긴 '상려암' 

상려암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멀리까지 보였다. 특히, 금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계룡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독락정, 북쪽으로는 원수산과 연기리까지 보이고 동쪽으로는 합강과 부강이 내려다 보였다. 바위에 앉아보니 신선이 된 것 같았다. 내려올 때는 전월산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 곳은 더욱 가팔랐지만 오를 때 보다는 힘이 들지 않았고 대신 너무 가파른 것이 위험하였다. 산을 어느 정도 내려오자 그곳에도 산제당이 있었다. 이렇게 신령한 산에는 산제당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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