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평화도 한 점에서 시작된다"
"인류 평화도 한 점에서 시작된다"
  • 임효림
  • 승인 2018.04.02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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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림칼럼]백지 병풍에 쓴 글씨, '인류평화 시일점'

ㅡ병풍에 찍은 점 하나ㅡ

행사는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덕담을 해 달라고 해서 덕담을 해 주기도 했지요. 그리고 돌아 오려고 하는데 주인이 아직 행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집안으로 안내를 하기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잠시 차를 마시는데, 주인이 병풍 하나를 가져와서 수 많은 사람들 앞에 펼쳤습니다. 아무 글씨도 없는 하얀 병풍입니다.

"스님 귀한 걸음 하셨는데 오늘 이 행사를 기리는 좋은 글씨 하나를 써 주십시오. 역부러 스님께 글씨를 받으려고 이렇게 흰 병풍을 만들어 준비했습니다."

참 난처한 일입니다. 글씨를 여간 능숙하게 쓰는 달필이라고 해도 병풍에다가 직접 글씨를 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야 말로 준비안된 퍼포먼스를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벼루를 가져오고 먹을 갈고 하는 동안 나는 잠시 차를 마시며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붓 중에 가장 큰 붓을 집어 들고 먹물을 흠뻑 적셨습니다. 붓을 들자 먹물이 병풍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봤습니다.

팔폭짜리 연폭 넓은 병풍 왼쪽 상단에 힘차게 한 점을 찍었습니다. 먹물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른쪽 하단에 작은 글씨로 [인류평화 시일점]이라고 썼습니다. "인류의 평화가 이 한점에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해석해 주자 그 자리에 참석한 대중이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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