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면죄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면죄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김선미
  • 승인 2018.03.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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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칼럼]미투와 어떤 죽음, "법적, 사회적 책임다하고 살았더라면"

미투 적극 지지에도 논점 흐리기 비이성 불합리는 경계해야

   김선미 편집위원

세상에 애달프고 슬프고 황망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 편안하게 백수를 누린 어르신의 고종명도 부모 잃은 자녀들에게는 슬픔이고 황망함이다. 머리 희끗희끗 나이 들어 제 자식을 둔 자식도 패륜아가 아닌 다음에는 제 어버이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천하의 인간 말종, 극악무도한 흉악범의 죽음일지라도 그 부모에게는 슬픔이고 아픔일 것이다.

한 죽음에 대한 애도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거세다.

배우 故 조민기.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어떤 혐의를 받았고, 아직은 한참인 나이에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고인이 됐다고 해서 살아생전에 폭로된 갖가지 상습적인 성추행 의혹을 옹호할 의도는 없다. 죽음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우리사회이지만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극악무도한 흉악범의 죽음도 부모에게는 슬픔이고 아픔

유서를 통해 피해와 상처를 준 제자들에게 비록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피해자들이 그의 죽음을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법적 시비가 가려진 것도 아니고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본다면 그의 죄를 섣불리 묻거나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변명을 하기에는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시선이다.

피해자에 대한 사죄도 그렇지만 가족에게 또 한 번 엄청난 배신과 충격을 주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어떠한 이유와 설명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다 해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법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남은 인생을 참회하고 속죄하며 살았다면 언젠가는 피해자와 대중들도 용서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해자들로부터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랴 자신의 업보인 것을. 그렇다고 그 죽음마저 애도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법적 사회적 책임 다하며 참회와 속죄하는 삶 살았더라면

후배 배우 정일우 등이 조민기를 애도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리며 올린 글을 삭제해야 했다. 우리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계가 조민기에게 공개적으로 애도를 표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곤혹스러운 상황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빈소를 지켰던 한 동료 배우가 날린 ‘일침’은 조민기 개인에 대한 애도가 적절하냐 적절하지 않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여러 세상사를 생각게 한다.

배우 조성규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틀 동안 조민기의 빈소에 다녀왔다며 “그가 28년간 쌓아온 연기자 인생의 그 인연은 어느 자리에도 없었다. 뭐가 그리 두려운가? 조민기의 죄는 죄이고 그와의 인연은 인연인데, 아니, 경조사 때마다 카메라만 쫓던 그 많은 연기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조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면한 연예계 동료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죄는 죄이고 그와의 인연은 인연”이라는 한 배우의 일침

조성규의 글 중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조민기의 죄는 죄이고 그와의 인연은 인연”이라는 부분이다. 조문은 꼭 고인을 추모해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더 많은 경우 고인보다는 유가족과의 인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조민기의 부인 김선진씨는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연예계와의 인연이 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민기가 아닌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는 일조차 거센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우리사회가 그렇게 각박한지는 다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는 연좌제로 인한 폐해를 몸서리치도록 가혹하게 겪어 왔다. 가족에게 까지 죄를 묻는 것은 신연좌제의 다름 아니다. 물론 남겨진 가족들 역시 적어도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비록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보다 조심스럽게 처신해야겠지만 말이다.

연예계 동료들도 외면, 가족들이 무슨 죄? 신연좌제는 곤란

미투를 보며 또 하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반향이 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정확한 사실 확인과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 대신 마녀사냥식의 쏠림 현상과 논점을 흐리며 구분 없이 뒤섞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2차 피해로 이어지기 일쑤다.

미투의 경우는 피해자를 향한 밑도 끝도 없는 2차 가해와 가해자 가족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이다. 죄는 죄고 애도는 애도라고 쾌도난마처럼 자를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설령 앙심을 품고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거나 배후에 거대한 기획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가해자가 자행한 가학 행위 자체가 상쇄되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양심불량자라고 해서 성폭력을 당해도 싸다거나 가해자 가족이라고 해서 함께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를 우선하는 본질에 집중, 2차 피해 막는 성숙함

쓰나미처럼 우리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미투 운동, 다른 사회적 현안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성폭력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곁가지와 구분해서 단호하게 그러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논점을 흐리는 일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물론 #ME TOO에서 가장 최우선은 몸과 영혼의 파괴로 오랜 시간 골방에서 혼자 고통을 겪어온 피해자, 아니 생존자의 상처 회복에 집중하며 지지를 보내는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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