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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시대 오판한 정치인, 지혜로운 백성[강병호칼럼]혼돈의 시대, 꼭 봐야 할 영화 '다키스트 아워'
강병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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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4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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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끔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나 일본제국이 승리했다면 세상은 얼마나 처참하게 변했을까 상상 할 때가 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는 그런 끔직한 악몽을 막아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차 대전 다큐멘터리들은 1940년 프랑스를 궤멸시킨 히틀러의 영국 침공을 대영제국 국민들이 단합해서 물리쳤다고 단순하고 짧은 역사만 보여준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에서 그 기간은 매국노와 애국자, 용기와 비겁사이의 갈등으로 꽉 채워진 그야말로 최고로 어두운 시간이었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다키스트 아워>의 연출은 조 라이트(Joe Wright) 감독이 맡았고, 윈스턴 처칠 수상 역에는 유명한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이다. 처칠을 수상에서 끌어내리려 음모 꾸미는 체임벌린 전 수상 역에 로널드 픽업(Ronald Pickup), 수상 자리를 차지하려는 보수당 의원 역에 스테판 딜레인(Stephen Dillane), 처칠 수상의 타이피스트 역에 릴리 제임스(Lily James)가 맡았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2차 세계대전 속에 시대를 잘못읽은 정치인과 오히려 지혜롭게 처신한 백성들의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영화라고 하지만 전투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영국 의회 웬스트민스터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말싸움만 보여줄 뿐이다. 감독은 비행기에서 지상을 관찰하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역사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보는 의도가 느껴진다.

2차 대전 초반 따라서 독일의 승리는 물리력 차이가 아닌 국가 지도력과 국가전략, 국민 정신

력 차이가 원인이었다. 1차 대전 승전국 프랑스, 영국에는 반전(反戰)ㆍ염전(厭戰) 사상이 압도적이었다. 문학계에도 병사들의 참전기가 봇물을 이루었지만, 레마르크의‘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 같이 대부분 전쟁의 비참한 상황을 묘사했을 뿐 전쟁 승리를 찬양하는 책은 거의 없었다.

프랑스, 영국인들은 결과에 관계없이 무조건 평화를 원했다. 프랑스에서는 소위 평화투표(Peace Ballot)가 있었고 압도적인 숫자가 평화를 주장했다. '전면적인 군축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1,000만 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77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생들은"학생들은 더 이상 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의도 했다.

1938년 9월,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슈다덴 지방 할양을 요구하자 달라디에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상호조약에 따라 프랑스 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시 세계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4개국 정상들이 모여 뮌헨회담을 개최했다.

달라디에 수상은 독일에 유화정책을 추진한 영국과 협조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슈다덴 지방의 할양을 인정하는 협정에 조인했다. 프랑스의 군 동원령은 해제되고 귀국한 달라디에는 전쟁을 막은 수상으로 국민의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영국 체임벌린 수상이 비행기를 내리며 히틀러와 만든 조약 문서를 흔드는 사진은 세계사적 기록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는 이 체임벌린 수장이 전쟁을 불사하려는 처칠을 수상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한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독일에 대패했다. 프랑스는 연합군이 해방시켜 줄 때 까지 4년을 나치 독일군이 국토를 유린했다. 독일군이 병력, 무기에 월등했으리라 짐작되지만 사실 아니다.

히틀러의 독일 국방군(Wehrmacht)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축소된 독일의 군사력은 객관적으로 방어는 할지언정 먼저 공격 개시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병력과 무기도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60%에 불과했다.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대패한 것은 체임벌린과 같이 ‘가짜평화’를 내세우며 전쟁을 회피하려는 지도자들 때문이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1940년 5월, 처칠의 갑작스런 수상 취임부터 시작된다. 국왕도 그가 속한 영국 보수당도 전쟁 지도자로 그를 적임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 정치권은 체임벌린 수상의 오판으로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에 소수파인 처칠이 수상 자리를 잠시 떠맡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처칠이 호감을 받지 못한 점들은 차고 넘쳤다. 귀족 아들로 제멋대로고 변덕스런 방자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해군장관 재직 중 터키와 전쟁에서 8만 명의 장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갈리폴리’ 전투의 패전의 악몽 때문이기도 했다. 의회 전체가 히틀러와 협상에 의한 강요된 평화를 원하고 있을 때 분위기 파악 못하는 처칠은 결사항전을 주장한다.

마침내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35만 명의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나치 독일에 포위되자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자는 주장도 의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반전을 보여 주는데 처칠수상이 직접 지하철을 타고 국민들의 소리를 듣는 장면이다.

정치인들이 시대를 오판해도 어리석어 보이는 백성들은 오히려 지혜롭다. 시민들의 격려에 힘을 얻은 처칠은 의회에서 유명한 “저는 피와 눈물과 땀 밖에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

강병호, 중앙대 졸업, 중앙대(MBA), 미국 조지아 대학(MS), 영국 더비대학(Ph.D),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대전문화산업진흥원 초대, 2대 원장, 한류문화진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문위원, 배재대 한류문화산업대학원장, E-mail :bhkangbh@pcu.ac.kr

는 육상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며 오직 승리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다. 북의 김여정, 김영남, 김영철이 방남(訪南)한 후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피아(彼我)가 혼돈스런 지금... 꼭 한번 봐야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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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세곳이나 소개를 해 주시니

와~~~전국최다득표 축하드립니다.

시래기 국밥,잔치국수 먹으러 꼭

오옷 맛집 기사 올라온거 보러왔다

이곳 정말 강추 합니다. 사장님

보리밥이 시원하니 맛나겠네요

작가님의 사진컷이 아니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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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육이 맛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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