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소리
2018.6.19 화 14:32
오피니언칼럼
"졸지에 여검사와 블루스 췄다니까요"[김선미 칼럼]성폭력 공화국, 왜 이제 와서‘와 ‘그까짓 거’는 없다
김선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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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8  19: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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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쌓아온 공든 탑 한 순간 바벨탑처럼 무너지다

김선미 편집위원

#.여름 방학을 앞둔 강의실은 그렇지 않아도 무더웠다. 중년의 교수는 한 손에 교재를 든 채 강의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수업을 했다. 교수가 내 곁을 지나갈 때 등에 후텁지근한 불쾌한 무언가가 닿았다. 하필이면 속옷 끈 위다. 순간 놀라 움찔하며 몸을 비틀었다. 교수는 모른 척 태연하게 발길을 옮겼다.

학교를 졸업한 후 여학생들 모임에서 그의 만행을 공유하게 됐다. 당시는 몰랐던 그에 대한 더 추한 폭력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얇은 여름옷 위로 교수의 끈적하고 뻔뻔한 손바닥이 머물렀던 시간은 불과(?) 수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Me Too(나도 피해자)’ 사례와 비교했을 때 얘깃거리도 안 되는 아주 사소한(?) 경험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성추행’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그 때의 불쾌했던 기억이 그의 기름진 얼굴과 함께 현재의 강렬한 기억으로 소환된다.

왜 이제 와서? 라는 의심의 눈길은 부디 거두라는 얘기다. 그 같은 행위가 성추행인지도 몰랐던 터에 교수가 더한 짓을 했다 해도 이십대 초반의 내가 감히 교수의 면전에서 그러지 말라고, 싫다고 말 할 수 있었을까? 4년 동안 마주쳐야 할 전공학과 교수가 아니었던 것을 감사할 따름이다.

현재의 기억으로 소환된 여름날 끈적했던 강의실

#.“졸지에 나까지 여검사와 블루스를 췄다니까요.” 남자 후배는 검찰 출입 시절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여검사 비율이 30% 가까이 되는 요즘과 달리 여검사 수가 훨씬 적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부장검사와 기자들이 함께 하는 술자리에 참석한 초임 여검사는 부장검사의 강권에 의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남성들과 돌아가며 블루스를 춰야 했다는 것이다. 싫다는 소리 한 마디 못한 채 상명하복의 업무지시를 받들 듯이 말이다. “네가 탬버린을 쳐준 덕에 도우미 비용을 절약했다”는 어느 부장검사의 발언에 빗대자면 여검사는 졸지에 유흥업소 도우미가 된 셈이다.

이 사례가 후배 기자의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조직이고, 정신이 올바른 상사였다면 춤을 추겠다고 덤비는 술자리의 다른 남성들을 제지하고 야단치며 자신의 부하직원인 여검사를 보호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지는커녕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알량한 힘을 자랑하듯 오히려 강권을 넘어서 ‘명령’한 것이다. 근래에는 검찰 내부의 조직문화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지만 지금도 어떤 부류에게 변화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현직 검사의 구속은 이를 여실히 반증하고 있다.

“졸지에 나까지 여검사와 블루스를 췄다니까요.”

#.A가 한 지역 공기업 임원 공모에 유력한 후보로 올랐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몇 배수로 올라간 후보군에서 탈락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은 일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아주 오래 전 주변 사람들도 잘 알지 못했던 성추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아마 주변도 잘 몰랐을 정도였으니 어쩌면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물론 피해 당사자에게는 심각하지 않은 성추행이란 있을 수 없는 문제지만 말이다. 탈락 이유가 다른 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소문대로 성추행이 주된 이유였다면 본인도 십 수 년이 지난 사안이 발목을 잡을 줄은 미처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십 수년 전의 일이 발목 잡을 줄 짐작이나 했을까

#.서지현 검사가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최교일, 고은, 이윤택. 긴급 체포돼 구속까지 이른 현직 부장검사. 그리고 검찰 경찰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집단은 물론 문단, 연극계 등 문화예술계, 대학, 학교 등등... 뉴스를 보기 겁날 만큼 날이면 날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Me Too’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을 가히 ‘성폭력 공화국’이라 칭한다 해도 반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성폭력은 수십 년이 지났다 해서, 가해자 입장에서는 “그까짓 거 갖고 뭘?” 할 정도의 경미하게 치부될 사안이라고 해서 범죄라는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성폭력에서 ‘그까짓 거’는 없다. 피해자, 대다수는 여성의 영혼과 몸을 바닥까지 갉아 먹는 불가역적 범죄다. 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고통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쥔 가해자는 반성은커녕 늘상 꽃놀이패였다.

힘 있는 자리 권력을 품으려는 자 이제는 수신제가부터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그들도 오금이 저리지 않을까. 양심이라는 게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죄책감으로 피해자들이 그랬듯 밤잠을 이루지 못해야 마땅하다. 수십 년 쌓아온 공든탑이 한 순간 바벨탑처럼 무너지는,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처참한 꼴을 보고도 죄책감도 반성도 없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무술년(戊戌年) 새해 아침, 너무 흔하고 당연해 진부하기조차 한 ‘수신’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특히 권력 있고 힘 있는 자리에 오르려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천하를 움직이려는 야망을 품은 자들이라면 더욱 더 먼저 새겨야 할 강령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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