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죽여 놓고 가족여행을?”
“아이를 죽여 놓고 가족여행을?”
  • 김선미
  • 승인 2018.01.25 10:3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미칼럼]아파트 도로는 도로가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도로교통법

치외법권 아파트 사망사고마저 처벌 경미, 들끓는 여론

아파트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 12대 중과실에 포함시켜야

   김선미 편집위원

소풍 가기 전날, 장을 본 아이와 엄마는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넜다. 아마도 6살 작은 여자아이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나비처럼 가볍게 나폴 나폴 걸었을 테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뒤에는 아이의 오빠가 따라 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저녁 한 때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은 한 순간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횡단보도로 돌진한 차량이 길을 건너던 아이와 엄마를 치고 만 것이다. 정신을 차린 엄마는 자신도 크게 다쳤음에도 피투성이가 된 아이에게 달려갔다.

엄마의 직업은 불행 중 다행처럼 119 구급대원이었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 사력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끝내 아이를 살리지는 못했다. 15년 동안 수많은 생명을 구한 그녀였으나 정작 눈앞에서 사경을 헤맨 제 자식은 구하지 못한 것이다.

단란한 가족을 한순간에 지옥으로 몰아넣은 어느 교통사고

참척의 고통. 그 어미의 심정이 어떠할지는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이 모습을 아이의 오빠는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트라우마를 갖게 될지는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을 감싸 안아야 하는 아빠.

단란했던 한 가정을 한 순간에 생지옥으로 몰아넣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비극은 넓은 도로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났다. 사망사고인데도 가해자 처벌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아파트 단지는 도로교통법 적용을 받는 일반도로가 아니라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유지여서 횡단보도 사망사고임에도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16일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사연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눈물과 분노로 채우고 있다. “아파트 단지 횡단보도에서 난 사고도 도로교통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에 13만 명이 넘게 참여를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13만 명 넘어, 안전에 대한 국민적 갈망

지난 14일 '대전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 가해자의 만행과 도로교통법의 허점'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온 지 하루에 1만 명 이상씩 동의를 한 것이다. 무서운 속도다. 그만큼 공감하는 바가 크다는 이야기다.

사고 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단지 ‘가해자의 만행’이라는 분노 어린 표현에서 보듯 양측의 갈등이 심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던, 가해자가 사고 직후 가족여행을 떠났다는 내용도 갈등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여행을 떠난 가해자에게도 나름의 사정과 할 말이 있겠지만 “아이를 죽여 놓고 여행을?” 어쨌든 보통사람들의 감정을 거스르는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러한 내용이 사고 후 3개월이 지난 최근 지역사회에 알려지며 불합리한 아파트 교통사고 처리가 온·오프 상에서 커다란 이슈로 등장했다. 채 피지도 못하고 하늘로 간 꽃 같은 아이와 부모의 피맺힌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추모의 물결이 확산되며 청와대의 국민청원까지 이르게 됐다.

안전 사각지대 아파트 교통사고 빈번, 난폭운전이 주범

비록 가해자도 고의는 아니었을 테지만 단지 아파트 내라는 이유로 처벌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파트 내 교통사고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행자와 승용차가 공존하는 아파트 단지 내의 교통사고는 의외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우리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거지역이 오히려 '안전 사각지대'인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안전 의식이 부족한 운전자의 주의 부족과 난폭 운전에 기인하고 있음에도 현행법의 미비로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에 대한 보완 요구가 끊이지 않은데다 이처럼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자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 처리에 대한 개선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제천 화재 사고 등 크고 작은 재난과 안전사고를 겪으며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는 것도 청원에 불을 붙이는 한 이유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도로교통법, 더 이상 손질 미룰 수 없어

하지만 이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응도 공존한다. 경미한 사고까지 중과실로 처벌한다면 전과자가 과도하게 양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청원이 20만 명이 넘어 청와대가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사망사고마저 현행법 운운하며 외면하는 것은 더 이상은 곤란하다.

그리고 제도 개선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처벌을 강화하든 하지 않든 처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안전이 보장되어야 할 주거지에서 더 이상 이런 비극적 사고는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세종시민 2018-01-29 16:08:15
자기 잘못으로 어린 아이를 죽여놓고도 해외여행 갔다온 운전자는 정말 용서가 안되는 사람이네요. 세종시민들이 모두 나서서 이 청원에 힘을 실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