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잘먹고 줄담배 피우는 팽초 스님
술 잘먹고 줄담배 피우는 팽초 스님
  • 임효림
  • 승인 2018.01.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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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림칼럼]달밤에 춤을..."중은 가난을 배워야 하는기라"

ㅡ달밤에 춤을ㅡ

"중은 가난을 배워야 하는기라."

술 잘 먹고 줄 담배를 피우는 팽초스님.

스스로 자기는 너무 깨끗하게 살아왔기에 세상으로부터 팽당했다고 해서 팽초스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팽초스님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누더기 하나로 살았으며, 기차역 대합실이 객실이었지요, 어디 한곳에 머물러 살지를 못하고 끝없이 만행을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내 발에는 역말살이 붙어서 돌아 다녀야지 멈추면 병이 나."

그래서 버스도 잘 안타고 멀고 가까운 길을 불문하고 주로 걸어서 다녔는데요. 일년에 전국을 서너바퀴씩 돈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마 고산자보다 더 많이 돌아 다녔을 것이구만. 하여튼 휴전선 이남에서 내가 안가본 곳은 없을 것이구만."

어느해 겨울 팽초스님이 내가 사는 암자에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쌓여서 전국이 눈 폭탄을 맞았다고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오랫만에 만나 밤이 늦도록 차를 마셨습니다.

물론 팽초스님은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지요.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보니 무릎 위까지 빠지도록 눈이 왔고, 하늘에는 어느덧 구름이 거치고 밝은 달빛이 비췄습니다. 그러자 팽초스님은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부쳐 물더니,

"야! 천하 절경이로다. 이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경지가 다시 어디에 있단 말이냐! 내 오늘밤 이 눈위에서 지쳐 쓰러져 코를 박고 죽을 때 까정 춤을 추워야겠다."

이러면서 눈이 덮힌 마당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추는 춤은 아니고 덩덕궁 덩덕궁 하는 가락으로 탈춤 풍의 춤을 추는데 그 춤 솜씨가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야! 너도 이리와서 같이 춤을 춰 봐, 너는 중노릇 하면서 엄청 오염되었어야. 그란께 오늘 눈위에서 땀나게 춤을 춰서 그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씼어내도록 해봐."

나도 그를 따라 덩달아 같이 춤을 추는데 밤은 더욱 깊어지고 달이 서산으로 기울도록 우리는 시간이 가는 것도 잊어버린 체 그렇게 춤을 추었습니다.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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