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 뭐 하세요?”
“퇴근 후에 뭐 하세요?”
  • 김선미
  • 승인 2018.01.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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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고액 연봉, 승진도 싫다고? 기성세대 혀를 찰 노릇 그러나…

‘워라밸’이 뜬다지만 현실에서 일과 삶의 균형 가능한가

   김선미 편집위원

‘워라밸’ 워크-라이프-밸런스'(Work-Life-Balance)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이 낯선 신조어가 ‘욜로(YOLO)’에 이어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새로운 용어로 널리 확산 되고 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로 ‘한번 뿐인 인생 잘 즐기라’는 말로 통용되며 근래 젊은이들의 생활상을 요약하는 키워드로 자리매김 됐다. 하지만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인생은 한번 뿐이니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후회 없이 살라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지 말고 무조건 오늘을 즐기라는 식의 소비지향적 삶을 부추기는 뜻으로 변질돼서다.

욜로에 이어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저녁이 있는 삶’

이에 반해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워라밸은 한층 더 매혹적이고 긍정적으로 다가 온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최근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워라밸’을 내년에 가장 주목해야 할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을 참고 견디기 보다는 적절히 벌어 오늘을 행복하게 살겠다는 삶의 태도를 갖는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사축'으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프로 야근러’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선언이다.

조금 덜 벌더라도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연봉이나 승진에 목매지 않고, 칼퇴근을 위해서는 대기업 고액 연봉도 과감히 포기한다. 기성세대로서는 혀를 찰 노릇이다. 배가 불렀다고 말이다.

월화수목금금금… 사축, 프로 야근러는 더 이상 못 참아!

한국경영자총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대란 시대에 그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열 명중 세 명이 일 년도 안 돼 박차고 나간 것이다.

워라밸 세대의 특징이다. 이들은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 차압당하는 대신 퇴근 후의 저녁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압축 성장 시대에 성공신화를 일궈내도록 닦달하는 자기착취에 대한 반기인 셈이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지적했듯 성과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사회적 질병인 과잉 성과주의에 매몰되는 대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워라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저녁이 있는 삶’이다. “퇴근 후에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다양한 답을 할 수 있는 삶이다. 수년 전 한 정치인이 이 말을 대선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왔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경쟁이 살벌한 대선판에서 대중정치 용어로는 너무나도 시적이어서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도 했으나 꽤나 신선한 발상이었다.

과잉 성과주의에 매몰된 자기착취, 여전히 긴 노동시간

젊은 세대만 워라밸을 즐기고 싶을까. '저녁이 있는 삶'은 워라밸 세대만의 이슈가 아니다.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있거나 워커홀릭조차도 한번쯤은 꿈꾸는 삶이다.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워라밸과 결은 다소 다르지만 정부도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과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능할까. 워라밸이 트렌드이고, 워라밸 세대가 뜬다고 해서 누구나 이를 누릴 수 있는가.

2016년 OECD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연간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최장수준이다. 열정 페이로 대변되는 저임금, 무한 경쟁을 통한 실적주의가 임금 노동자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다 리얼한 현실이다.

취미. 여가활동은 아니어도 휴대폰으로부터라도 해방되자

워라밸의 등장은 일과 삶이라는 균형추가 '일'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불균형을 극복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방향성이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균형추는 여전히 일 쪽으로 쏠려 있고 이는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를 정리하고 시작하는 연말연시만이라도 팍팍한 일상과 자기를 필요 이상으로 닦달하는 자기착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요하는 취미나 여가활동까지는 아니어도 하루종일 손에서 놓지 못하는 휴대폰으로부터라도 잠시 해방돼 보자.

워라밸을 꿈꾼다 해도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팍팍하고 숨막히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돌아보며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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