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안 되면 패야 한다고?"
"말로 안 되면 패야 한다고?"
  • 김선미
  • 승인 2017.12.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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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칼럼]페이스북 세종시 실종 사건, 광범위한 세종시에 대한 ‘무신경’

‘세종시=행정수도 개헌 반대’ 그래도 국회분원 예산은 다행

   김선미 편집위원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동해’도 ‘독도’도 아닌 ‘세종시 이름 찾기’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세종특별자치시’로 출범한지 무려 5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세종시 이름찾기 항의 방문단이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코리아 본사를 방문, 지명 등록 누락에 대한 항의와 ‘세종특별자치시’ 지명 등록 촉구를 했다는 난데없는(?) 기사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름이 바뀌었으면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당연히 알아서 표기를 바꿔야지 이게 ‘요구’를 넘어 ‘항의’를 해야 할 일인지?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내가 SNS를 하지 않고 세종시민도 아니어서 관련 뉴스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지만 지역 언론을 제외하고는 주요 미디어에서는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세종 시민들이 페이스북코리아 본사에 항의 방문하기 전까지는 관련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제 이름 찾기가 ‘요구’를 넘어 집단 ‘항의’를 해야 할 일인지?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분리돼 직할시로 승격되고 광역시로 바뀐 지 십 수 년이 지난 후에도 ‘충청남도 대전시’라고 표기한 유수 언론의 기사를 보고 경악한 적도 있다. 지역에 대한 그 하대와 무관심 말이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의 세종시 실종 사건’은 들여다볼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뒤늦게나마 올바른 행정명이 등재돼 다행한 일이기는 하나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종시에 대한 대다수의 무관심과 글로벌 기업의 오만함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우선 놀라운 일은 정부를 비롯 세종시청 등 공공기관, 언론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지난 5년 동안 몰랐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 사용자가 국내 인터넷 인구의 77%인 1,900만명에 이르며 세종시 역시 26만명 인구 중 15만명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어느 공공기관도 먼저 나서서 페이스북에서 옛 행정명이 사용되고 있는 것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광역시 된 지 십수년 후에도 ‘충청남도 대전시’로 표기한 언론

<세종의 소리>에 따르면 새로운 지명 등재를 공론화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눈 밝은 한 여고생 덕분이었다. 페이스북에 세종시가 여전히 옛 행정명인 연기군으로 기재되어 있어 불편하다는 지적이었다. 세종여고 3학년 전혜림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이후 이를 허투루 듣지 않은 세종시 교육청 임수경 주무관이 주축이 된 세종시 이름 찾기 캠페인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공론화되면서 마침내 제 이름을 찾은 것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세종시 제이름 찾기’는 지역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출발한 시민들의 승리다.

명색이 글로벌 기업인 페이스북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글로벌 기업답게 당연히 본인들 스스로 바뀐 정보를 수정해야 함에도 게을리 한 것도 모자라 수 개월 동안의 정정 요청에도 계속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작은 사안서 출발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세종 시민들의 승리

5일 만에 수정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은 왜 뭉갰는지 말이다. 페이스북은 시민들이 항의 방문한 5일 후인 28일부터 페이스북 위치정보에 '세종특별자치시'를 넣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로 해서 안 되면 ‘두들겨 패야’ 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려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세종시를 넘어 대한민국을 얕보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다시금 확인케 되는 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스며있는 세종시에 대한 ‘무관심’이다. 정부 부처도 그렇고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을뿐더러 보수 언론을 비롯한 일부 사회계층과 타 지역의 무관심을 넘은 냉대와 반대는 앞으로 개헌을 통한 “행정수도 완성”을 염원하는 세종시가 헤쳐 나가야 할 커다란 벽이다.

세종시 건설에 공동전선을 폈던 충청권 여론도 이제는 한 목소리가 아니다. 얼마 전 대전서 ‘세종시=행정수도 개헌 반대’ 스티커를 붙인 택시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페이스북 코리아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는 세종시민들

지역에 대한 작은 관심과 자발적 행동 쌓이고 모일 때 힘 발휘

그래도 행정수도를 향해 한 발걸음씩 진전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세종시 ‘국회분원’ 관련 예산이 처음으로 정부 예산안에 편성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6일 밤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를 통과한 2018년 새해 예산안에 국회분원 설치관련 예산 '2억원'이 반영된 것이다. 반영된 예산은 기존 요구했던 20억원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회분원 설치를 위한 첫 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종시 국회분원 설치의 타당성과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하다고는 하나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 이름 찾기’와 같은 작은 관심들로부터 시작된 지역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이 쌓이고 모일 때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큰 그림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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