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되고 싶었던 국어교사가 된지 어느덧 2년차가 되었다. 나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국어선생님을 꿈꾸게 된 어렸을 때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국어교사를 원했다. 나는 학창시절, 그저 웃음 많고 활동적인 아이였을 뿐 공부를 크게 잘하지도 않았고 욕심도 크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중학생이 되어 여러 국어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을 존경하게 되고 왜인지 국어라는 과목에 흥미와 애착을 느꼈다. 국어 선생님들을 쫓아다니며 그들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다녔다. 또, 국어 교과서 필기를 정성스럽게 한 뒤, 그 책들을 소중히 보관했다. 지금도 고향집에 있는 내방 책장에 어렸을 때부터 모은 국어 교과서들이 한 켠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은 난관에 부딪쳤다. 힘들게 공부하면서 딱히 종교도 없는 나는 늘 많은 신들에게 약속을 했다. ‘제가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되리라는 자신감이 점점 사라질 때 마다 다이어리에 저런 메모를 남기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정말 감사한 기회가 와서 국어 선생님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그리고 여러 신들에게 약속한 것처럼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국어를 잘 가르쳐야겠다고 또 다짐했다. 나는 교단에 서기 전에는 ‘나는 국어 지식을 어떤 강사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라고 자신하였다.
처음 세종의 연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니 나의 기대와 생각보다 국어교사 겸 담임교사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나는 ‘정확한 국어 지식 전달’이라는 나의 목표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사는 그저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그 쪽에 치우쳐 있었다. 지식만 전달할거면 학생들은 차라리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니, 나의 과거의 생각들은 소수의 우등생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나는 이곳 연서중에서 여러 학생들을 만나면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의 생각과 기대보다 아이들의 수준과 형편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처음 담임이 되었을 때,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좋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냥 우리 반 아이라서. 내 아이들이라서. 나는 자식을 두고 있진 않지만 부모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식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냥 내 아이여서일 것 같다. 그 아이가 외모가 예쁘거나 공부를 잘 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나에게로 온 내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한 번 더 눈이 가고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들 중에는 수업 태도도 바르고 대답도 잘하며 수업 이해도 잘하는 아이들도 있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환경이 딱해 보이는 아이도 조금 있었고 공부에 조금도 관심 없는 아이들도 조금 있었다. 특히 자신을 둘러 싼 환경이 복잡한 친구들은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도 집중하기 힘든 여건이 되어서 이는 곧 학습 부진이나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굳어진 태도와 방향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무엇을 해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낮은 자존감도 동반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이 가장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갔다. 내가 그 아이를 지켜보고 돌보는 어른으로써 할 수 있는 게 적어서 속상했다. 이 아이들이 잘못된 생각을 못하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학창시절을 겪으며, 내가 선생님이 되면 모범생들을 아끼고 차별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모범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히려 학습에 무기력하거나 표정이 어두운 아이들을 더 챙기게 되었다. 그런 학생들은 처음에 만났을 때는 나에게 인사도 잘 하지 않고 눈빛을 피하거나 대답도 짧았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따라가면서 밝게 인사하고 등도 토닥여 주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친해졌다고 생각이 들 때는 인사하면서 농담도 건넸다. 사실 처음에는 나만 신나하며 인사를 하니 민망했지만 점점 그 아이들도 마음을 열었고 나중에는 표정도 밝아지고 능청을 떨며 대답을 하는 모습이 뿌듯함을 주었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고마웠던 것은 비록 자신이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지만 늘 등교를 하는 점이었다. 지각없이 늘 학교를 다니는 것이 나는 항상 고마웠다. 학교를 나와 주어서, 이렇게 웃어 줘서, 같이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같이 밥을 먹고 할 수 있어서 그것이면 되었다. 그게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학습 태도나 생활 지도를 할 때, 버릇없이 대들거나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아서 정말 고마웠다. 처음에는 말이 없고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고맙다’, ‘그 점은 죄송하다’ 등 마음을 표현해주어서 나는 때때로 감동을 받았다. 그런 고마움과 감동이 나에게 용기가 되었고, 나의 호의에 아이들의 반응이 좋건 말건 그 아이들에게 멈추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친구들 외에도 우리 연서중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대체로 마음씨가 착하고 온순한 편이다. 나는 처음 일하는 학교가 연서중이라서 어떨 때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생활하면서 속상할 때도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 1년 간 첫 담임을 마치고 성적표를 발송할 때 학부모님들에게 따로 편지를 동봉하여 드렸다. 내용은 ‘이렇게 착하고 좋은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오히려 어설펐을 텐데 학생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졸업식 전날 밤. 많은 사건과 추억들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축제에 장기자랑으로 나갈 소방차의 춤을 다 같이 열심히 췄던 기억, 함께 서울에 문화체험을 하러 갔던 기억. 같이 섞여서 어울리며 뭐든지 했던 기억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들을 모으고 모아 이별을 위한 추억 UCC를 만들어봤다. 초보교사가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학생들 한명 한명을 담은 UCC를 편집하면서 아이들이 졸업한다고 혹시 내가 울게 되면 창피할 지도 모르니 눈물만큼은 보이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을 했다. 졸업식 당일 내내 나는 어설픈 웃음으로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한명 한명 포옹하는 행사에서 그 다짐은 무너졌다. 나에게 한명씩 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안아주다가 나는 결국 엉엉 울고 말았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나의 미숙했던 점들이 떠올라 미안하기도 하고, 나를 잘 따라준 고마움과 이제 쉽게 볼 수 없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뒤섞였다.
특히 친구들과 소원해져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한 여학생을 볼 때, 가장 많이 울었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까. 지금은 저렇게 적응도 잘 하여 예쁘게 웃고 다니는 게 기특하기도 했지만 어린 마음에 당시에는 꽤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커져서였다. 그리고 그 학생은 나와 헤어질 때, 자신이 나를 그린 그림이 있다며 액자에 넣어서 그걸 주었다. 나를 그려 넣은 액자를 받고 고맙다며 학생을 붙잡고 바보같이 엉엉 울었다.
올해 내가 만난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에너지가 있고 활기차며 유머러스하다. 작년부터 지켜 본 친구들인데 항상 당당하고 밝은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웃음이 많은 나와 참 궁합이 잘 맞다고 느끼면서 예뻐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우리 반 학생들과 헤어지면 어떨까?’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이번 졸업식은 안 울어야지 마음을 먹어도 그것은 어쩐지 힘들 것 같다. 그러다가 ‘이러다 매번 졸업식마다 우는 바보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나는 교사를 하면서 점점 어른이 되고 있다. 몇 명이 아닌 모두를 품어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교사를 하며 분명 힘들고 지칠 때도 있겠지만 늘 교사를 준비하던 그 치열한 마음을 잊지 않고 많은 신들에게 약속한 것처럼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더 낮은 자세로 함께 하는 선생님이 될 것이다. 얘들아, 내 아이들이 되어 주어서 오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