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내 맘을 진짜 모린다"
"니는 내 맘을 진짜 모린다"
  • 임효림
  • 승인 2017.12.01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효림칼럼]스스로 생을 마감한 도반 전곡, 60에 생긴 천석고황

ㅡ도반 전곡ㅡ

내 도반 전곡스님은 그림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크고 작은 공모전에 크고 작은 상들도 많이 받았지요. 화선지를 배접하고, 그 배접한 화선지를 다시 구겨서 그 위에 묽은 먹색으로 마애불을 그리면 우리나라 화강암이 주는 깊이 있는 빛깔이 나타나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 육십이 되면서부터 마음에 깊은 갈등을 나타냈고, 고뇌가 깊어졌습니다.

"니는 내맘을 모린다. 내가 그림쟁이로서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어째 알겠노, 내가 보기에 니도 가짜고 나도 가짜고 우리는 모두 가짜! 가짜야! 진짜를 봐야. 진짜를 그릴 거 아니가."

"왜? 또 무슨 병이 도졌노. 나도 이제는 지겹다. 맨날 만만한 게 나제. 그만하고 곡차나 한 잔 해라."

"야! 이 태평한 화상아! 내가 그림을 못 그리겠는기라! 그림? 니는 평생을 중노릇 하면서 이룬기 뭐꼬? 나는 평생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다운 그림 하나를 못 그렸다. 니나 내나 모두 가짜다. 가짜! .........니 같은 가짜가 나의 이런 절망을 어찌 알겠노?"

비가 오는 날,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예전에 내게 그려 주었던 그림을 몽땅 찢어서 버리고는 어디 여행이나 며칠 다녀오겠다고 절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가을 맑은 하늘이 더욱 푸르게 보이던 날, 그가 경주 동국대학교 불교병원 뒷산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시신은 병원에 기증하여 장례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나는 여름이 끝날 때면 절망하는 병이 생겼습니다. 언제나 되어야 그 도반에게 가짜라는 말을 면하게 될까요. 오늘 밤도 하염없이 비가 내립니다.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