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도시로 나간 출이는 끝내..."
"험악한 도시로 나간 출이는 끝내..."
  • 임효림
  • 승인 2017.11.0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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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림칼럼]감 잎 말아피우던 어린 '출이', 행려병자라니?

 

동네에서 젤 가난한 집 막내 출이는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지냈습니다. 학교도 못가고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담배 피우는 것만 배웠는데, 손바닥에 감잎을 비벼 침을 뱉고 적절하게 섞어서 종이로 솜씨 좋게 말아 불을 붙입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한 모금 빨아 코로 연기를 내 뿜으며 나를 보고 자신 있게 웃을 때는 나도 은근히 멋있다고 여기며 한 모금 얻어 연기를 빨고 기침을 하면서 그를 무척 부러워했지요.

그렇게 철없는 어린 시절.

설날이라고 떨어진 양말을 기워 신고 내 앞에 발을 내 보이며 "나도 양말 신었다" 하고 자랑 하기도 했는데요. 그때 그의 웃음은 내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는데, 성인이 되고 이제 늙어 노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 고운 웃음의 파장은 무슨 메아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어른들 몰래 내 새 양말을 그에게 주었더니 "이거 우리 엄마 신으라고 주면 안 되나?" 하고 물어서 또 한 번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든 출이.

나는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출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감잎으로 담배를 솜씨 있게 말아 피우는 아이도 보지 못했고, 출이보다 더 착하고 마음이 고운 아이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내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착한 출이는 그 후 도시로 떠밀려와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춥고 배고픈 곳으로만 흘러 다니다가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그만 행려병자로 죽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착한 아이가 살아가기에는 너무 추운 곳입니다.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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