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나도로보데스’가 일상인 사회
‘민나도로보데스’가 일상인 사회
  • 김선미
  • 승인 2017.09.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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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칼럼]하루 출근 8,000만원, 95%가 ‘빽’으로 채용

이러고도 청년들에게 헬조선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김선미 편집위원

“민나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때 유행했던 “모두 다 도둑놈이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이다.

1982년 MBC 드라마 ‘거부실록’ 시리즈 제2화 ‘공주갑 김갑순’편에서 주인공 김갑순이 입에 달고 산 이 대사는 한 시절의 유행을 넘어 지금까지도 심심치 않게 인용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사회가 공정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공주 출신인 김갑순은 일제강점기에 땅 투기, 세금 횡령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전 땅 절반을 손에 넣은 인물이다. 금으로 만든 명함갑을 일본인 고관에게 뇌물로 바친 일화로 유명하다.

세기가 바뀌어도 폐기되지 않고 통용되는 ‘민나도로보데스’

이런 사람이 관리, 순사, 세리 등등에게 뇌물을 뜯기며 말끝마다 “모두 다 도둑놈”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지만 군사반란으로 정권으로 잡은 암울한 시대상과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와 맞물리며 당시 사회를 빗댄 자조적인 유행어가 됐다. 드라마는 조기 종영됐다.

세기가 바뀐 21세기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유행어가 폐기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부정부패야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있게 마련이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에서는 급이 다르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말할 것도 없고 4대강 사업, 방산비리, 자원외교 등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지치지만, 비교가 불가한 역대급 공기업 채용비리 앞에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도둑이 도둑 보고 “모두가 다 도둑이다”라고 큰소리

1년에 하루 출근하고 8,000여만 원의 급여를 받고, 신입사원의 95%를 ‘빽’으로 뽑은 강원랜드 사례가 가장 대표적이다. 1억도 안 되는 8,000만 원? 액수로야 대형 비리와 견주면 돈도 아니겠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러고도 나라냐!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래,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기업에 특혜 채용된 것은 그렇다 치자. 정권 바뀔 때마다 황당무계한 낙하산 인사가 일상다반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직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도 하는 일이 불명확한 것도 그러려니 하자.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일 년에 하루만 출근하고도 월급을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퇴직금까지 받아갈 수 있을까. 물론 당사자는 하루 출근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1주일에 3번 출근하는 사장 상담역이라는 것도 참으로 창의력’ 넘치는 일자리이지만 단 하루 출근이라니 어이상실이 임계치를 넘어 화도 나지 않는다.

창의적인 상상력 발동, 월급은 공기업이 일은 다른 곳에서?

너무나 비정상적인 행태여서 나마저 창의적인 상상력이 마구 동원된다. 월급은 공기업인 애꿎은 한국전력기술이 주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한 것인가? 그의 전력을 보면 터무니없는 일도 아니지 싶다.

“합격자 518명 중 493명이 ‘빽’으로 합격했다.” 망하려고 작정한 곳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는 그동안도 입찰 비리, 횡령, 돈세탁, 예산 낭비 등등 각종 비리로 얼룩져 ‘비리백화점’ ‘횡령랜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최근 한겨레신문을 통해 밝혀진 채용비리는 아예 상상을 불허한다. 강원랜드의 2012~13년 선발된 신입사원 가운데 95% 이상이 청탁자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내부 감사 결과가 확인된 것이다.

공기업이 부정 청탁·특혜·세습 채용, 반칙 세계의 끝판 왕

518명 중 493명의 합격자가 청탁자와 연결됐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도 청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여러 명을. 당사자는 당연히 부인하고 있다.

더 웃픈 것은 불합격자 중 최소 200명 이상도 “내·외부 인사의 지시·청탁에 의해 선발과정 시작부터 별도 관리된 인원”이었다는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청탁자가 6명까지 겹치는 응시자도 있었다고 한다. 강원랜드는 ‘빽’이 없으면 아예 입사원서를 내서는 안 되는 그들만의 ‘공기업’이었던 셈이다.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청년실업률은 수년 째 국가적 난제가 되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데 가장 공정해야 할 공기업이 부정 청탁·특혜·세습 채용 등 반칙의 세계의 끝판 왕이었다니 이제는 분노하는 것도 감정 낭비다.

소시오패스 같은 몰염치 앞에 분노하는 것도 감정 낭비

이러고도 ‘헬조선’이 왜곡, 과장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가 국민에게 애국심을 강조할 수 있는가. 유난히 애국심을 강조한 정권 하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허탈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염치가 없다, 없다 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소시오패스 아니면 다중인격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들의 가장 큰 죄? 국민, 그중에서도 돈 없고 빽 없고 비빌 언덕이 없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희망과 신뢰 대신 “해도 안 된다” “이 생은 망했다”는 자조와 무기력에 빠지게 한 죄다. ‘민나도로보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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