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혀가 미끄러졌네!
앗! 혀가 미끄러졌네!
  • 김선미
  • 승인 2017.08.3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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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칼럼]프로이디언 슬립과 이낙연의 실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치인 설화, 그러다 발목 잡히기도

   김선미 편집위원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정치권의 경우 몸싸움도 불사하는 무력행사에서 심지어 쇠사슬, 최루탄까지 갖가지 도구들이 국회에서 난무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구는 역시 말이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동물국회’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몸싸움의 추태는 비록 사라졌지만 날선 말들의 횡행은 여전하다. 국민을 레밍 취급한다든가 비정규직 조리사를 동네 아줌마로 칭하는가 하면 정치적 지형을 달리하거나 반목, 갈등 하는 상대를 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붓는 일이나 실언, 식언, 허언 역시 다반사다.

아무리 모독과 명예훼손으로 점철된 험악한 말이라 할지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져서인지 대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별 탈 없이 지나가기는 한다.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아주 드물게는 정치인들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동물국회’라는 비아냥은 사라졌지만 막말 난무는 여전

이낙연 국무총리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진화될 것 같지 않다. 당장 세종시 지역 200여 단체로 구성된 행정수도 완성 세종시민 대책위원회가 이 총리의 사과를 촉구하며 조직적으로 반발하는가 하면 여권 내부에서 조차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이 총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수도 이전에 대해 "다수의 국민이 동의를 해주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이 총리는 “수도는 헌법재판소에서도 관습헌법이라고 했다”며 “국민 마음속에 행정 기능의 상당 부분이 세종으로 가는 것까지는 용인하지만 수도가 옮겨가는 것을 동의해줄 진 의문”이라고 말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켰다.

“진심 아니야?” 이 총리 거듭된 해명에도 지역 여론 부글부글

논란이 확산되자 국무총리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심의 동향을 말한 것이지 행정수도 이전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지난 26일 대전을 찾은 이 총리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말하지 않았다”고 거듭 해명을 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여론은 오히려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행정수도 후퇴론’이 아니냐며 개헌을 통한 세종시의 완성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게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총리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부정적인 속내를 말한 것인지, 단지 민심의 동향을 말한 것인지 그 진의를 제삼자로서는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일단 추이를 지켜보며 이 총리의 말을 믿을 수밖에는 없다.

‘프로이트의 말실수’ 은연중에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실언

이 대목에서 문득 ‘프로이트의 말실수’로 번역되는 “프로이디언 슬립(Freudian Slip)”이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사전에는 ‘프로이디언 슬립’은 은연중에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실언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혀가 미끄러져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것을 말한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서 유래한 이 말은 무심결에 입 밖으로 나왔지만 단순한 실수가 아닌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의 발로로 ‘진심’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현대 심리학이 발달하며 비판을 받기도 하고 오류와 결함이 드러나고 있지만 무의식의 영역만큼은 여전히 독보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관련 ‘우리 삶에 우연은 없으며 아무 근거도 없이 갑자기 뭐가 떠오르는 일은 없다’고 했다.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대통령 하기 싫다는 무의식의 발로(?)

대통령직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고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를 분석한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인터넷언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면,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다.”라고 말했다. 이 때 인용된 사례가 그 유명한 2012년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당시 발언한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였다.

“당시 언론은 “앗! 실수”라며 해프닝으로 넘겼지만 사실은 하기 싫었던 거다. 프로이트가 봤다면 "쟤, 대통령 하기 싫어해!"라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 김 소장의 분석이다. 탄핵은커녕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훨씬 전인 2015년 4월 29일 인터뷰 내용이다.

정치인들의 습관성 설화, 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공력 쌓아야

이 총리만이 아닌 숱한 정치인들이 설화로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중에는 자신의 말에 발목이 잡혀 정치인으로서의 입지에 타격을 받은 예도 적지 않다.

여론을 떠보거나 조작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를 담은 의도적 발언일지라도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성공적으로 굳히고 싶다면 말을 쏟아내는 것 보다 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더 많은 공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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