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나는 지금 세상 먼지 쓸고 있네"
"하하하, 나는 지금 세상 먼지 쓸고 있네"
  • 임효림
  • 승인 2017.08.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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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림칼럼]곡주한잔 한 걸 보고 노스님 왈, "젊은 스님 얼굴에 단청하셨네"

ㅡ천진도인ㅡ

"스님! 이리 와서 한잔 하고 가시요 잉, 보아하니 어지간히 출출하신 것 같은디."

농부의 말에 이끌리어 논두렁에 앉으니

"윗 절에 노스님 모시고 참선하러 오신 수좌스님이지요. 잉. 이 근동에서는 노스님을 모두 생불이라고 하는디요. 아주 어린 아이같은 큰 도인이라카이."

라고 하면서 농주를 주길래 염치 불구하고 김치를 안주로 두 잔이나 얻어 마셨습니다. 허기진 뱃속에 마신 탓인지, 본래 그 농주가 독했는지 얼굴이 불과해졌습니다.

중간에 나무그늘에 누워 한잠을 자고 날이 어지간히 저물어 절에 올라갔는데도 얼굴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노스님이 빗자루를 들고 서 있다가 나를 반겨주셨는데요. 내가 허리를 굽혀 합장하며 절을 하자, 노스님이

"하하하ㅡ 젊은 스님이 경허스님처럼 얼굴에 단청을 하셨네, 잘생긴 코가 더욱 돋보이네, 하하하ㅡ 우리 절에 큰 도인이 오셨네."

하면서 매우 반가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걸어가면 뒤를 따라오며 빗자루로 발자국을 쓸었습니다. 내가 놀라서 돌아보며,

"노스님! 왜 이러세요."

했더니, 노스님은

"하하하ㅡ! 세상에서 묻혀온 먼지를 흘리고 다니니까 내가 쓸어 내는 거야. 여긴 청정한 도량이잖아. 어히구! 먼지도 참 많이 묻혀 왔다."

하시며 마치 내가 무슨 먼지나 티끌을 흘리고 있는 듯이 쓸었습니다.

내가 다시

"노스님은 눈도 밝으십니다. 어떻게 티끌과 먼지가 그렇게 잘 보이세요."

라고 했더니, 노스님은 다시 나를 향해

"그러지 말고 내가 다 쓸어내 줄 테니 금년 하안거 동안 묵은 먼지까지 다 털어내버려."

라고 하셨습니다. <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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