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발,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세요.”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나의 꿈이자 나의 자랑이었던 우리 반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학부모로부터 아이들 생활지도에 대한 민원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는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과 특정 아이의 행동에 대한 학부모의 부정적인 판단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렇게 한 달 같은 일주일을 보냈을까. 그 연락은 퇴근 이후,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미친 듯이 상담 연수, 심리극 연수에 매달리게 된 건. 하루는 정말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가 또 어떤 하루는 정말 교사라는 직업이 뭔지, 나 같이 이런 일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 할 수나 있는 일인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내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빛초등학교에서 열린 한 연수에서 김성효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옆 선생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가 있다면, 교직 문화는 어떻게 바뀔까요? 위로는 ‘참으면 지나가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저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 그 순간. 그 순간에 생기는 것 같아요.”
가슴이 뭉클했다. 저 멀리서 강연을 하고 계신 김성효 선생님께서 마치 내 옆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힘들었구나. 그래. 너도 고생많았어. 너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거야’라고.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주의가 한 곳으로 모였다.
정말 그렇게 되면 어떨까. 지금 나 힘들다고. 이 곳, 이 학교, 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정말 잊어버리고 떠나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결국 관계. 교직 사회에서 교실의 벽은 너무 높다는 말. 그 순간 내가 그토록 찾아다닌 것이 저것이었구나. 삶의 한 순간, 따뜻하게 손 잡아주며 ‘선생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
몇 개월 전, 과중한 업무로 인해 학년 협의회나 모임에서는 가까이 뵙지 못하고 메신저만 주고받던 선생님을 뵈었다. 날이 갈수록 안색이 좋지 않으셔서 마음이 쓰이던 찰나에 아이들 생활지도 문제로 상의드릴 일이 있었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아이들 생활지도보다도 선생님의 고민을 들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도, 경력도 많으신 선생님께서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내 말을 들어주어 고마워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워,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데 해결된 것은 없어도 덕분에 속은 후련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혼자 속앓이를 하게 만들었을까.
교사들은 각각 나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고 기쁨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 어떤 선생님은 과거의 나처럼 좌절을 넘어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들,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서 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힘들지만, 더 성장하기 위해 때로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하는 모든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