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만 할 수 있는말, "이제 그만 됐다"
피해자만 할 수 있는말, "이제 그만 됐다"
  • 김선미
  • 승인 2017.04.03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미칼럼]박근혜 구속과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와 용서'

#.벌레 이야기-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

   김선미 편집위원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 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중에서.

무엇이 자식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고자 했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약국을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고 있는 가족에게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다니던 학원 원장에 의해 유괴돼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어느 어미가 제 자식을 참혹하게 죽인 살인자를 쉽사리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인 김집사의 전도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어미는 자식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사형 집행 전 교도소로 범인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범인이 사형 집행된 직후 유서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모진 고통을 딛고 마침내 살인범을 용서하고자 했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어미에게서 자식을 잔인하게 앗아간 범인은 이미 천국에 든 듯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자신은 “이미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용서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처절하고 아픈 소설이라는 1985년도에 발표된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의 내용이다. <벌레 이야기>는 2007년 칸 영화제 장편 경쟁부분에 초청돼 전도연이 한국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의 원작이기도 하다.

#. 용서-아름다운 말이기는 하나 용서를 말하기에는 일러도 너무 이르다

아주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봄,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온 나라를 분노와 탄식으로 들끓게 했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으로 일단락됐다. 그렇다고 전대미문의 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피의자 박근혜의 유·무죄를 가릴 긴 재판이 남아 있다.

그런데 벌써 정치권 일각에서는 용서와 사면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선 후보자 중 한 명은 구속까지 시켰으니 분풀이가 끝나지 않았느냐며 이제는 용서해 줄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선 주자는 "사면권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 이라고 해명했지만, 구속된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 가능성에 대해 "국민 요구가 있으면 사면심사위원회에서 다루겠다”고 밝혀 조기 대선 정국에 때 아닌 사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면의 당사자는 구치소에서 국무회의를 열어도 될 정도로 참모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간 상황에서도 드러난 수많은 혐의에 대해 단 한 번도 시인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국민을 향한 한마디의 사과의 말도 물론 없었다.

잘못을 저리른 이가 잘못에 대한 시인도, 사죄도 하지 않는데 정치권이 먼저 나서서 용서와 화해는 말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사진은 YTN 화면 캡쳐>

잘못에 대한 시인도 사죄도 없는데 정치권이 먼저 용서를 말하다

“광주에서 일어난 그 일은 정치상황이 너무 폭압적이어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럴 때 피해자의 마음이 어떨지 그런 절망감을 그린 것이다.” <벌레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말이다.

용서는 가해자나 제3자가 먼저 나설 일이 아니다. “그만하면 이제 됐다”는 말은 피해자의 몫이다. 피해자의 일이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우리에게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역시, 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에 책임이 있는 박근혜정부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잘못을 저지른 이가 잘못에 대한 시인도 사죄도 하지 않는데 정치권이 먼저 나서서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 찬성 의견이 70%가 넘었다. 용서, 아름다운 말이기는 하나 용서를 말하기에는 일러도 너무 이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은커녕 기소도 되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