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와 '얼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민초'와 '얼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김선미
  • 승인 2017.02.12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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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의 세상읽기]'국가 봉사' 운운하며 권력 탐하는 일, 더 이상 없어야...

#. 아니, 내가 최연장자라고? 나이듦을 실감한 날

   김선미 편집위원

정말 충격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쯤으로 기억한다. 한 공공기관의 회의에 참석했다. 좌석 배치가 위원장 바로 앞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으라는 대로 앉았는데 직원 설명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가나다순이 아닌 나이순이란다. 내가 그 자리에서 최고 연장자라는 뜻이었다. 이러저러한 회의에 참석해 보았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내가 최연장자라고? 저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이 나보다 어리다고? 생년월일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는 참석자 명단을 재빠르게 확인했다. 맙소사! 나보다 나이 많은 이는 그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다섯 살 위인 대학교수가 유일했다.

나이듦, 민초들은 사회적 배제의 동의어 기득권은 특권이자 천국

각 기관의 무슨 위원회, 심사라는 것이 권위를 위해 연륜이나 사회적 경력, 직책 등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대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위원들이 더 많았다. 그 때 내 나이 고작(?) 40대 초반이었다.

어쨌든 젊어진 위원회 덕분에 그때까지 전혀 의식해본 적이 없던 나이듦에 대해서,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한편으로는 마냥 젊은 줄만 알았던 나도 이제 조만간 사회에서 밀려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졌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대다수 민초들의 나이듦은 소외와 사회적 배제의 동의어가 되었으나 기득권층의 나이듦은 오히려 특권이자 천국이 됐다.

# 육십 넘으면 일은 ‘얼라’들에게 시키고 놀아야

어느 날, 청와대에서 수석을 지냈던 이가 직을 물러난 뒤 지역에서 강연을 했다. 십년도 더 지난 일로 강연의 주제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 가지 내용만은 뚜렷이 남아 있다. 육십 넘으면 일하지 말고 뒷방에서 술상 차려놓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들면 높고 좋은 자리 차지하려 아등바등 하지 말고 ‘얼라’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자리 깔아주고 울타리가 되어주라는 이야기였다.

한참 때 직업으로서의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유시민 작가도 오래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비록 30, 4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제 개인적 원칙은 60대가 되면 가능한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65세 부터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 노인들에게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이에 반발하고 반박하는 이들도 물론 적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무슨 죄라고 나이 들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무조건 뒷방 늙은이처럼 지내야 하느냐고 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물론 당연히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발언 의도는 누릴 것 다 누리고 갖출 것 다 갖춘 사람들이 나이들어서까지 권력 주변에 얼쩡거리고 고위공직을 탐하는 짓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노욕과 노추로 인생의 마지막을 얼룩지게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 고령자 지배체제 시대, 제론토크라시 도래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 고령자지배체제를 뜻하는 이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다.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 노인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노인 지배, 노인 정치가 한국사회에도 도래하고 있다. 노인들의 발언권이 갈수록 세지고 있는 요즘 우리사회를 보면 노인 지배, 노인 정치를 넘어 ‘노인패권주의’ 쯤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싶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강화되기 시작한 노인 정치는 박근혜 정부에서 전성시대를 맞았다. 수십년 간 권력 핵심에서 칼날을 휘두르다 수갑을 찬 팔십을 바라보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인 지배체제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국가적 봉사’ 운운하며 권력을 탐하는 일이 부끄러움이 되는 사회

우리사회도 한 때는 어느 정도에 이르면 뒤로 물러날 줄 아는 사회적으로 공유되던 염치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염치를 아는 것, 권해도 사양할 줄 아는 겸양지덕은 노년의 미덕이다. 생계를 위해 일과 직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국가적 봉사’ 운운하며 권력을 탐하는 일이 부끄러움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싶다. 하기야 생계형으로서 일이 필요한 이들은 절대로 요직과 권력의 자리에 다다를 수가 없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지만 말이다.

해가 바뀐 지 벌써 두달째, 설날을 맞은 지 2주가 넘었다. 그 누구도 나이 한 살을 더 먹지 않은 이는 없다. 우리 모두 노년을 행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노년을 살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염치를 아는 이들이 보다 많아지는 사회가 되기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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