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조치원 시대 마감합니다"
"26년 조치원 시대 마감합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7.01.3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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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시대 개막 앞둔 세종시의회, "의원 8명으로 시작한 연기군의회"

   1991년 4월 15일, 연기군청 별관을 개조해 만든 군의회 건물.
“부족한 저를 의장으로 선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장으로서의 책임이 막중함과 본인의 부족함을 잘 알면서도 오로지 존경하는 여러분들의 따뜻한 우정과 덕망과 너그러움을 믿고 의지하면서 제1대 연기군의회 의장으로서 감히 사회봉을 잡겠습니다.”

지난 1991년 4월 15일 세종시 의회 전신인 연기군의회는 남면 출신 임해수 의장의 당선인사로 역사적인 시작을 알렸다. 당시 의회 의사계장(현 의정담당관)은 초대 세종시의원을 지낸 진영은 전 의원(68)이었다. 1969년 6월 공직에 발을 내디딘 진 전의원은 금남면 초임 근무에 이어 서면, 남면을 거쳐 초대 군의회 의정의 일부를 맡았다.

“지방의회 선례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의회 주요 기능이 예산, 결산 승인 건인데 그걸 전에는 도(道)와 내무부에서 담당했죠. 선례도, 기록도 없는 상태에서 출범 준비를 하는 과정에 국회에 계시던 서우선 박사가 교육을 하면서 지방 의회의 산파역할을 했습니다.”

설날 전날인 26일 금남면 두진 아파트 자택에서 만난 진 전의원은 당시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의사진행에 필요한 시나리오라든가 진행 순서, 용어 등을 알지 못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연기군 의회 개원 당시 의원 수는 8명이었다. 현 새누리당 의원인 임상전, 아람달을 운영하고 있는 황순덕씨 등이 초대 군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개원식에서 의장 인사말을 사전에 준비, 단상에 올려놓았다.

   군의회 의사계장, 의사과장을 거쳐 연기군 마지막 의원과 세종시 초대 의원을 역임한 진영은 전 시의원,

그런데 어쩐 영문인지 그게 없어져 버렸다. 여전히 미스테리에 쌓여있지만 다행히 “연기군민과 행정 당국, 의회가 우리 지역을 이끌어가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나가자”는 내용으로 임 의장의 즉흥 연설로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초대 집행부와의 갈등 속에 사무과 직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사권은 집행부에 있는 반면 의원 보좌라는 업무의 속성이 초대 원 구성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직원들의 처신을 어렵게 만들었다.

의회동은 옛 연기군 청사 별관를 수리해서 2,3층을 사용했다. 본 회의장, 상임위원실은 3층, 2층은 의장 및 의원실, 사무과 직원실을 배치했다. 현 조치원 의회 건물은 2005년 29억원을 들여 신축했다. 연기군에서 사무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의회가 이제는 독립된 청사를 가져야 한다는 지역 여론에 따라 준공과 동시에 이전을 했다. 당시 의장은 3년 전에 작고한 홍종기씨였다.

이렇게 시작한 의회동은 지난 12일 보람동에 새청사가 준공되면서 조치원 시대를 마감하고 금강시대를 새롭게 열게 됐다. 지상 6층에 연면적 8,477㎡ 규모로 총 공사비는 국비 90억원, 지방비 50억원 등 140억원이 투입됐다.

2대까지 사무계장을 맡았던 진 전의원은 남면, 금남면장을 거쳐 2003년 다시 지금 사무처장 격인 사무과장으로 복귀, 의정 사무를 총괄하게 됐다. 그 사이 초대 8명으로 시작된 의원 정수는 2대에 소정면이 1명 늘었으나 3대에서 조치원읍이 1명으로 줄어들면서 다시 8명이 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초대 의회 임시회의 장면
이런 가운데 선거법 위반으로 3차례에 걸쳐 보권선거가 실시돼 새로운 인물이 의정 활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현 농협 조치원 조합장인 김모 조합장은 3대 의원에 당선됐으나 겸직이 금지되면서 의원직을 포기하는 자진 사퇴로 보궐 선거를 통해 차점자가 다시 의회에 입성하는 일도 있었다.

2009년 MB 정부의 수정안 제시에 삭발단식으로 의원들이 투쟁에 앞장섰다. 진영은 전 의원은 이때 신분은 의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3년간 사무과장으로 재직 후 명퇴, 금남면을 지역구로 의원에 당선돼 시민 여론을 전달하는 위치가 됐다.

“의정활동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초선일 경우 용어를 익히는 데 애를 먹었지만 저의 경우 의사계장, 과장을 거쳤기 때문에 훨씬 적응하기가 쉬웠어요, 후반기에는 의장을 맡았어요.”

2009년 삭발 및 단식 투쟁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유한식 연기군수를 비롯한 전 의원이 분노한 군민들과 함께 머리를 깎는 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특히, MB 정부의 수정안 선발대였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의 생방 토론에 참가한 건 잊을 수 없다.

“대전 방송 3사에서 원안 사수와 수정안 관철을 두고 주민대표들과 정 총리, 저, 이렇게 참석해서 70분 간 토론을 벌였습니다. 토론 참여 조건으로 내건 것은 노(No) 편집이었습니다. 지역 여론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그런 자리가 됐습니다.”

   수정안 반대를 위한 의원들의 삭발 투쟁은 의회가 군민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조직임을 실감케 했다.
세종시가 확정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연기군 마지막 의회는 지역구 13명에 비례 2명 등 모두 15명이 됐다. 이 숫자는 2012년 7월 1일 세종시 출범과 함께 그대로 세종시로 승계됐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권 공약으로 시작한 세종시가 성공적으로 출범했고 초대 의장에 유환준, 부의장에 김선무, 강용수 의원이 선출됐다.

그리고,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다수당이 민주당으로 바뀌면서 달라진 세종시 정치 풍토를 실감케 하면서 이제 내년 ‘6.13’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와 함께 26년의 조치원읍 청사시대를 마감하면서 ‘금강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2012년 7월, 세종시 의회가 출범되면서 연기군 시대가 마감을 했다.
   조치원 청사 시대 개막을 알리는 2005년 12월. 독립된 의회 청사를 처음으로 가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초대 군의회 본회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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