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대전전투 철도원, 마지막 생존자 숨졌다
한국전쟁 대전전투 철도원, 마지막 생존자 숨졌다
  • 금강일보 제공
  • 승인 2012.01.16 0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 24사단 딘 소장 구출작전 4인...장시경씨 최근 별세

    고 장시경 철도원

6·25전쟁 초기 대전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위된 미군 제24사단 딘 소장의 구출특공대로 나섰던 마지막 생존 철도원이 최근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전지방보훈청과 유족 등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대전역 철도원 신분으로 참전했던 장시경 철도원이 구랍 31일 대전 동구 대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향년 85세(1926년생).

고(故) 장시경 철도원은 1950년 7월 19, 20일경 1,2차에 걸쳐 이뤄진 윌리엄 F. 딘(William F Dean) 미24사단장 구출 작전에 참여한 대전역 철도원 중 한명으로, 이후 이들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국내외에 ‘용감한 철도원’으로 소개된 4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다.

그는 전쟁 발발 후 파죽지세로 대전까지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에 밀려 1950년 7월 19일경 군의 대전 퇴각 결정이 내려지자 대전 철수의 최종열차편 철도원으로 퇴각작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 대전에서 전투를 진두지휘하던 미 24사단 딘 소장이 연락이 끊기며 행방불명되자 당시 미군으로부터 딘 소장을 구출하라는 긴급지령과 함께 곧바로 대전으로 구출 작전에 투입됐다.

당시 1,2차로 이뤄진 딘 소장 구출작전에는 수 십 명의 미군 특공대원들과 함께 장시경 철도원(당시 신호원),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당시 기관조사(機關助士)·현재 부기관사), 현재영(당시 기관조사) 철도원 등 대전 철도원 4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1,2차 구출작전은 모두 실패로 끝났고, 구출작전 도중 북한군의 집중 포화로 사상자가 대거 발생했다.

1차 구출작전에선 미군 특공대 33명 가운데 32명이 전사하고, 당시 기관차를 몰고 적진을 뚫고 들어간 김재현 기관사도 퇴각 도중 적의 총탄에 숨졌다.

또 미군 특공대 20명과 장시경 철도원이 투입된 2차 구출작전도 대전 동구 판암동 인근에서 매복 중이던 적의 집중사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딘 소장 구출에 실패하며 가까스로 탈출했다.

당시 북한군은 구출작전에 투입된 열차를 세우기 위해 기관사를 집중 공격해 철도원들의 피해도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시경 철도원은 최근까지 전쟁 당시 입은 부상에 노환까지 겹치며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유족은 “딘 소장 구출작전 당시 입은 부상으로 퇴직 후에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셨다”며 “전쟁 상처로 내내 아픈 몸이었지만 철도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는 한번도 잊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6.25참전유공자이자 전상군경인 장시경 철도원은 대전현충원 안장이 결정돼 지난 2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사진은 철도원 동료들과의 모습

당시 ‘용감한 철도원 4명’ 가운데 황남호 철도원과 현재영 철도원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본보 취재 결과, 황남호 철도원과 현재영 철도원은 퇴직 후에도 대전에 거주하다 각각 지난 2006년 1월 27일과 2010년 7월 19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영 철도원은 현재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딘 소장 구출작전 당시 순직한 김재현 기관사는 1983년 국방부에서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해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서울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 고인의 뜻을 기리고 있다.

한편, 이들과 미군 특공대가 사활을 걸고 구출작전에 나섰던 윌리엄 딘 소장은 당시 대전을 빠져나오던 중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됐다. 한국전에서 장성으로 유일하게 적의 포로가 된 그는 평양으로 이송됐다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귀환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