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 지명, 엄청난 뜻 담겨있다” - 세종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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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9 목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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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지명, 엄청난 뜻 담겨있다”[세종인] 세종시 지명 연구에 빠진 윤철원 전 조치원읍장
신도성 기자  |  huje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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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5  2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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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 전 조치원읍장이 각종 자료를 펼쳐보이면서 조치원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조치원 등 세종시 지명(地名) 연구에 몰입하는 사람이 있다. 조치원읍 평리가 고향인 윤철원 전 조치원읍장. 그는 지명학자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조상들에 의해 작명(作名)된 지명들이 잊혀져가거나 후손들에 의해 잘못 알려지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지명 연구에 나서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오늘의 발판이며 오늘의 삶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결단이기에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략) 그동안 우리 조치원은 지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읍지가 없어서 유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뜻있는 지역인사들께서 지혜를 모으고 노력을 기울여 그동안 묻혀 있던 조치원의 뿌리를 찾아내었음은 물론이고, 향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여 읍지를 발간한 것은 정말 고맙고 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조치원(鳥致院)의 지명 유래에 대한 논란을 끝내는 자료를 발굴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1770년 이전에 이미 조치원장(鳥致院場)이 열렸다는 기록을 확인함으로써, 조치원 지명에 대한 역사성을 정립한 것은 무엇보다 값진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이 글은 윤철원씨가 조치원읍장으로 근무하던 2012년 12월에 발간한 ‘조치원읍지(鳥致院邑誌)’의 축간사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지명을 연구하는 윤철원 씨는 올해 공로연수에 들어가 내년에 정년하는 공무원이다. 조치원읍 평리에서 출생한 윤씨는 교동초등학교와 조치원중학을 나와 청주농고를 졸업하고 76년 9급공무원으로 연기군 남면에 처음 발령받았다. 이후 공직자로 성실하게 고향을 벗어나지 않고 근무하여 전의면장과 조치원읍장, 세종시 본청에서 문화체육관광과장을 역임하고 상하수도사업소장과 상하수도과장을 끝으로 40년 공직생할을 마감했다.

윤 전 조치원읍장이 조치원 지명 등 향토사에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계기는 조치원읍지를 발간하면서부터이다. 무엇보다 조치원 지명을 두고 왈가왈부했던 것이 어려서부터 의문점이었고, 언젠가 실마리를 풀고 싶었던 생각이 늘 있었다. 틈틈이 향토사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다보니 세종시 일원의 엄청난 역사와 문화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하여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일에 호기심이 생겼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기자는 윤철원 읍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깜짝 놀랐다. 언제 자료를 모았는지 해박한 지식과 스토리텔링에 저절로 공감이 갔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그렇지만 전문학자 못지 않게 지역에 있는 향토 사학자들이 분실된 역사를 찾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윤 읍장이 적어 온 A4용지 한 장의 개요를 보니 항목만 23개로 그 스토리를 다 듣다보면 수십 회의 시리즈가 될 것 같아 나중에 천천히 답사하고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그의 주장을 천천히 적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조치원이라는 지명을 일본인들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조치원역을 세종역으로 바꾸자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웠다”는 윤 읍장은 “그래서 역사를 올바르게 연구하여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치원 지명의 유래는 최치원 선생설, 일본인들에 의한 조천원(鳥川院)설, 새주막거리 설 등이 있다. 조치원의 어원은 저치(모치)제언, 조천, 저티, 모산, 모시터, 모시울, 재골, 띠재 등이 있다. 2012년 조치원읍지를 발간하면서 조선시대의 자료인 ‘동국문헌비고’ 1770년 조에 청주 조치원장(鳥致院場)이 4일 9일 열린다는 기록을 찾아내어 조치원이라는 이름이 조선시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조치원이라는 지명 이미 존재, “미래의 행정수도” 예견

조치원 지명이 조선시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 동국문헌비고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은 청주목 역원편에 “장원재주서삽십구리(場院在州西三十九里)”라고 나와 있다. 장원은 조치원시장과 관영숙소를 말한 것이다. 조치원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백제시대, 고려시대를 거쳐오면서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조천(鳥川)과 미호천(美胡川, 작천鵲川이라고도 함)이 합쳐지는 강가에는 갈대가 많이 우거져 새들의 천국이었다. 조선시대 말기에 청주에 관할되었을 시에 오송지역까지 조치원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윤 읍장이 허만석 현감의 제방 위치를 가르키고 있다.
자연히 강변을 끼고 있는 조치원 일대 곡창지역은 여름철 홍수 문제가 심각했다. 이 때문에 조선 세종 9년(1427년)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허만석(許晩石)이 연기관아에서 북쪽으로 15리 지점(현 조치원읍)에 조천 인근에 냇물을 막고 방죽을 건설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허만석은 연기현감으로 내려오기 전 세종을 알현하자, 세종은 “요사이 한재(旱災)로 인하여 백성들이 산업을 잃었으니, 각기 마음을 다 하여 기근을 구제하라”고 당부했다.

세종의 특별 지시를 받고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허만석은 청주 백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제방건설을 주도함으로써 넓은 농경지에 농수를 확보하여 수백년 간 연기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됐다. 허만석이 건설한 제방의 위치는 1872년에 제작된 연기현 고지도에 조천에 접해있는 저치제언(苧峙堤堰)은 다른 제언과 달리 붉은 색으로 표기되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으므로 허만석 현감의 방죽으로 추정된다. 그 위치는 평리일대 인 것으로 비정된다. 500여년이 지난 지금 세종시 조치원읍에서는 ‘허만석로’라는 이름으로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윤철원 전 읍장은 “조치원은 일제강점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충남북의 목구멍같은 역할을 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한때 충남도청 이전 후보지에다가 조치원에서 사업을 하여 성공한 김원근, 영근씨 형제가 사립 충남중학교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해 충북 청주에 학교를 세우면서 교육도시가 될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말했다.

윤 전 읍장은 지역에 대한 애향심으로 희망과 자부심을 갖고 지명을 연구하면서 스토리텔링을 하다 보니 즐겁다. 아직 생존하신 고향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역사기록에서 찾아낸 증거들, 그리고 박물관과 현장 답사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이 아리송한 역사퀴즈를 풀게 해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기자와 연기군에서 면장을 지낸 바 있는 맹의섭 선생은 ‘추운실기’라는 책에서 조치원이 앞으로 크게 발전하여 나라의 중심지가 된다고 예견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조치원읍 봉산리에 위치한 오봉산(五峰山)은 최근 시설을 보완하여 가족과 함께 걷는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오봉산은 해발 262m의 토산으로 다섯 봉우리로 이뤄져 있으며 사계절 솔잎향이 그윽한 소나무 숲 3.2km의 맨발등산로가 개설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가족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오봉산 초입에는 천연기념물 321호인 수령이 400여년 된 봉산동 향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이 향나무는 줄기 둘레가 2.5m에 달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나무의 모양이 용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가지와 잎은 우산처럼 퍼져 있어 행정수도로서의 조치원의 미래를 예견한 듯하다.

청와대와 대통령만 내려오면 세종특별자치시는 명실상부한 나라의 수도

“오봉산은 오행연주형으로 해와 달, 산, 소나무, 물로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연상케 하는데요.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임금님이 앉아야 가치가 있습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새가 날아와야 말 그대로 나라의 수도가 됩니다. 오봉산이야말로 세종시를 받쳐주는 명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치원의 인근 지도를 보다보면 새터, 새장터라는 지명이 유독 많이 나오고 있고 제비를 말하는 연기(燕岐) 지명이나 .새내라는 말에서 어원이 된 조천(鳥川)에서 보듯이 새와 연관이 많습니다. 조치원은 조치(鳥致:새들이 모여들어) 원(院:사는 동네)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도명창인 김소희 선생의 새타령을 들어보면 22종의 새가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처음 부분인 서창에서는 경치를 다루며 봄을 맞아 제비가 날아오고 오봉산의 송림처럼 산과 물을 노래하며 동양적인 이상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창에서는 새들의 특징을 묘사하는데 독창성과 다양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창에서는 청풍명월과자연이 합일하는 것으로 봉황새와 풍년새, 온갖 새들이 모여 사는 낙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행정복합도시로 시작됐지만 언제가 청와대와 대통령이 세종시로 내려온다는 선대의 예지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 전 읍장은 또한 국보 108호인 서광암 계유명 삼존천불비상이 연기지역에서만 7개 발견된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백제유민들이 나라를 뺏기고 불교에 의지하여 구국의 일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윤 전읍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시간을 내어 사라져가는 현장을 답사하며 우리 지역의 잘못 알려진 지명을 찾아내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후손들이 문화콘텐츠, 역사콘텐츠로 공유하여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게 소박한 꿈”이라고 토로했다.
새들이 많이 모여드는 조치원 일대의 조천과 미호천이 합쳐지는 지역에는 새에 관한 지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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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
읍장님님! 조치원 지명 유래를 새로이 발굴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역민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6-10-19 12:40:11)
세종시문화관광해설사 임재한
윤철환 읍장님 대단하십니다
좋은 자료 많이 발굴해 주세요
그리고 세종향토사에 오셔서 같이 공부해요 ㅎ
기다리겠습니다.
세종향토사 연구소 임재한간사

(2016-10-17 23:24:12)
반가운이
오랫만인데 읍장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갑네요.
조치원을 더 알수 있는 소중한 기사네요.

(2016-10-17 14:50:41)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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