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산소를 찾아서
부모님 산소를 찾아서
  • 강신갑
  • 승인 2012.10.11 21: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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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시인 강신갑의 시로 읽는 '세종']우람한 아버지, 인자하신 어머니, 아~

 
세종시 고향 선산에서 바라보는 우산봉과 계룡산

부모님 산소를 찾아서

드높은 하늘이 더없이 맑고 푸른 가을이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부모님 산소를 다녀오기로 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꿈자리가 뒤숭숭할 때 또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부모님 산소를 찾곤 한다.

부모님 산소는 세종시 금남면이라는 곳의 선산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 시내를 벗어나자 감미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마냥 즐거운 듯 춤을 춘다. 차창으로 부서지는 금싸라기 같은 햇볕이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선산 입구에 도착하여 차를 대고 짐을 꾸려 선영에 오르기 시작했다.

밭에는 빨간 고추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논에는 고개 숙인 노란 벼 이삭이 이슬을 머금고 있다. 들국화 내음과 흙냄새가 향기롭다. 외딴 인가 주변의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감들이 제 빛깔을 내며 계절의 정취를 토해내고 있다.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꿩 소리와 곤충의 노랫소리가 계곡의 적막을 사른다.

부모님 산소는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십여 분쯤 올라가야 하는 산 중턱에 있다. 산소의 양옆으로는 산줄기가 병풍같이 펼쳐져 있고 저만치 남향 앞으로는 맑디맑은 용수천이 계룡산의 자태를 드리우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산소에 이르러 준비해간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한 뒤 곧바로 잔디 위에 누웠다. 창공에 떠있는 흰 구름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따갑지도 차갑지도 않은 햇살과 산들바람이 상큼하게 온몸을 감싸고 든다. 잠시 눈을 감으니 대평리 금강 변 제방을 쌓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사형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가에 아롱거린다.

산소를 찾은 나를 반기시는 우람한 체구의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산소 앞에 올렸던 음식을 일부 거두어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봉분에 나 있는 잡초와 산소 주변의 칡넝쿨이며 돌멩이를 치웠다.

선산 너머에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이 있다.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과 자상하시던 동네 어른들의 싱그레한 미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나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덧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만큼 역동성이 더욱 느껴지는 삶이다.

벌초를 하거나 명절 때 그리고 한식날 등에 성묘를 하러 선산에 오르면 집안사람 중 한두 명은 거의 만나게 된다. 태초에는 할아버지가 한 분이셨겠지만 나무가 가지를 치듯 일가가 번성하여 후손도 많아지고 선산에 묘지도 즐비해졌다. 아직은 선산에 묘지를 쓸 자리가 많이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선산 전체가 묘지로 변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눈을 들어 인근의 밤나무를 바라보니 마음껏 벌어진 밤 송아리에서 윤기 짙은 알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밤나무 아래로 발길을 돌려 다가가니 여기저기 알밤이 떨어져 있다.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을 비닐봉지에 주워담았는데도 서너 되는 족히 됨 직해 보인다.

산소 주위의 나무는 어느새 단풍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풍성한 가을의 정경과 한 움큼의 거름이 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단풍잎에서 자연의 순리를 또 한 번 느낀다. 어느 틈엔지 살진 방아깨비 한 마리가 내 어깨에 기어올라 앉아 있다가 숲 속으로 날아간다.

부모님 산소로 다시 와 절을 올리고 짐을 챙겼다. 미풍에 노닐던 풀잎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듯 집으로 향하려는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중천에서 기울어지려 하는 해님은 풍요의 광선을 온 누리에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고향 선산에는 정중동한 새 천 년의 가을이 그렇게 결실 속으로 깊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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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안가 2012-10-12 16:04:31
가을하늘에 부모님 얼굴 그려보고, 고향 내음새 흠뻑 적셔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