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임영호
  • 승인 2016.08.19 18: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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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칼럼]괴테 파우스트<상>, 시대상황 반영한 '진지한 농담'

   파우스트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깨달았다.  

유럽을 출장 갈 때 으레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친다. 그 곳에서 짬날 때 가보는 곳이 괴테하우스이다. 20대였을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사랑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테(1749~1832) 하면 무엇보다도 ‘파우스트’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일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 동안 만든 필생의 역작이다. ‘파우스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1년 전인 1773년에 집필을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죽기 전 2부를 완성하고 밀봉하여 남겼다. 그때 그의 나이 82살이었다.

‘파우스트’는 읽히지 않는 명작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작품 속에 인간이 있고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고 한 인간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전(古典)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영원히 되풀이 하여 비판되고 해석된다. 완전하게 이해 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읽고 있는 독자가 어떤 여건에서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이해된다. 한 가지 내용을 가지고 백 가지로 말해진다.

‘파우스트’에 대한 동영상 강의도 몇 번 들었다. 여러 사람의 감상문도 읽었다. 번역에 문제가 있나 의심하여 책도 여러 번 바꾸어 읽었다. 그래도 어려웠다. 독일에서 유학한 독문학자 김수용 교수가 논문처럼 쓴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을 밑줄처가며 읽었다. 몇 번 읽으니 괴테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파우스트는 시대상황을 반영한 ‘진지한 농담’이다.

괴테는 죽기 5일전, 친구인 훔볼트(1769~1859) 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우스트’에 대하여 ‘진지한 농담’이라 했다. 진지함과 농담이라, 진지함과 농담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다. 깊은 사색에서 나오는 그 무엇이 담겨져 있기도 하고, 밝고 가볍고 유희적이며 즉흥적인 사실로 그것을 해체시키기도 한다. ‘파우스트’는 신의 속박을 벗어난 인간에게 던지는 무거우나 무겁지만도 않은 그런 작품이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다. ‘파우스트 박사’이야기는 괴테가 살아있을 때 이미 여러 내용으로 창작되어 공연되거나 출판되었다. 작가의 주된 사명은 인간을 시대 상황 안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파우스트’도 예외가 아니다. 괴테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자신의 혼과 시대정신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당시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였다. ‘신의 죽음’이라는 말로 기독교는 몰락하고, 인간의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프랑스 혁명(1789~1794)은 앙시앵레짐의 봉건 군주 국가를 타파하고, 자유·평등·박애라는 시대정신으로 시민계급이 중심이 되는 근대국가로 유럽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인간은 창조주인 신의 실패작이다.

“아무도 당신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어도
당신의 지고한 업적은
창조한 그날부터 장엄하도다.” (268~270)

파우스트 극 제1부가 시작되기 전, 작가의 심경과 이 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극의 서론 부분이 있다. ‘헌사’, ‘무대 위에서의 서연’, ‘천상의 서곡’이다. 이 중 극의 내용과 직접 관통하는 것은 ‘천상의 서곡’이다. ‘천상의 서곡’이 열리면서 세 명의 대천사, 라파엘·가브리엘·미카엘이 등장하여 신의 천지창조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괴테의 생가

이어 천상과 지상에서 활동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이하 ‘메피스토’ 또는 ‘악마’라고 칭한다)가 등장하여 신 앞에서 ‘인간’에 대한 신의 창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인간은 창조주인 신의 실패작이라고 단정한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악마가 말하는 인간은 완전한 도덕성이 구현된 신성(神性)과, 도덕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본성(本性) 사이에서 방황하는 분열되고 모순된 존재다. 인간성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하늘로부터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그리고 땅으로부터는
모든 지고의 쾌락을 요구하며(…)” (304~307)

세상의 창조는 지금도 완전함을 위하여 진행 중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317)
“선한 인간이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 (328~329)

악마는 파우스트를 비난한다. 파우스트는 인간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신은 여전히 파우스트를 총애한다. 신은 인간을 낙관적으로 본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는다는 말에 묵시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미래에는 밝음으로 나올 가능성과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늘 무엇인가 추구하는 인간은 한때는 타락하고 파괴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착한 본성으로 돌아온다고 신은 믿는다. 신이 판단하기에 세상의 ‘창조’는 완전한 것도 완결된 것도 아닌 지금도 진행 중인 ‘무한정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악마와 신은 지상의 파우스트를 두고 내기를 한다.

구약성서의 ‘욥기’에서 욥을 사탄의 손에 내어 주었던 것처럼, 신은 파우스트를 악마에게 내어 주며 시험을 해보라고 부추긴다. 신은 인간과 악마의 관계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다. 중세의 신본주의에서 현대적인 인본주의로의 선언이다. 신은 ‘천상의 서곡’ 이후 전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신과 악마의 내기로 파우스트는 시험 당한다. 이제 인간 ‘파우스트’가 지배적 주인으로 악마와의 관계에서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

“아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도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속속들이 연구하였도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난 가련한 바보에 지나지 않으며
옛날보다 더 나아진 것 하나도 없도다!” (354~359)

학자 파우스트는 신처럼 되고 싶다.

파우스트는 뛰어난 학자다. ‘초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혜로움이 있고, 학문에서부터 마법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서재에서 한탄한다.
그에게 지금 있는 서재는 답답할 뿐이다. 창살 없는 감옥이다. 그는 자신을 ‘쓰레기통을 뒤지는 벌레’에 불과하다고 비하하기도 한다. 파우스트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삶을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괴테


"나는 그저 놀기만 하기 에는 너무나 늙었고,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기에는 너무나 젊도다.
세상이 내게 대체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결핍을 참아라! 이것이 영원한 노래이다."(1549)

무엇 때문에 절망에 빠졌을까? ‘파우스트’는 제도권 학문의 영역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지 인식하고 싶어 한다. 그의 소망은 신과 같이 전지적 존재가 되려는 것이다.(382~383) 자신의 운명을 신이나 사회규범에 맡기지 앓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신을 배신한 인간이다. 인간의 이성이 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봐야하나? 중세시대에서 보면 그는 악마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유혹임을 알면서도 계약한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났다. 메피스토는 부정(否定)을 일삼는 정령(精靈)으로 모든 만물은 멸하기 때문에 아무런 생성도 행동도 할 필요가 없어 허무하다고 생각한다.(1338~1344) 악마는 “파우스트 당신에게 어떤 사람도 아직 구경하지 못한 것을 보여 주겠다”(1674)고 하며 현세에서 자기가 파우스트의 종이 되어서 온갖 부와 명예, 쾌락을 누리도록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코레일 상임 감사위원(현),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결국 파우스트는 악마의 유혹임을 알면서도 계약한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영혼을 버릴 것을 각오한다. 파우스트도 약속한다. 자신이 "머물러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1700) 하며 무엇인가에 만족하여 더 이상 행동하지 않게 되면 내기에 진 것이고 그때는 악마가 자기영혼을 가져도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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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 2017-01-07 04:00:48
새벽 3시 53분에 드디어 상중하를 다 읽었습니다. 기쁨과 희혈의 에너지가 흘러넘치게 하는 글입니다.
임영호 선생님의 펜이되었음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