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임영호
  • 승인 2016.06.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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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칼럼]영국의 대문호, 셰익스 피어의 4대 비극

   셰익스피어 (출처:구글)
하나의 대륙정도로 엄청 큰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영국의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한지 400년이 지났어도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열광은 그치질 않는다. 삼성이 운영하는 에버랜드도 5월의 장미축제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컨셉으로 셰익스피어 로즈 가든을 오픈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열기는 왜 가시지 않을까? 만세(萬世)에 통용되는 그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거의 모든 작품이 등장인물의 성격에 관한 것들이다. 바로 이점이 죽은 지 400년이나 지났어도 인간인 우리의 머리를 때리고 많은 깨우침을 안겨준다.

우리는 한 번의 삶을 사는 운명이다. 장자의 이야기에서 장자가 나비가 되기도 하고 나비가 장자가 되기도 하나 그것은 단지 꿈에 불과하다. 현실은 오직 한 인간의 하나의 삶 이외 다른 삶을 함께 살아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있다면 단 하나, 소설을 통하여 색다른 삶을 느낄 수 있다.

셰익스피어 소설은 다양한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중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는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준다.

햄릿, 정말 우유부단한 인간인가?

세상 사람들은 햄릿이 보통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각자 자기 앞에 놓여있는 크고 작은 선택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매번 바로 결정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우리는 이것을 햄릿 증후군이라고 한다.

정말 햄릿은 우유부단한 사람인가? 그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친부의 살인자이자 왕위의 찬탈자, 그런 왕을 추대하고 있는 공신 그룹,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외국 군대들이 햄릿을 둘러싼 환경이다.

더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부를 죽인 현재의 왕과 재혼했고 애인의 아버지와 오빠조차 자신의 편이 아니다. 친구들도 권력의 편에 붙어서 배신하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떻게 하면 복수를 끝내고 왕권을 되찾아올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 증거를 찾기 위한 용의주도함은 우유부단으로, 심적인 고통은 우울로, 결단성은 광기로 볼 수 있다.

   햄릿 (1990년 개봉작)

소설이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다면 나는 그가 우유부단함보다 통찰력과 지각력을 지녔다고 본다. 햄릿은 1601년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웬만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서 한 햄릿의 독백은 오늘날까지 크게 회자되는 말들이 많다. 햄릿의 영향력은 크다. 그만큼 공감이 크다는 뜻이다. 그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는 '햄릿과 돈키호테'에서 ‘햄릿형 인간’은 이 세상과 인간에 기여하는 바가 하나도 없고, 절반 쯤 광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여 인류 역사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했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햄릿이 더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절친 호레이쇼가 햄릿을 따라 죽으려하자 햄릿은 반대한다. 호레이쇼 당신까지 죽으면 역사가 그저 햄릿의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것으로 규정하여 햄릿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살아남아서 그 역할을 해 달라고 한다. 이것이 그의 진심이다. 햄릿은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셀로, 어떻게 해서 멍청한 장군이 되었나? 질투심인가?

오셀로는 아프리카 북부지방의 무어인이다. 흑인 장군이다.
그는 귀족집안의 아가씨와 사랑하여 결혼했다.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능한 군인이라도 일반적으로 무시하는 흑인이 귀족의 예쁜 딸과 결혼한다는 것은 시기질투 대상이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도 못하는데 흑인 주제에 감히 어떻게......

틈만 보이면 악마가 낀다.
이 틈 사이에 ‘이아고’가 등장한다. 이 연극에서 오셀로보다 비중이 더 크게 보인다. 이아고는 평소 인종차별 의식에 뿌리박은 증오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증오를 가진 사람이 가장 정직한 사람인 양, 충직한 부하인양 하면서 오셀로의 귀를 독차지한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말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철썩 같이 믿는다.

   오셀로
오셀로를 위하는 척하면서 이아고가 하는 말 한마디는 결국 오셀로를 미치광이로 만든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은밀한 암시로 생각하고 의심 없이 행동에 바로 옮긴다.

고결한 성품을 가진 인간이 자신이 신뢰하고 있는 부하의 말에 넘어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부관과 간통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제 손으로 아내를 죽였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오셀로를 이렇게 비극으로 몰아가게 한 것은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질투다. 질투심에 정신이 없어서 마음을 제어하지 못했다.

문제는 우리 주위에도 이아고와 같은 특별하고 비범한 존재들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런 사람이 악의를 품고 달려든다면 당하지 않을 사람이 정말 있을까?

이아고 같은 악한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우리 스스로 자신이 없고 열등감이 있을 때,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때, 이것이 나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세상의 나쁜 이아고에 맞서려면 먼저 본인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여야 한다. 스스로 솔직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기 내면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 하여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자기 주견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결국 내 마음이 강건해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리어왕, 자기중심의 생각이 거지로 만들었다.

리어왕은 정치판이나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신하들도 그에게 충성을 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교적 군주로써 자질과 인품을 갖춘 사람이다. 리어왕은 자기 딸들에게 누가 가장 자기를 사랑하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사랑의 크기에 따라 권력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권력은 막중한 것인데 그것을 자기 맘대로, 그것도 보이지 않은 사랑을 가늠자로 하여 결정하려 한다.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 코달리아에게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가장 나중에 물어본다. 쉽고도 간단한 뻔한 답이지만 막내딸은 리어왕이 원하는 답을 하지 않는다. 진실과는 상관없는데도......

리어왕은 나라를 쪼개서 첫딸과 둘째 딸에게 자기 권력을 나누어 준다. 그런데 착각했다. 권력을 내놓아도 전처럼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권력의 속성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결국 얼마안가 리어왕은 두 딸에게 버림받고 쫓겨나 황야를 헤매는 신세가 된다. 리어왕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은 독사의 이빨에 물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

   리어 왕

그런 면에서 조선 태종은 리어왕보다 한 수 위다. 세종에게 왕권을 이양하고 상왕으로 물러날 때도 실권만은 주지 않았다. 왕위는 주었지만 병권만은 주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게 잔인했다. 진심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에게 혹독한 형벌을 주었다. 막내딸 코딜리아의 죽음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운명을 주었다.

코딜리아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고 아버지의 성격을 알고 있으면서 사춘기 소녀처럼 반항했다.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리어왕의 마음에 맞게 답했어야 했다. 그녀는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소통이 부족하다. 상대방의 진심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내려고 해야 했다.

리어왕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하인들의 행동을 눈여겨보자. 글로스터 백작이 국왕을 구출하기 위해 프랑스와 내통한 것을 알고 콘월 공작이 글로스터를 잡아서 취조하는 장면에서 하인이 극구 만류한다.

“어릴 때부터 당신을 모셔왔지만 이건 아니다.”
“이렇게 잔인해선 안 된다.”

하인은 이렇게 진언하고 콘월의 칼에 죽는다. 정의는 절망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맥베스처럼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왕가의 피가 흐르나 천운이 없어 왕이 되지 못했던 남자가 있다. 그런데 왕에 반기를 들고 반역할만한 명분과 용기가 없었다. 당시 여러 대의명분과 정황이 현재의 왕 덩컨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맥베스와 뱅쿠오는 승리한 후 돌아오는 도중에 황야에서 세 마녀와 마주친다.

마녀들은 전쟁영웅 멕베스에 대하여 예언하고 찬양한다. 세 마녀들의 예언대로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되었다. 이것은 맥베스의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결국 왕이 된다는 자기운명을 믿고 던컨 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다. “얼굴만 보고는 마음의 본성을 알 수 없다.”

마녀들은 뱅쿠오에게도 예언을 했다. 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손이 왕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뱅쿠오는 마녀들을 ‘어둠의 자식들’이라 치부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처럼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남자를 이상향으로 그렸는지 모른다.
맥베스의 욕망은 자기양심을 버려야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양심을 버린 자는 영혼의 안식도 버려야한다. 욕망과 양심의 불일치는 맥베스를 실패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

마녀의 예언이 실현된 결과는 만족감과 행복이 아닌 죄악감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믿을 곳은 마녀들이다. 맥베스는 마녀들이 자기운명의 보증인이라고 믿었다. 마녀들의 우두머리는 과신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다. 사실 마녀들의 예언은 진실이 아니고 그저 말장난뿐이었다.

맥베스가 걸려들은 것은 마녀의 예언이다. 왜 마녀가 유독 맥베스를 기다렸을까? 그것은 마녀가 기다린 것이 아니다. 맥베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욕망이 마녀를 불러 들였다.

마녀의 존재는 외부적인 장식에 불과하고 실은 내부의 목소리가 외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맥베스에 문제가 있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코레일 상임 감사위원(현),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마녀는 인간욕망을 빗대서 한 말이다. 야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인생의 궁극적 승리자는 야망에 휘둘리지 않은 사람이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며 야망을 관리해야 한다.

맥베스가 죽음을 앞두고 회안에 잠겨 독백한다.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기 시간에는 무대 위에서 장한 듯이 떠들어 대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일장의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 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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