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에 꽃잎처럼 떨어지는 가미카제
항공모함에 꽃잎처럼 떨어지는 가미카제
  • 임영호
  • 승인 2016.05.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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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칼럼]일본인· 일본문화에 대한 분석이 가장 뛰어난 책, '국화와 칼'

일본 구마모토에서 지진이 일어나 이재민이 하나 둘이 아니다.
거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다. 가족 8명이 죽 두 그릇을 받아 가고도 더 달라고 항의하는 이가 없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누구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다. 이웃나라 일본인,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일본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지나친 것인가?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자존심이 일본을 우리 마음속에서 괴물을 만들었나?

일본에 대한 호기심을 달래기 위하여 '국화와 칼'이란 책을 꺼냈다. '국화와 칼'. 아주 대조적인 단어 두개다. 이 책은 무려 50년 이전에 출간된 책이다. 일본인에 대한, 일본문화에 대한 분석이 가장 뛰어난 책이라는 평이다. 아직도 서점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 1987~1948)는 학자다. 그것도 인간의 삶의 현장을 연구한 인류학자다. 그의 말년인 1944년 미 국무부로 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일본이 항복하기 1년 전 미국은 전후 일본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결론은 일본은 패전국 독일이나 이탈리아하고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특수한 문화가 있다. 그 특수한 문화가 무엇일까? 일본인은 누구이고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편견 없는 이해를 하고 싶었다.

일본의 전쟁 수행방식은 군사적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전쟁을 정신력 싸움이라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물질신앙과 일본의 정신신앙과의 전쟁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 잎처럼 미 항공모함 활주로에 떨어지는 가미카제 특공대도 그렇게 싸우고 그렇게 죽었다.

질서의 나라이다
일본은 계층적인 질서를 좋아한다. 사람과 사람사이, 개인과 국가관계에서도 계층이 관념의 기초다. 국제관계에서도 그렇다. 진주만 공격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일본 외교사절이 찾아왔다. 일본의 외교정책은 모든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각자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외쳤던 ‘대동아 공영권’에서 일본은 아시아의 형이며 다른 나라는 아우들이다.

일본은 인사할 때 반드시 서로 간의 사회적 지위의 격차를 암시한다. 윗사람에게 경어를 쓰고 허리를 굽히며 꿇어앉는 예의를 표한다. 일본인 식당을 이용할 때 종업원이 방 출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다소곳한 태도로 시중드는 모습을 볼 것이다.

일본은 천황·ᆞ영주ᆞ·ᆞ사무라이ᆞ·ᆞ농민·ᆞᆞ공인ᆞ·ᆞ상인 그리고 천민 순으로 계층을 형성해왔다. 메이지 유신 전에는 귀족과 사무라이에게만 성(姓)이 주어졌다. 그들만이 지배계급이었다. 그들은 질서와 계급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 각자 독점적인 일을 한다. 가정에서도 부인보다는 남편, 동생보다는 형, 며느리보다는 시어머니의 의견이 우선이다.

서양의 봉건제도는 도시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여 중산계급으로 성장해 그 압력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일본은 그런 중산계급이 탄생하지 않았다. 도쿠가와 막부는 상인들이 성장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지역과 지역 간에, 국가와 국가 간에 교역을 엄격히 제한했다. 그 속에서 돈을 번 상인이나 돈놀이꾼들은 그들의 자식을 사무라이들하고 양자나 혼인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계층 간 이동을 하였다.

천황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일본 근대화 초기의 구호는 존왕양이(尊王攘夷)였다. 천황을 받들고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이다. 조선말 대원군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영주나 사무라이 자신들은 왕정복고(王政復古)야말로 도쿠가와 막부 대신에 일본을 지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868년 왕정복고는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정부는 그들이 기내하고는 영 딴판이었다.

 

이 개혁정부의 주도는 상인계급과 하층 사무라이들이었다. 그들은 유능하고 야심찬 정치인을 내세웠다. 1871년 정부고관을 비롯하여 핵심요원 100여명을 미국과 영국에 파견하였다. 최단 시일 내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정치인들은 일본의 계층제를 없애려는 어떤 사상도 배척했다. 1880년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는 친교가 있고 현인이라고 생각하는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에게 천황제에 대한 존폐의견을 물었다. 스펜서는 천황제야말로 국민복지의 기초로 이것을 소중히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천황을 계층제의 정점에 두고 쇼군을 제거하고 번을 폐지하여 영주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사이의 모순을 없게 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새로이 국가와 국민사이에 알맞은 위치와 의무를 세밀히 규정했다.

일본 수뇌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천황을 직접 배알할 수 있고 천황에 의해 임명된 관리들이다. 그들은 각료, 도지사, 판사, 각 부처 장관들이다. 선거로 선출된 사람은 높은 지위를 갖지 못했다. 지방정부인 시·ᆞ정ᆞ·촌은 공동체를 위해 지역원로들이 지휘했으며 학교와 경찰, 재판소에 대하여는 자치권이 없었다.

일본은 재계에서도 질서를 만들었다. 귀족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기업의 리더 격인 재벌을 만들었다. 우호적인 상인가문을 선택하여 전략산업을 그들에게 맡겼다.

일본은 신도(神道)국가인가? 그렇다. 그러나 신도는 종교는 아니다. 신도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통치자인 천황숭배로 구성되어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 천황을 중심으로 국민적 통일성과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예배의식은 없다. 참배시간에 간단한 의식만 있다. 신사(神社)는 하나의 축제의 장소이고 휴일에 시민들이 즐기는 공원이다.

온(恩)은 의무이다
일본인들은 세상에 태어난 단순한 사실까지도 세상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주어준 사람에게 조차도 빚진 마음을 갖는다. 이런 신세는 크던 작던 그 은혜에 보답해야만 한다. 이에 해당하는 말이 온(恩)이다.

윗사람이면 몰라도 자신과 동등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보답하는 빚을 지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일본인의 변하지 않은 목표는 무엇일까? 나는 명예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존경받고 싶어 한다. 일본인은 죄의 중요성보다는 수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둔다. 일본인은 주(忠)ᆞ, 고(孝),ᆞ 기리(義理)의 표현처럼 인간의 의무가 몇 개의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 미국인처럼 어떤 사람을 나쁘다고 비난하는 대신에 그 사람이 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명예가 목숨이다
천황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는 우리나라나 중국이 같은 덕목이다. 그러나 기리(義理)는 일본 특유의 기질이다. 기리를 따르는 것도 한마디로 세상의 소문, 평판이 무섭기 때문이다. 기리란 올바른 도리, 사람이 쫒아야만 하는 길, 세상에서 체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이다. 기리는 신세를 지고 있는 주군에게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다.

일본인은 이름에 대한 기리도 있다. 그것은 자기 명예다. 체면이나 명예를 소중히 하는 일본인에게 자제(自制)도 자중(自重)도 기리의 일부분이다. 신중에 신중,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인이 자기의 행동을 비판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라는 의미이다. 홍수가 마을을 덮칠 때도 우왕좌왕 하지 않고 최소한의 필수품만 챙긴다. 피난가면서 아비규환이나 우왕좌왕도 하지 않는다. 굶주리고 있어도 이를 쑤시면서 식사를 마친 시늉을 한다.

전문가로서의 기리도 대단하다. 실패나 무능의 오명을 들으려고 안한다. 각 분야마다 장인(匠人)이 있는 이유이다. 일본인들이 기록 광이고 지적 호기심이 대단한 것도 어떤 직업이든지 일에 종시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리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일본인들은 경쟁자가 있으면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 우리와는 반대다.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능률을 측정할 때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는 경쟁의 기회를 최소한으로 한다. 일본의 계급제도도 그런 역할을 한다. 각 계급이 준수해야할 규칙을 세밀하게 규정해서 직접적 경쟁을 최소한으로 한다.

상대방에게 수치를 유발하지 않도록 갖가지 예의범절도 있다. 일본에서는 어디서나 중개자가 필요하다. 실패했을 경우 상대방의 체면을 고려한 것이다. 서로 경쟁하는 두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을 막는다. 혼담이나 구직, 퇴직에 양쪽을 중개하는 알선자가 있다. 주인이 손님을 맞을 때 농부의 집일 경우 새 옷을 갈아입고 대면한다. 동네총각이 처녀에게 구애할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 변장한다. 어떤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할 때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한다.

그들은 모욕도 크게 느낀다. 그럴 때 복수를 한다. 법질서가 뿌리내린 오늘날에는 복수보다는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은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타인의 시선이 행복보다 우선이다
일본인들은 ‘미움 받을 용기’가 없다고 본다. 그들은 인간이 선하느냐 악하냐가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냐 아니냐에 신경을 쓴다. 그런 면에서 늘 자중하고 신중한 태도를 가진다. 실패하지 않도록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긴장한다. 개인에게 아주 무거운 부담이다.

   '국화와 칼'은 일본문화를 좀 더 정확하고 가깝게 들여 본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은 일본 지진을 보도한 YTN 화면 캡처>
그런 사람이 업신여김을 당했다면 참았던 울분을 폭발시켜 극도로 공격적인 행동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일본은 세상의 비난과 추방을 두려워하는 공포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개인의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설사 미움을 받더라도 자기의 행복이 우선이다.

일본인들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자기욕망 충족을 죄악시 하지 않는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육체적 쾌락의 하나는 온욕(溫浴)이다. 상류층에서는 언제나 순번에 따라 가정 목욕탕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손님이 들어가고 다음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장남이 들어가서 마지막으로 가장 아래 하인이 들어간다. 그들은 새우처럼 새빨개져 탕에서 나온다. 그리고 가족이 모여 하루 중 가장 느긋한 저녁 한 때를 보낸다.

일본인들은 소식한다. 식사는 즐기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필요라고 본다. 성적향락에 대하여는 일본인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들은 아내에 속하는 영역과 성적향락에 속하는 영역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명확하게 구분한다. 일부다처제와는 다르다. 여유 있는 남자는 정부를 둔다. 게이샤일 수도 창부일 수도 있다.

깨달음이란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미국인들이 자기훈련을 위한 방법이 없는 데 비하여 일본인들은 엄격한 자기훈련을 한다. 불교신자인 일본인들은 사후세계나 인과응보사상조차 버렸다. 일본에서 자학적 수행은 모조리 제거되었다. 일본의 성자들은 우아한 시가를 짓고 다도를 즐기고 달맞이나 꽃구경을 한다.

일본인들은 불교의 종파의 하나인 선종을 선호한다. 많은 종교는 타인의 힘, 신의 힘에 매달리나 선종은 자기 마음속에서만 존재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증대할 수 있다. 일본의 무사들은 그들의 성향에 꼭 맞는 가르침이라고 느꼈다.

선종은 ‘난센스 덩어리’이다. 선종에서 제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고안(公案)이다. 고안은 글자 그대로 문제라는 뜻으로 그 종류가 1700종이나 된다. 선승의 일화집을 보면 하나의 고안을 풀기 위해 7년의 세월을 소비한 것은 예사였다.

깨달음의 단계는 무아(無我)이다.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무심(無心), 무념무상(無念無想)이라한다. 남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무겁게 일본인들을 억누르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인은 순하나 돌변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간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 아이는 자라면서‘에티켓’이라는 규칙이 증대되어 주의 깊게 세상을 살아가는 채무자의 지위로 서서히 옮겨간다. 유아기가 지나 결혼 전후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자유는 최저에 이른다. 속박이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신중을 요구하는 일본인들은 겁 많은 국민이지만 때로는 저돌적으로 보일 만큼 용감하다. 이런 이중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저자는 서양인들을 놀라게 하는 이원성의 원인을 어린 시절에 받았던 훈육의 불연속성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이든지 받아 들여졌던 유아기의 경험과 그 후 성년기의 엄격한 속박에 제각기 반응한 것이라고 본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이 책을 끝내면서 '국화와 칼'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일본에서는 가을이 되면 국화품평회가 열린다. 꽃잎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꽃 속에 작고 눈에 띄지 않은 철사로 만든 고리를 끼워서 올바른 위치를 지키게 한다. 일본인들의‘각자 알맞은 자기위치에서의 찾기’를 보는 것 같다. 숨 막힐 것 같은 느낌이다.

일본에서의 칼은 공격의 상징이 아니다. 이상적이고도 훌륭하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비유다.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에 녹이 슬기 쉬운 마음 속 칼이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빈틈없이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뜻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사무라이 정신의 부활이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 적이다
저자는 끝으로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 적이라고 단정한다. 일단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위치를 구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군비무장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위치를 찾을 것이라 한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나 자위대의 군비확충을 볼 때 저자의 염려는 반세기를 지나 증명되는 것 같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코레일 상임 감사위원(현),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일본은 우리에게 먼 나라다. 세종을 도와 한글창제에 공헌한 신숙주(1417~1475)는 소위 일본지식의 집대성인‘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쓸 만큼 당시 최고의 일본통이다. 그는 임종 시 성종에게 일본과의 화평을 깨뜨리지 말도록 간곡히 유언했다. 한일 양국은 싫으나 좋으나 이웃나라로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그렇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면서 좋은 관계로 나가는 길밖에 다른 묘수는 없다. 일본이란 화두는 정말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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