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평민, 모두 살기 좋은 곳은?
사대부, 평민, 모두 살기 좋은 곳은?
  • 임비호
  • 승인 201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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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이중환의 놀이터 세종시, "물 많고 논은 기름지고..."

   2014년도 부강철교 옆 부용리 습지 모습
근 10여 년 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풀었다.
인문지리학의 관점에서 쓴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선생의 고향이 장기면 사송마을이고, 독락정이 어릴 적 놀이터였다는 것과 조부와 부친의 묘가 세종시 남면 고정리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부와 부친 묘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답답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건설청에 근무하시는 서모 팀장님과 김모 연구사님의 도움으로 이중환 선생의 조부이신 이영 묘를 답사할 수 있게 되어 묵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중환 선생의 조부이신 이영 묘(현재는 고운동 산61번지)는 세종 누리학교에서 서북쪽으로 가다가 도로에서 50m 올라 좌측 20m 지점이며, 행복도시 둘레길 7코스를 돌다보면 만날 수 있다. 평소 궁금했던 것이 풀려서 좋고, 세종시에 새로운 역사문화 콘텐츠를 찾아 낸 것 같아 무척이나 기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李重煥,1690~ ?)이 쓴 “택리지(擇里志)”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감록과 더불어 조선 시대 베스트셀러 중에 하나이다. 택리지가 출간된 후 각기 다른 제목의 필사본이 10여종이나 나왔다 하니 그 인기를 짐작 할 수 있다.

아마도 택리지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국여지승람을 대표로 하는 종전의 군현별로 쓰여 진 백과사전식 지지(地誌)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다룬 인문 지리적 접근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여행 길라잡이 형태로, 풍수가들에게는 필독서로, 상인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아이템 발굴 자료로 많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중환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지역에 이런 역사적 의미를 가진 분이 살았다는 것에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모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중환선생이 우리집이라고 한 사송정

그는 “복거총론”에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의 지표로 지리(地理),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들고 있다. 지리(地理)는 물과 산의 지형과 인간의 상호 작용 관계를, 생리(生理)는 경제활동의 조건을, 인심(生理)은 마을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그리고 산수(山水)에서는 휴식의 조건을 말한다. 이 지표들을 모두 갖추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삶의 터전으로 보는 것이다.

세종시는 10만 도시에서 80만 도시로 가려고 많은 개발과 건설이 한창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있어 분야별로 잘 진행 될 것이라고 생각은 든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부분은 이중환 선생이 복거총론에서 말한 네 가지 지표를 우리 세종시에 대입하여 반추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세종시가 친환경 생태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가 말한 지리적인 인식의 공유를 통한 대차 대조표를 작성 할 필요가 있다.

이중환 선생은 네 가지 지표 중에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지리地理)”로 보았다. 그가 말한 지리는 단순히 기후와 지형의 서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이다.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擇里志)”의 공주연기 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 골짜기엔 간수(澗水)가 많으며 논은 기름지고, 목화 수수 조를 가꾸기에 알맞아 사대부와 평민이 두루 살기 좋아 한번 이곳에 살면 흉년과 풍년을 알지 못한다. 살림이 넉넉해 떠나거나 이사해야 할 근심이 없으니 가히 낙토(樂土)라 할 만 한 곳, 지세가 산 위에서 끝을 맺지만 둔덕이 낮고 평평하여 험하거나 뾰족한 모양이 없으며 산허리 위로는 큰 바위가 한 조각도 없어 살기(殺氣)가 적다.”

위 글을 다시 한번 풀어보면 “세종시에는 골짜기 마다 물이 많아 주변 배후 습지 형태의 농토가 많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먹거리가 안정되고, 주변의 산들은 구릉지 형태로 평탄하여 악한 기운이 작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조선시대 행정상의 공주 연기만을 논한 것이기에 현재의 세종시에 적용하려면 전의현과 부강면 그리고 장기면을 추가하여야 좀 더 정확한 설명이 나올 수 있다. 전의는 금북정맥으로 인한 산림 지형을 이루면서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을 가르는 경계 역할을 한다. 부강면은 경부철도가 생기기 이전까지 5톤이나 되는 범선이 들어왔던 해상내륙물류의 최대 집결지였다.

전의와 부강을 첨언하여 다시 세종시 지리의 특징을 보면 물이 많다는 것, 농경지가 풍부하다는 것 그리고 내륙의 물류 기능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이는 세종시가 동쪽으로는 한라 금북정맥의 지류인 팔봉지맥과 북쪽으로는 금북정맥 지류인 전월 지맥 그리고 남쪽에서는 금남정맥이 계룡산을 거쳐 올라 오는데, 그 골짜기(금강과 미호천)마다 물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북쪽, 동쪽, 서쪽 물길이 합강을 중심으로 모여 서쪽인 금강을 통해 빠져 나가는 지형이다.

또한 이 물들이 합강에서 합수되어 삼태극 형상의 지리적 특성을 보여 준다. 이런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부강에는 부강나루와 동진나루가 생길 수 있었고, 내륙 물류의 교통 요지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 즉 합강이 세종 자연지리의 중심이 되고, 기준이 되며, 더불어 생태핵심지역이 되는 것이다. 세종시의 자연지리는 합강을 기본으로 볼 때 온전한 이해가 될 수 있다..

   이중환선생 조부 이영의 묘
필자는 세종시의 자연환경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하였다.
“북남고중저(北南高中低)의 내륙습지· 물류기지 지형“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북쪽과 남쪽에 있는 산림에서 나오는 많은 물들이 합강으로 모여 퇴적층의 많은 배후습지를 만들어 먹거리가 안정되고, 또한 강물이 풍부하여 해상 물류가 내륙에서도 가능하게 하였던 집결지 성격과 이로 인해 내륙 교통의 요지 기능을 가진 지형“이란 것이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공주대 환경과학과 졸업,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세종시 환경정책위원, 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세종시에 대한 이런 인문지리적인 입장을 고려하여 바라보면 보전과 개발의 기준도 좀 더 명확해 질 것이며, 경제활동의 모티브 선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지역만이 가진개성있는 문화예술의 발굴과 진흥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인문지리적인 관점에서의 세종시의 이해는 지역을 사랑하는 애향심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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