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리 대홍수, 잊지 말아야 한다
대평리 대홍수, 잊지 말아야 한다
  • 임비호
  • 승인 2016.04.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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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총선 공약, 당시 교훈 위에 제시되고 검토되어야 "

 

   배산임수의 세종시 개발전 양화리, 장남들판 모습(충청투데이 우희철 기자 제공)

하상계수(河狀係數)라는 말이 있다. 1년 가운데 하천의 어느 한 지점에서 측정하는 최대유량과 최소유량과의 비(比)를 나타내는 계수이다. 즉 최대 갈수기와 최대 범람기의 수량차이를 의미하는 계수이다. 이때 가장 적은 수량을 1로 잡고 가장 많은 수량을 알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금강의 하상계수가 1 : 298 이라면 금강은 가장 건조할 때의 수량이 1이고 가장 수량이 많을 때가 289 이다. 우리나라 및 외국 주요 하천의 하상계수를 보면 낙동강은 1 : 372, 금강은 1 : 298, 콩고강은 1 : 4, 템즈강은 1 : 8, 라인강은 1 : 14, 세느강은 1 : 23, 나일강은 1 : 30, 양쯔강은 1 : 22, 미시시피강은 1 : 119, 갠지스강은 1 : 35 등이다(출처: 자연지리학사전)

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하상계수가 다른 나라의 하상 계수보다 계수의 폭이 큼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후가 7~8월에 집중 호우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후의 가장 큰 특징은 사계절이 아주 뚜렷하다는 것과 집중 호우가 여름철에 집중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 기후의 특징은 하천의 전반적인 구조를 결정한다. 즉 평소 흐르는 하천의 유량보다 금강의 경우 300배 이상의 물동량을 담아 낼 수 있는 하천의 구조를 요구한다. 요사이는 다양한 댐도 건설되고, 200년 빈도 이상의 제방도 만들어 이렇게 까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런 형태는 하천 구조의 원형이 된다.

하천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자연지리의 횡단면도의 기본적인 구조를 보다면, 물이 흐르는 하천이 있고, 그 옆에 비가 많이 오면 하천이 되지만, 평소에는 습지내지 잡풀들이 우겨진 범람원이 있고, 제방 너머에는 논과 밭이 있고, 조금 높은 곳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고, 마을 뒤에 산림이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모습이다.

   평상 시 합강 습지<사진 아래>와 장마철 모습

 이런 하천 구조는 사람들에게 이수, 치수의 문제뿐만 아니라 농경문화 그리고 생활구역도 결정하게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물고기 등을 채집을 하고, 하천과 산림의 중간 지역인 범람원 지역에는 하천의 허락 하에 논농사·밭농사로 활용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주거지는 하천의 피해에서 안전할 수 있는 야산 3부 등선에 건설하게 하였다.

이곳에서 자연이나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 바로 범람지역인 완충 녹지 지역이다. 이 완충녹지 지역은 하천과 산림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지만 토질이 양호하고, 생태 다양성이 아주 풍부하여 많은 생물들에게는 보금자리이자, 삶의 터전이다. 사람들에게는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완충녹지 지역은 자연의 것이기도 하고, 사람의 것이기도 한 공유해야 하는 장소이다. 이 장소는 때론 습지, 때론 하변숲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때론 농경지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요사이 하천을 말할 때 수질 수량뿐만 아니라 수생태계라는 말이 등장하는 이유는 하천변의 완충녹지, 하천 습지의 생태적인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이곳을 쓸모없는 공간으로 생각하였다가 요사이 이곳의 생태적인 가치가 새로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천이 만든 세종시의 남부의 자연지리적인 모습을 보자면 장수의 작은 뜸봉샘에서 발원하여 무주, 옥천, 대전을 거치면서 점차 강의 위용을 드러내는 금강이 아름다운 호수같다는 미호천를 만나면서 넓은 충적층 모래톱을 이루는 합강을 만들었고, 또한 범람원 지역에는 너른 동진뜰, 대평뜰, 장남뜰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지금의 세종시 남부의 자연지리 지형은 금강에 내린 집중 호우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자연의 작품이다.

이런 세종의 자연지리적인 지형이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경제 수탈의 일환으로 축조된 제방들에 의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조치원은 일제시대 조천의 물길을 바꾸는 제방을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동진뜰과 대평뜰 그리고 장남뜰도 그렇다.

일제는 제방을 쌓으면서 자연스레 범람원 지역을 하천으로부터 구조적으로 격리하여 새로운 논이라는 토지를 획득하였다. 이로써 침략 통치를 위한 부의 재생산 구조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세종시 건설 초기 국제 공모 당선작인 “오래된 미래”가 장남들판의 뚝을 없애고 자연스런 계단식 논을 조성하자는 것은 아주 탁견이라고 볼 수 있다.

   옛 금남면 대평리 우시장(출처:연기군지)

우리가 자연이 만든 자연스런 범람원을 대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1946년도 대홍수로 인한 금남면 대평리 홍수 피해이다. 일제가 제방을 쌓고 금남면 대평리에 충정지역 최대의 우시장과 300호 가량의 주거지를 이주 시켜는데 이 때 내린 대규모 홍수로 인해 쓸려 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기본 질서의 몰이해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현재 행정명이 용포리를 대평리로 통상적으로 부르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 대평리라는 마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요사이 세종시 남부에는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종시 남부가 가지고 있었던 자연지리의 형성 과정이다. 이를 망각한 난개발은 또 다른 46년도 대평리 유령의 출몰을 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자연지형을 고려하고, 살리면서 개발하는 것이 온전한 발전의 원뜻일 것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유해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공주대 환경과학과 졸업,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세종시 환경정책위원, 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총선이 막 끝이 났다. 후보자로 나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새로운 도시인 이곳에 많은 개발 공약들을 제시했는데 과연 이곳의 자연지리적인 이해를 가지고 하는지 깊이 고민 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세종시 남부의 자연지리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남발하는 공약이라면 그것은 필히 46년도 대평리의 아픔을 재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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