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의 세가지 보물'은 무엇일까
'곡부의 세가지 보물'은 무엇일까
  • 김장수 유성태극무술관장
  • 승인 2016.03.05 15:4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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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무인들, 공맹고도(孔孟古都) 가다 <9> 태산(泰山)으로 가는 길

 태산 입구에서 가이드가 관광안내표지판을 보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곡부(曲阜)를 뒤로 하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행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 감회에 젖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듣는 것”하고 “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한서에 보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이래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새삼 알 수가 있었다.

곡부에서 태산(태안)까지는 약 4시간정도 걸린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김양태 수련생이 이번 곡부여행이 남다르다며 수집한 공자의 관한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그런 마음에서 오늘 저녁은 내가 준비하겠다”는 말을 해서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다. 공맹에 대한 이야기와 재치와 유머가 있는 정두한 수련생은 내기를 하자고 하였다. 내용은 곡부삼보가 있는데 이 세 가지를 맞추는 분에게 무엇을 해주자고 하면서 시작을 하였다. “그것이 무엇이냐?”에서 “술로 하자, 돈으로 하자”는 것에 “돈이 있어야 술을 사지”하면서 문제를 제시하였다.

10명의 수련생들이 각자의 틀에서 곡부를 보았다. 나는 그 시대의 배경 관점에서 보았다면 신원기 수련생은 비문에 새겨진 본질을 보았고, 우경명 수련생은 몸소 체험을 하면서, 김양태 수련생은 현실적 측면에서 그의 부인에 중국분이기 때문에 가장 자세히 접근하였으며, 오원근 수련생은 공맹고도(孔孟古道)의 기획 일정이 혹시 빈틈 있으면 하는 염려스런 마음으로 주변을 보았고, 정두한 수련생은 곡부와 공자의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일행의 관심사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곡부지방의 세 가지 보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내어 관심을 갖게 했다.
정두한 수련생은 영어와 일본어는 능통하였지만 중국어는 아마도 좀 그러했다. 곡부(曲阜)에서 미리 곡부삼보(曲阜三寶)의 사진을 찍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미당(美糖) 향춘(香椿) 자채(榨菜)인데 자채는 중국분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내기란 내용을 알고 해야 된다. 그래서 3~4시간의 소요에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는데 곡부의 삼보라는 콩트가 공자와 맹자관련 된 것으로 생각하여 돌아가면서 답을 하였는데 점점 멀어져 가자, 답의 힌트를 달라고 하였다. 힌트는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일행은 역으로 “출제한 사람은 답을 아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정두한 수련생은 “두 가지는 알겠는데 한 가지는 모르겠다”고 답변하여, 확실히 알지도 모르는 문제의 책임은 잘못 낸 사람에게 있다고 판정하여 술을 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순간 어느새 우리 일행을 탄 버스는 태안(泰安)의 어느 전통 식당에 도착하였다.
 한 가게에서 곡부의 세 가지 보물이 특산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김양태 수련생이 준비한 저녁식사는 중국 전통요리 같았다. 중국 특유의 향과 내기에서 진 정두한씨가 낸 향료 나는 백주의 술맛은 공맹고도(孔孟古道)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실제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음식의 향이 독해 처음 먹는 사람은 아마도 힘이 들어 외국인 자주 찾는 식당에서는 특유에 향을 조금밖에 넣지 않는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미리 예약된 태산입구 가까운 곳에 숙소를 마련하여 이동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대 태산(泰山)을 비유한 공자(孔子)는 등태산소천(登泰山小天下)하라 하였고, 맹자(孟子)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바탕을 태산기상문(泰山氣上門)에서 비롯됐고, 조선시대의 양사언(楊士彦)은 태산수고시역산(泰山雖高是亦山)라고 하였으며 중국의 황제들은 천하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 해서 제를 지냈다. 태극권(太極拳)에서도 태산을 비유한 것이 중여태산립붕(重如泰山立崩)이라 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5분 정도 걸어서 태산입구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먼저 나와 우리 일행을 맞이하면서 태산 등정 안내 표시판을 가리키는 순간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직접 태산 등정 안내 표시판을 보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는 것에 손색이 없었다. 비록 오늘날 과학이 발달한 측면에서 볼 때는 큰 산은 아니지만, 그 옛날 눈으로 봤을 때와 지금 시각으로 볼 때 단연 태산은 최고의 산이었다. 

 태산의 정상에 올라 중국무술의 한 초식을 시연하고 있는 필자

 김양태 수련생과 그의 중국인 부인은 이번 기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경명 수련생과 부인이 태산을 올라가면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으로 일행에게 좋은 강의를 해준 신원기 박사(사진 왼쪽)와 오원근 박사

 가는 곳마다 제치와 유머로 분위기를 살린 정두한 수련생이 자세를  잡고 있다.

 태산의 중국전통식당에서 중국의 향신료가 진한 음식을 들으면서 즐거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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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백 2016-05-11 13:57:37
태극권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조은 2016-03-21 16:41:50
관장님 재미있게 무술여행을 하시도 읽을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계속 펼처질 태산에서의 이냐기가 매우 궁금합니다. 다음 편을 기다리겠습니다.

쿵후사랑 2016-03-14 21:32:33
공자와 맹자를 보는 이에 따라 재 조명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사범 2016-03-14 15:35:09
사부님 언제나 감사와 감격이옵니다.
앞으로도 심오한 가르침 부탁드리옵니다.
짜이요 ~~

정사범 2016-03-14 15:33:40
나라를 다스릴 때는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씀씀이를 절약하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들을 동원할 경우에는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

...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들을 공경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하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글을 배우는 것이다.

...

어진 이를
어진 이로 대하기를

마치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고,
부모를 섬길 때는 자신의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길 때는 자신의 몸을 다 바칠 수 있고,
벗과 사귈 때는 언행에 믿음이 있다면,

비록 배운 게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 자하

선한 사람은
내가 만나보지 못하는구나.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자인 척하니,
어렵구나, 한결같음을 지닌다는 것이!

...


...


“산앵두나무 꽃이
팔랑이다가 뒤집히고 있네.

어찌 그대를 그리워 하지 않으리.
그대의 집이 멀 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워하지 않는 것일 테지,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인가?”

...

마을이 인仁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가려서 인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지 못하면,
어찌 지혜로움을 얻었다고 하겠는가?


...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자들에겐 인仁이 드물구나!”

“巧言令色, 鮮矣仁.”


...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미소에 팬 보조개,
아름다운 눈동자에 또렷한 눈,
흰 바탕에 여러 가지 색깔을 그렸구나'라는 말은 무슨 뚯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이후의 일이다."

자하가 여쭈었다.
"예는 [인의]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는 상 商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 繪事後素, 논어 중에서

...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왈,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유자(유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거스르기 좋아하는 경우가 드물고,

윗사람을 거스르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치고
사회를 어지럽히기 좋아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므로 효성스럽고 공손함이야말로
바로 인(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 하겠다.”

-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 중에서

子遊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기르는] 개나 말 따위도 모두 보살펴 주는 것은 같으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을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

-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중에서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가 말하였다.

"예전에 배운 것을 연구하여 새롭게 응용할 줄 안다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 중에서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가 말하였다.

"성실과 신의를 중심으로 삼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사귀지 말며
(세상에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는 겸손함을 가져라)
잘못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고쳐야 한다."

- 논어(論語) 자한(子罕)편 중에서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예순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졌고"에 각주가 붙어 있는데,
공자의 일대기와 맞물려 텍스트의 이해를 한층 높이고 있다.

55세에서 68세까지 공자는 중국 북쪽의 나라들을 돌아다녔고 곤경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는 길에서 만난 초나라 광인 접여, 장저, 걸익 등이 빈정대고 풍자하는 말을 모두 귀담아 들었다. 심지어는 정나라에 이르렀을 때 성의 문지기가 공자의 외관을 보고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하는 말마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릴 때는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씀씀이를 절약하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들을 동원할 경우에는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

...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들을 공경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하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글을 배우는 것이다.

...

어진 이를
어진 이로 대하기를

마치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고,
부모를 섬길 때는 자신의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길 때는 자신의 몸을 다 바칠 수 있고,
벗과 사귈 때는 언행에 믿음이 있다면,

비록 배운 게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 자하

선한 사람은
내가 만나보지 못하는구나.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자인 척하니,
어렵구나, 한결같음을 지닌다는 것이!

...


...


“산앵두나무 꽃이
팔랑이다가 뒤집히고 있네.

어찌 그대를 그리워 하지 않으리.
그대의 집이 멀 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워하지 않는 것일 테지,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인가?”

...

마을이 인仁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가려서 인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지 못하면,
어찌 지혜로움을 얻었다고 하겠는가?


...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자들에겐 인仁이 드물구나!”

“巧言令色, 鮮矣仁.”


...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미소에 팬 보조개,
아름다운 눈동자에 또렷한 눈,
흰 바탕에 여러 가지 색깔을 그렸구나'라는 말은 무슨 뚯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이후의 일이다."

자하가 여쭈었다.
"예는 [인의]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는 상 商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 繪事後素, 논어 중에서

...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왈,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유자(유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거스르기 좋아하는 경우가 드물고,

윗사람을 거스르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치고
사회를 어지럽히기 좋아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므로 효성스럽고 공손함이야말로
바로 인(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 하겠다.”

-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 중에서

子遊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기르는] 개나 말 따위도 모두 보살펴 주는 것은 같으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을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

-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중에서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가 말하였다.

"예전에 배운 것을 연구하여 새롭게 응용할 줄 안다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 중에서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가 말하였다.

"성실과 신의를 중심으로 삼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사귀지 말며
(세상에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는 겸손함을 가져라)
잘못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고쳐야 한다."

- 논어(論語) 자한(子罕)편 중에서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예순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졌고"에 각주가 붙어 있는데,
공자의 일대기와 맞물려 텍스트의 이해를 한층 높이고 있다.

55세에서 68세까지 공자는 중국 북쪽의 나라들을 돌아다녔고 곤경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는 길에서 만난 초나라 광인 접여, 장저, 걸익 등이 빈정대고 풍자하는 말을 모두 귀담아 들었다. 심지어는 정나라에 이르렀을 때 성의 문지기가 공자의 외관을 보고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하는 말마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