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환경, 그리고 생태계가 뭐길래
자연, 환경, 그리고 생태계가 뭐길래
  • 임비호
  • 승인 2016.02.21 2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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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되짚어보는 자연의 의미...왜 지키고 가꿔야 할까

 

   태화강 대나무숲을 복원하니 많은 까마귀들에게는 보금자리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해가 뜨면 해가 지는 것이 그렇고,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지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것들 중에 다시한번 물어 보면 헷갈리는 것들도 있다. 사랑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작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보면, 이것이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자의 경험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환경, 생태란 말도 이와 비슷하다. 이 말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그럼 이것들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보라면 선뜻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학문(學問)을 글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뜻보다 배울 학(學)이니 무엇을 배우는 것인데, 물을 문(問)이니 묻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무엇을 묻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학문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사(博士)란 전문 분야를 많이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 보다 혼자 묻고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하여 필자는 자연, 환경, 생태에 대한 의미와 뜻을 어원적으로 물어 보려 한다.

언어의 출현과 빈도는 사회적 관계의 반영이다
자연, 환경, 생태란 말들이 우리에서 좀 더 특별한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산업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던 70년대 이후부터 일 것이다.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보릿고개는 없어졌지만 반대급부로 우리 사회에 「공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자연보전」 「환경보호」라는 구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자연이 숭배의 대상에서 개발의 대상이 되면서 부터 우리는 물질적 풍요가 주는 또 다른 아픔들에 대한 자각의 외침으로 자연, 환경이란 말들을 강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토피」라는 말은 그리스어 Atopos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 뜻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묘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사이 이것이 아직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환경성 피부질환의 일반적 병명으로 쓰이고 있듯이 산업 문명이 가져온 후유증을 극복하고자 자연, 환경이란 말들을 자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서구에서는 서식처 파괴와 자원의 고갈 등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자 80년 후반 이를 극복하는 의미로 일상어가 아닌 학술 용어로 생태(Eco)가 먼저 사용되었다. 또한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자 세계 정상들은 1992년 리우에서 모여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즉 주로 자연, 환경, 생태, 지속가능이란 말들이 요사이 많이 사용되는 배경에는 산업화 시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응의 의미로 사용되어 점차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自然)의 어원적 의미를 묻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자연(自然)을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겨난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따위의 존재.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지리적ㆍ지질적 환경』 『(일부 명사 앞에 쓰여)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연(自然)이란 말이 동양에서는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문헌 중에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처음으로 많이 발견된다. 도덕경에서는 현대어처럼 명사로 사용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천지(하늘과 땅)의 서술어로 사용되었다(천지임자연"(天地任自然)).

   자연은 봄의 잎새처럼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 준다.
그런데 이 한자를 풀이 해 보면 자연할 때 스스로 자(自)는 얼굴에서 코를 나타내는 설형문자로 숨을 스스로 쉬는 것을 의미하고, 그럴 연(然)은 유기물(고기,육)을 나타내는 고기육(肉) + 크다 라는 의미의 클태(太) + 마음을 나타내는 마음심(心)의 조합으로 심장의 펌프질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큰 물질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원래부터 그대로 있었던 우주의 생명력과 순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연을 뜻하는 영어 nature는 「낳아진 것」이라는 라틴어 natura와 우주나 동물, 인간 등의 본질을 가리키는 희랍어 φύσις(physis)에서 나온 것으로 사물의 생성쇠락의 본성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동양에서나 서양에서 자연이란 말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거대한 생명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학 명제 중에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것이 있는데, 자연을 설명할 때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環境)의 어원적 의미를 묻다
환경(環境)이라는 말도 한자로 보자면 고리 환(環)과 경계나 장소, 상태를 나타내는 지경 경(境)의 합성어이다. 즉 사람이나 주체가 되는 것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돌고 있는 경계의 상태나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한자에서 돌다라는 의미의 환(環)자는 뜻을 나타내는 구슬옥변(玉(=玉, 玊)☞구슬)부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둥글게 되어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睘(경☞환)으로 조합되어 있다. 즉 둥글게 되어 있는 구슬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 구슬의 모습은 옥구슬처럼 남의 모습도 내 옥구슬에 비치고, 내 모습도 남의 옥구슬에 비치는 그런 모습인 것이다. 즉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속에 내가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바로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의 모습이다. 인드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지게 된다. 우주 내 모든 사물과 현상이 서로 독립해 있거나 무관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강력한 비유인 것이다.

환경을 영어로 하면 environment인데 이 말은 행하게 하는 의미의 접두사 en + 돈다라는 의미의 vert,vers의 변형인 어근(viron) + 명사형 접미사 ment의 합성어이다. 그 의미는 「무엇가를 돌게 만드는 것」을 뜻하고 있다. 동서양이 모두 환경이란 무언가를 순환하게 하는 의미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유기적인 관계성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피라밋 구조가 아니라 거대한 생명 그물코가 서로 의지하며 변화하고, 순환하며, 하나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하나를 보는 인드라 구슬 같다는 것이다.

생태(生態)의 어원적 의미를 묻다
생태(生態)라는 말은 동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말이고, 환경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이후 서양에서 1866년 헤켈(Haeckel)의 일반형태학(general Morphology)에서 사용하였던 Ecology와 1935년 영국의 식물학자 텐슬러(Tansley)가 사용한 "생태계(ecosystem)" 란 용어를 번역하면서 일반화 된 말이다. 원래 생태를 나타내는 Eco는 희랍어 οἶκος(oikos)에서 파생된 것인데 가정, 농장, 사는 곳을 의미하는 말이다.

   세종보에서 바라본 학나래교.
경제로 번역한 economic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분리하고, 경험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것을 선호하던 서구의 학문방법으로는 통합과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토대나 방법론이 취약하였기에 지구라는 전체를 설명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였기에 이러한 개념이 새로이 생겨난 것이다. 텐슬러(Tansley)는 "생태계(ecosystem)"를 “어느 지역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과 그 지역 내의 비생물적 환경을 하나의 단위로 통합하여, 주로 물질순환이나 에너지 흐름에 주목하여 하나의 기능계(functional system)로 다루는 대상”으로 정의 하고 있다.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연, 환경, 생태라는 말을 어원적으로 물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나 지구는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안되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인드라망 구슬처럼 생명 그물로 된 유기적인 관계의 집이

   
 

임비호, 조치원 출생, 공주대 환경과학과 졸업,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세종시 환경정책위원, 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라는 것이다. 하여 자연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고, 환경이 훼손되면 사람도 병들고, 생태계가 무너지면 사람도 사라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또한 너무 거대하고, 신비하여 인간이 다 알 수 없기에 사람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 최적의 길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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