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는 데...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는 데...
  • 임비호
  • 승인 2016.02.12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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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고산 김정호가 그린 세종의 지도, '금북정맥은?'

세종시 산수 모식도(그래픽 김지훈)
10년 전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필자가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얘기 끝에 친구가 불쑥 우리 한번 내기를 해 보자 라는 것이었다.

그 내기라는 것이 “우리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강을 한 번도 건너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나는 물을 한 번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다에 한 표”라고 하였다.

순간 필자의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우리나라가 삼천리라고 하는데 그 길이가 얼마나 되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거리가 얼만데 어떻게 한 번도 강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을까?’, ‘이 친구가 이런 내기를 하자고 하는 데는 무슨 함정이 있을 꺼야!‘ 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한 번도 이런 것을 생각 해 보지 않았기에 무엇이라 즉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자니 친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계속 "너는 어디에 걸거냐”고 물어 보았던 것이 생각난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업무 관련 직무 교육 도중 한 강사가, 얼마 전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고산 김정호에 관한 내용 중에 “김정호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백두산에 일곱 번을 올라갔다는 부분은 거짓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필자는‘아니 지도를 그리려면 당연히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 지형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처럼 인공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는 생각으로 황당해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년 전에 친구가 내기를 하자고 한 것이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백두대간”을 말하는 것이고, 고산 김정호가 백두산에 일곱 번을 올랐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일제가 우리 선조들의 지도 그리는 방법을 폄하하기 위해 꾸며낸 악의적인 왜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 낯설고 황당한 이야기들이었다.

실제로 산에 올라가 보면 산봉우리만 보이고, 산줄기의 지형을 그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지도를 그릴 때 산줄기를 그리고 강을 그린 것이 아니라 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에서부터 거꾸로 강을 먼저 그리고, 강이 없는 곳에 산줄기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그렸다고 한다. 나무를 예로 들자면 먼저 나무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는 나무 몸통을 그리고, 줄기와 가지를 그리면 일정 형태가 나오는데, 남은 빈 공간이 산줄기가 되는 것이다.

 전의현 고지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땅을 볼 때 서구인들처럼 분리되고, 각각의 성질을 분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양상을 갖고 있지만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은 산과 강을 별개의 다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로 보았다. 우리 선조들은 산과 강을 보는 기본원리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고 한다.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라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의미로 개념화 되었다. 즉 동해와 서해를 가르는 것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지리산까지의 산줄기인 백두대간이라고 하였고, 강과 강을 가르는 것을 정맥이라고 하였다.

한남금북정맥의 경우 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산줄기인데 한강의 남쪽에 있고, 금강의 북쪽에 있는 산줄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지천과 지천을 가르는 것을 지맥이라 하여 세종시의 경우 전월지맥이라고 하면 조천과 대교천을 가르는 산줄기가 되는 것이다.

산은 기본적으로 가르는 기능이 있기에 조선팔도의 생활풍습과 문화가 지역마다 다른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동네사람들이라고 할 때 한문 동(洞)자는 물수(水)와 같을 동(同)의 합성어로 물을 같이 먹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강은 생활습관과 문화를 하나로 묶는 기능이 있어 유역이란 개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땅을 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기본원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산과 강은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달리 할 뿐이지 원래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친환경도시 또는 생태네트워크 구성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원리는 자연을 하나로 보고, 산줄기 물줄기를 연속선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 원리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종시를 바라 본다면 금강 북쪽에는 금북정맥(전월지맥 포함)이 있고, 남쪽에는 금남정맥(관암지맥)이 있으며, 미호천을 중심으로 보면 동쪽에 팔봉지맥이 있고, 서쪽에 전월지맥이 있는 것이다.

이를 산줄기로 표현한다면 백두대간인 속리산에서 분화하여 진천, 천안으로 돌아 소정면 고려산으로 진입하는 금북정맥의 본류가 전의면 금사리까지 이루다가 갈라져 금강 앞 전월산까지 이어지는 전월지맥의 산줄기가 하나 있고, 한남금북정맥으로 함께 오다가 갈라지는 팔봉지맥이 동면 명학리 황우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또 하나 있으며, 그리고 계룡산에서 발원하는 금남정맥 중의 한 지맥인 관암지맥이 반포 IC 부근의 삽재를 돌아 대전 둘레길과 겹치는 우봉산을 지나 금남의 금병산으로 오고, 이것이 꾀꼬리봉과 부용봉까지 가는 산줄기가 있어 크게 보면 3개의 산줄기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기본원리를 가지고 세종시의 자연환경을 바라봐야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세종시는 구 연기군 면적에 구 청원군의 부강면과 공주시의 장기면이 편입되어 생성된 도시이기에 새로운 행정 관리를 위하여 기초적인 자연환경의 자료를 생성하여야 하는데, 그 기초원리가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었던 자연관을 대입하여야 지속가능한 세종시의 미래를 확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기에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것처럼 통합적인 자연지형을 선행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 중 세종지역 발췌
둘째로 세종시는 새로운 광역특별자치시로 초기 법정 계획을 많이 수립하게 되는데 과제 중심으로 과업을 수행하기에 법정 요건 형식과 분야별 이론 형식에 치중할 수 밖에 없어 세종의 자연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나 개념 반영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들만으로는 전문 지식이나 법정 과업 지시에는 충실할 수 있지만 지역의 섬세한 현실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지역의 현실성이 결합되기 위해서는 우리 선조들의 기본원리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와 섬세한 배려가 필요 할 것이다. 한 예로 “2030 세종시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할 당시 과연 세종시의 섬세한 자연 지형에 대한 반영이 충분하였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로 세종시를 지속가능한 생태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림녹지축, 수변축, 바람길을 유기적인 관계성 속에서 점검하는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의 기본원리가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세종시는 산줄기가 절단 된 곳(소정면 고등리614-1 등)이 많고, 수변도로에 의해 산과 강이 절단 된 곳(전월산과 금강 수변

   
 

임비호, 조치원 출생, 공주대 환경과학과 졸업,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세종시 환경정책위원, 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도로 등)도 많아 이를 복원해야 하는 과제들도 있고, 새로운 도시 개발을 하면서 세종시의 자연이 파괴 될 수 도 있기에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원리들을 중심으로 세종의 자연환경을 점검할 때 더 풍요로운 친환경 생태도시가 될 것이다.

흔히 자연은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을 우리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대로 잘 보전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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