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맹자(孟子)의 어머니 성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中國)에서는 중화지모(中華之母)라 칭(稱)하기도 하는데, 일각에서는 구씨, 이씨, 양씨 등 다수의 성씨를 갖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세간에 있는 맹모의 자료를 모아 확인한 결과 태속장촌(太谷仉村)이라는 사람이라 하여 장(仉)씨라는 게 지배적이다. 또한 자식 교육으로 유명한 맹모지교(孟母之敎)는 맹모삼천(孟母三遷)과 맹모단기((孟母斷機)의 일화가 현대 교육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맹자(孟子)가 처음 살았던 집이 공동묘지 근처였다. 벗이 없던 맹자는 곡(哭)과 제사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맹모(孟母)는 이러한 관경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 시장 근처였다. 이번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시장놀이를 흉내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만한 곳이 아니구나 하면서 다시 이사를 서당 주변으로 하였다. 그랬더니 어린 맹자는 제사 놀이와 절하는 법이며 나가고 물러나는 등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곳에서 살았다. 후대에 자식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알게 된 맹모(孟母)를 중화지모(中華之母)라는 호칭과 함께 고금의 현모양처(賢母良妻)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열녀전(列女傳)을 보면 맹모단기(孟母斷機)란 맹자(孟子)가 수학(修學) 도중에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맹자의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에 실을 칼로 끊으며, 학문(學問)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도 이와 같다고 훈계(訓戒)했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내가 아는 맹자의 사상을 알려면 먼저 성선설(性善設)과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양생관(養生觀) 등이 있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設)에는 네 가지 마음이 있는데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바탕이 된다.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設)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이라면 인정이 있기 때문에 차마 나쁜 짓을 하지 못하는 측은지심을 비롯해 부끄러워 하는 양심과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런 것을 가릴 줄 아는 예의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편에서 그의 제자 공손추가 질문한 내용에서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같다”라고 표현했는데 호연지기는 탕탕하여 걸림 없는 대우주와 같은 넒은 마음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新羅)의 화랑정신(花郞精神)이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상이다.
양생관(養生觀)은 오늘날 양생(養生)이라 함은 건강운동(健康運動)또는 태극권(太極拳)에서 양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의 양생(養生)은 도인양생공(導引養生功)을 말한다. 도인양생공은 과거에는 도인(道人)들이 수양(修養)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에 도인양생공은 과거 수련법을 현대인에게 알맞게 북경체육대학 장광덕(張廣德)교수가 재구성된 도인양생공이다.
“맹자(孟子) 왈(曰) 양생자불족이당대사 유송사가이당대사(養生者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란 구절이 있다. 여기서 양생(養生)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때의 양생은 건강적인 양생이기 보다는 부(富: 부자)의 대사(大事: 큰일)적 관계에서의 양생이다.
진한(秦漢)대에서 양생(養生)은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백성이 배불리 먹고 자는 일종의 정치적 양생관)을 말한다. 맹자의 양생관은 사회적 또는 도덕적 양생관이라면 오늘날 양생관은 건강적 또는 보건적 양생관이다. 하지만 현재의 맹묘 주변에는 요즘에 건강을 바탕으로의 양생문구가 많이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한다.
맹자(孟子)는 스스로를 아성(亞聖)이라고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중니천지야, 맹자태산지기상야”(仲尼天地也, 孟子泰山之气象也)"라고 했다. 즉 공자가 천지라면, 맹자는 태산의 기상이라고 자신을 공자님보다 낮추었다. 맹자는 스스로를 낮추어 나는 성인이 아니고 아성(亞聖)이다라고 하였다. 맹자(孟子)야말로 오늘날 자기가 최고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성인(聖人)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맹묘 후문(養氣門: 양기문)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