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교육으로 착한 성품 지닐 수 있다”
“사람은 교육으로 착한 성품 지닐 수 있다”
  • 김장수 유성태극무술관장
  • 승인 2016.01.18 21:42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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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무인들, 공맹고도(孔孟古都) 가다 <7> 맹자의 사상

 맹묘의 영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소박한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아성묘가 나온다.
맹묘(孟廟)는 맹자의 사당이다. 영성문(櫺星門)안으로 들어서면 아성묘(亞聖廟)가 나온다. 이 아성문(亞聖門)의 돌기둥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모양에 돌기둥 문이다. 이 문은 명(明)나라 때 지어진 것이며 계속해서 들어서면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이 나온다. 태산기상문은 송(宋)나라 때 지어진 것이며, 승성문(承聖門)과 맹묘(孟廟)의 중심부인 아성전(亞聖殿)이 나오는데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 아성전(亞聖殿)은 보수가 한창이었다.
 맹자의 어머니 위패를 모신 계성침전은 관광객들에게 어머니 교육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영성문(櫺星門)에 영(靈)자는 신령영자인데 영자 아래 글에 무(巫)자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맹자(孟子)가 귀신(鬼神)을 섬기지 않았다는 의미로 본래의 영(靈)자를 위의 영(櫺)자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직접 보면 맹자 역시 죽어서 신당(神堂)으로 모셔져 있다. 하지만 누구는 귀신이고 그는 성인(聖人)의 신이라는 것에 애매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승성문 우측방향 안으로 들어서면 맹모전(孟母殿: 孟子의 어머니를 모신 사당)이 나온다. 맹모전(孟母殿)은 계성침전(啓聖寢殿)이라고 하는데 맹자(孟子)의 어머니는 장(仉)씨라 한다. 그 앞에는 맹모의 위패를 모셔두고 향을 피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공자님보다 격을 낮추어 아성이라고 불리는 맹자상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맹자(孟子)의 어머니 성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中國)에서는 중화지모(中華之母)라 칭(稱)하기도 하는데, 일각에서는 구씨, 이씨, 양씨 등 다수의 성씨를 갖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세간에 있는 맹모의 자료를 모아 확인한 결과 태속장촌(太谷仉村)이라는 사람이라 하여 장(仉)씨라는 게 지배적이다. 또한 자식 교육으로 유명한 맹모지교(孟母之敎)는 맹모삼천(孟母三遷)과 맹모단기((孟母斷機)의 일화가 현대 교육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맹자(孟子)가 처음 살았던 집이 공동묘지 근처였다. 벗이 없던 맹자는 곡(哭)과 제사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맹모(孟母)는 이러한 관경을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 시장 근처였다. 이번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시장놀이를 흉내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만한 곳이 아니구나 하면서 다시 이사를 서당 주변으로 하였다. 그랬더니 어린 맹자는 제사 놀이와 절하는 법이며 나가고 물러나는 등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곳에서 살았다. 후대에 자식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알게 된 맹모(孟母)를 중화지모(中華之母)라는 호칭과 함께 고금의 현모양처(賢母良妻)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열녀전(列女傳)을 보면 맹모단기(孟母斷機)란 맹자(孟子)가 수학(修學) 도중에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맹자의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에 실을 칼로 끊으며, 학문(學問)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도 이와 같다고 훈계(訓戒)했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내가 아는 맹자의 사상을 알려면 먼저 성선설(性善設)과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양생관(養生觀) 등이 있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設)에는 네 가지 마음이 있는데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바탕이 된다.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設)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이라면 인정이 있기 때문에 차마 나쁜 짓을 하지 못하는 측은지심을 비롯해 부끄러워 하는 양심과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런 것을 가릴 줄 아는 예의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편에서 그의 제자 공손추가 질문한 내용에서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같다”라고 표현했는데 호연지기는 탕탕하여 걸림 없는 대우주와 같은 넒은 마음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新羅)의 화랑정신(花郞精神)이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상이다.

양생관(養生觀)은 오늘날 양생(養生)이라 함은 건강

맹모삼천을 기리는 사당 표지석
운동(健康運動)또는 태극권(太極拳)에서 양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의 양생(養生)은 도인양생공(導引養生功)을 말한다. 도인양생공은 과거에는 도인(道人)들이 수양(修養)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에 도인양생공은 과거 수련법을 현대인에게 알맞게 북경체육대학 장광덕(張廣德)교수가 재구성된 도인양생공이다.

“맹자(孟子) 왈(曰) 양생자불족이당대사 유송사가이당대사(養生者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란 구절이 있다. 여기서 양생(養生)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때의 양생은 건강적인 양생이기 보다는 부(富: 부자)의 대사(大事: 큰일)적 관계에서의 양생이다.

진한(秦漢)대에서 양생(養生)은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백성이 배불리 먹고 자는 일종의 정치적 양생관)을 말한다. 맹자의 양생관은 사회적 또는 도덕적 양생관이라면 오늘날 양생관은 건강적 또는 보건적 양생관이다. 하지만 현재의 맹묘 주변에는 요즘에 건강을 바탕으로의 양생문구가 많이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한다.

맹자(孟子)는 스스로를 아성(亞聖)이라고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중니천지야, 맹자태산지기상야”(仲尼天地也, 孟子泰山之气象也)"라고 했다. 즉 공자가 천지라면, 맹자는 태산의 기상이라고 자신을 공자님보다 낮추었다. 맹자는 스스로를 낮추어 나는 성인이 아니고 아성(亞聖)이다라고 하였다. 맹자(孟子)야말로 오늘날 자기가 최고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성인(聖人)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맹묘 후문(養氣門: 양기문)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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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후사랑 2016-01-22 08:16:23
맹자의 글을보고 엄마의 교육이 이렇게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하네요

정사범 2016-01-21 17:19:30
성선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옭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四端)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

곧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사덕으로 발달한다.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曾子曰, ‘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서 옳지 않다면 누더기를 걸친 비천한 사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고, 스스로 돌이켜보아서 옳다면 천군만마가 쳐들어와도 나아가 용감히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縮千萬人, 吾往矣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上之豊, 必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그가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하는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답례가 없을 경우는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愛人不親反其仁, 治人不治反其智, 禮人不答反其敬,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基身正而天下歸之


진실함 자체는 하늘의 도이고, 진실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지극히 진실한데도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고, 진실하지 않은데도 남을 감동시키는 경우는 없다.
誠者, 天地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至誠而不動者, 未之有也. 不誠, 未有能動者也.



무엇인들 섬겨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마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섬기는 일의 근본이다. 무엇인들 지켜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마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지키는 일의 근본이다.
孰不爲事? 事親, 事之本也. 孰不爲守? 守身, 守之本也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仁, 人心也. 義. 人路也. 含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己矣.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이로써 근심과 걱정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고, 안일한 쾌락은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남이 나를 알아주어도 초연히 자족하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또한 초연히 자족하라.
人知之, 亦囂囂, 人不知 亦囂囂.


간어제초 間於齊楚?
강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於) 끼임(間) 즉,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어서 괴로움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만두어서는 안되는 경우인데도 그만두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만둘 것이고, 후하게 대우해야 할 사람에게 각박하게 대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각박하게 대할 것이다. 나아가는 데 성급한 사람은 물러나는 데도 성급하다.”
“於不可己而己者. 無所不己. 於所厚者薄, 無所不薄也. 其進說者, 其退速.”

정사범 2016-01-21 17:16:31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그가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하는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답례가 없을 경우는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시경》에서는 '영원토록 하늘의 명을 따르니,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구나'고 했다.

<이루 상> 중에서

진실함 자체는 하늘의 도이고, 진실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지극히 진실한데도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고, 진실하지 않은데도 남을 감동시키는 경우는 없다.

<이루 상> 중에서

사람이란 하지 않은 것이 있은 후에야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게 된다.

<이루 하> 중에서

물 자체에 정말 동과 서의 구분이 없기는 하지만,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 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고자 상> 중에서

사람들에게는 미각, 청각, 시각과 같은 다양한 감각들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아의 요리를 맛있다고 여기고 사광의 음악을 아름답다고 여기며 자도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의 감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측면이 있다. 이처럼 감각에 공통성이 있듯 마음에도 공통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고자 상> 본문 중에서

만일 사람들이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란을 피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인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데도 그 살 수 있는 방법을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 나에게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 환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진 사람은 다만 그것을 잃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고자 상> 중에서

맹자가 말했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고자 상> 중에서

"선왕들에게는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였다.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를 실천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쉬울 것이다."

"풍년에 양식이 넘쳐나서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는데도 거두어 저장해둘 줄 모르고, 흉년에 양식이 부족해서 길에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의 곡식을 풀어 나누어줄 줄 모르다가, 사람이 굶주려 죽게 되면 '나 때문이 아니다.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죽였다'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왕이 흉년을 핑계 삼지 않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왕에게로 모여들 것입니다."

맹자의 따뜻한 마음
맹자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차갑게 사물과 타인을 바라보면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맹자는 생각했고 글로 남겼다. 사회지도층이 걱정하지 않던 백성들의 삶을 걱정해주었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백성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안위와 괜찮은 벼슬자리를 생각했더라면 맹자는 배고픈 백성들의 삶을 모른척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맹자는 따뜻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죽어가는 백성들의 삶을 정치가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고 경제적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맹자의 차가운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백성들의 삶을 정치가들에게 전달하다보니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됐기에 맹자는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맹자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을 없앨 수도 있을 만큼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틀린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옳은 생각을 숨기고 권력에 부당한 순응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맹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왕들에게 말했다. 왕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간다고, 왕들의 사랑없음이 백성들의 삶을 곤궁에 빠뜨린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잘못을 교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말했다. 어떤 왕은 맹자의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이성이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의 행실과 국정운영방안을 고치지만 거의 대부분의 왕은 맹자의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이성의 말을 무시하였다. 백성들과 자신이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맹자가 필요하다. 모든 면에서 백성과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맹자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을 맹자를 통해 알아가야 한다.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는 맹자의 주장을 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백성들이 삶 속에서 기쁨을 찾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치인들은 백성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정사범 2016-01-21 17:15:57
<군자가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

공손추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치려고 하는데,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쳤는데 자식이 그 가르침을 행하지 않으면 이어서 성을 내게 되고 이어서 성을 내게 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헤치게 된다. 그러면 자식은 '가르치는 분은 나를 올바른 도리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정작 가르치는 분의 행동은 올바른 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함>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자신을 기름>

만일 두 손이나 한 손안에 움켜쥘 수 있는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기르려고 할 경우 누구나 그것을 기르는 방법을 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있어서는 자신을 기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오동나무나 가래나무만도 못한가?

정성을 다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라고 한다. 모든 원인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깨달은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세상도 없다. 내 자신을 바람에 흔들림없이 바르게 세워야 한다.

<사람 잡는 정치>

양혜왕
"과인은 기꺼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맹자
"사람을 죽이는 데 뭉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맹자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맹자
"지금 왕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백성의 부모인 왕으로서 정치를 하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한다면 백성의 부모다움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공자께서는 '처음으로 장례식에는 순장에 쓰는 인형을 만든 자는 후손이 끊길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본따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백성들을 굶어 죽게 할 수 있습니까?"

<인재를 얻는 방법>

어떤 사람에 대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현능하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 되고, 여러 대부들이 다현능하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현능하다고 말한 후에 그를 잘 살펴보고 현능한 점을 발견하고 나서 그를 기용하십시오. 어떤 사람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되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한 후에 그를 살펴보고 좋지 못한 점을 발견하고 나서 내치십시오.

어떤 사람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해도 듣지 마시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해도 듣지 마십시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한 후에 그를 살펴보고 죽여야 할 점을 발견하고 나서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 사람들이 그 사람을 죽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한 후에라야 백성들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왕자와 패자의 차이>

맹자가 말했다.

무력을 사용하면서 인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은 패자인데 패자에게는 반드시 큰 나라가 있어야 한다. 덕으로써 인을 실행하는 자는 왕자이다. 왕자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은 사방 칠십리의 땅으로 인을 실행했고, 문왕은 사방 백리의 땅으로 인을 실천했다. 무력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억지로 복종한다. 덕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진정으로 복종하니, 칠십 명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복종한 것이 그 예이다. 시경에서 문왕이 천하를 다스린 것에 대해 '서쪽에서 그리고 동쪽에서, 남쪽에서 그리고 북쪽에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한 것은 그것을 말한 것이다.

<인을 행하라>

맹자가 말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어찌 갑옷을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않겠는가?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해치지 못할까 걱정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해칠까 걱정한다. 무당과 관을 짜는 목수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께서 '인에 머무는 것이 좋다. 스스로 선택함이 인에 머물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롭다 하겠는가?'라고 했다. 인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린 높은 벼술이고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데 어질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어질지 않고 지혜롭지 않고 예가 없고 의가 없으면 남에게 부림을 당한다. 남에게 부림을 당하면서도 부림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활을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것과 같다.

만일 수치스러워한다면 인을 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인을 행하는 사람은 활쏘기 하는 사람과 같다. 활을 쏘는 사람은 먼저 몸을 바르게 한 후에 화살을 발사한다. 설령 발사해서 명중시키지 못해도,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돌이켜 반성할 뿐이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

제자
"지난 날에 제나라에 계실 때에 왕이 품질 좋은 황금 백일을 선물로 보냈는데 받지 않으셨지만, 송나라에 계실 때에는 칠십 일을 선물로 보내자 받으셨고 설나라에 계실 때는 오십 일을 보내오자 받으셨습니다. 지난 날에 받지 않으신 것이 옳다면 오늘날 받으신 것은 잘못이고 오늘날 받으신 것이 옳다면 지난 날 받지 않으신 것은 잘못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틀림없이 이 두 가지 잘못 가운데 하나에는 해당되십니다."

맹자
"전부 옳다. 송나라에 있을 때에는 내가 장차 먼 길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노자를 주는 법이다. 송나라 임금이 '노자로 주는 것입니다'고 하는데 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설나라에 있을 때에는 내가 신변의 위험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설나라 임금이 '신변의 위험을 경계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경호할 사람을 구하는데 쓰도록 보냅니다'고 하는데 내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제나라에 있었던 때에는 이러한 사유가 없었다.

<벼슬하면서도 녹을 받지 않은 이유>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서 추나라로 가면서 휴 땅에 머물렀다.

공손후가 물었다.
"벼슬하면서도 녹을 받지 않는 것이 옛날의 법도였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숭땅에서 내가 제나라 왕을 뵈었는데, 물러나면서 제나라를 떠날 생각을 했고 내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았으므로 녹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제나라에는 전쟁 상황이 연이어 계속 되었으므로 떠나겠다는 말을 못했을 뿐이다. 제나라에 오래 머물렀던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었다.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함>

맹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그가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하는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답례가 없을 경우는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시경에서는 영원토록 하늘의 명을 따르니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구나고 했다.

<천하의 근본은 한 사람의 몸에 있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모두 천하국가라고들 한다. 그런데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한 사람의 몸에 있다.





제자인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현실적인 상황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치려고 하는데, 올바른 도리로써 가르쳤는데 자식이 그 가르침을 행하지 않으면 이어서 성을 내게 되고 이어서 성을 내게 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해치게 된다. 그러면 자식은 가르치는 분은 나를 올바른 도리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정작 가르치는 분의 행동은 올바른 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서로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다. 부자간에는 선을 행하라고 질책해서는 안된다. 부자간에 선을 행하라고 질책하게 되면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데, 부자간의 사이로 멀어지는 것보다 더 나쁠 일은 없다.


<남들의 칭찬과 비난>

맹자가 말했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칭찬받게 되는 경우가 있고 온전하기를 추구했는데도 비난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함부로 하는 말>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의 문제는 남의 스승 노릇을 하기 좋아하는 데 있다.


<해서는 안될 것과 해야 할 것>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후에야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게 된다."
"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어떤 짓이든 거리낌 없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여 정당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 기준에 따른 취사선택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도덕적으로 마땅히 해야할 것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남에 대한 비방의 경계>

맹자가 말했다.
"남의 나쁜 점을 말한다면 닥쳐올 후환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스스로 체득하는 것의 중요성>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올바른 도로써 사물을 깊이 탐구해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체득하기 위해서이다. 스스로 체득하게 되면 사물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된다. 사물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되면 그것에서 취해서 축적하는 것이 깊어진다. 취해서 축적하는 것이 깊어지면 자신의 가까운 곳에서 이치를 탐구하여도 그 근본적인 이치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체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

맹자가 말했다.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까닭은 장차 핵심적인 요점을 말하는 것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본성과 물의 비유>

고자가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빙빙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주면 서쪽으로 흐른다. 사람의 본성 자체에 선함과 불선함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 자체에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맹자가 말했다.
"물 자체에 정말 동과 서의 구분이 없기는 하지만, 위와 아래의 구분도 없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 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만약 물을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 높이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 물결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면 산 위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겠는가? 밖으로부터 가해지는 힘이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이 불선한 것을 행하게 되는 것 역시 이처럼 본성이 밖의 힘에 의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문이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맹자가 말했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배움의 방법>

맹자가 말했다.
"예가 사람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적에는 반드시 활 줄을 한껏 당기는 것에 뜻을 두도록 하기에, 배우는 자 역시 활을 한껏 당기기 위해 노력한다. 큰 목수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콤파스와 곡척을 사용하도록 하기에 배우는 자 역시 반드시 콤파스와 곡척을 사용하게 된다.


<가르침의 방법>

맹자가 말했다.
"가르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가 탐탁치 않아서 가르치기를 거절하는 것 또한 가르침의 하나이다.

<자족의 삶을 즐기는 방법>

맹자가 송구천에게 말했다.
"그대는 인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느냐? 내 자네에게 인생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 말해 주겠다. 남이 나를 알아주어도 초연히 자족하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또한 초연히 자족하라"고 했다.

구천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초연히 자족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덕을 존중하고 의리를 즐겁게 여기면 초연히 자족할 수 있다. 그래서 선비는 곤궁한 상황에 처해도 의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출세하더라도 도에서 떠나지 않는다. 곤궁한 상황에 처해도 의리를 잃어버리지 않기에 선비들은 자족함을 얻을 수 있고 출세해도 도에서 떠나지 않기에 백성들에게서 실망을 사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게 되면 그 은택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졌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몸을 닦아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었다. 곤궁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출세하게 되면 함께 천하 사람들을 선하게 했던 것이다.

<타고난 능력과 타고난 지능>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타고난 지능이다. 두세살 난 어린아이라도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성장해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버이를 친해하는 것이 인이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과 의를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역경은 사람을 좌절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완성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안일하면 분발해서 자신의 성취를 이루려는 마음도 생겨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외로운 신하와 서자들은 군주와 어버이의 사랑을 얻지 못해서 항상 근심 속에 있는데, 그러한 근심은 결국은 그를 분발하게 하여 결국에는 목적한 것을 이루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마음을 비우고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함을 말한다. 선생은 나이나 많거나 신분이 높기 때문에 선생이 된 것이 아니라 먼저 깨달았기 때문에 선생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자는 자신이 지닌 어떠한 배경도 내세워서는 안되고 오직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마음을 기르는 방법>

맹자가 말했다.
"마음을 기르는 방법으로는 욕망을 적게 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사람됨이 욕망이 적으면서도 본래의 선한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고, 사람됨이 욕심이 많으면서도 본래의 선한 마음을 보존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양혜왕 하> 중에서

정사범 2016-01-21 16:58:25
제나라 선왕
"문왕의 동산은 사방이 각각 칠십 리였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맹자
"전해 오는 기록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선왕
"그렇게나 컸습니까?"

맹자
"백성들은 오히려 작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이 각각 사십 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
"문왕의 동산은 사방이 각각 칠십 리였지만, 풀 베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고 꿩과 토끼를 잡는 사람들도 들어갔으니, 그것을 백성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작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처음 제나라의 국경에 이르렀을 때에 제나라의 중요한 금령을 물어 본 후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들으니 제나라에는 교외와 국경의 관문 사이에 사방 각 사십 리의 동산이 있는데, 이곳의 사슴을 잡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을 죽인 죄와 동일하게 다스린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사방 각 사십 리의 동산으로써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나라의 왕이 현능한 이를 기용할 때에는 매우 신중히 해야 합니다. 그가 재능이 있다면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도 신분이 높은 사람을 뛰어 넘게 하며, 사이가 먼 사람이라도 가까운 사람을 뛰어넘게 해야 하는데, 어찌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
어떤 사람에 대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현능하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되고, 여러 대부들이 다 현능하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현능하다고 말한 후에 그를 잘 살펴보고 현능한 점을 발견하고 나서 그를 기용하십시오.
어떤 사람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되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해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지 않다고 말한 후에 그를 살펴보고 좋지 못한 점을 발견하고 나서 내치십시오.
어떤 사람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해도 듣지 마시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해도 듣지 마십시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한 후에 그를 살펴보고 죽여야 할 점을 발견하고 나서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 사람들이 그 사람을 죽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한 후에라야 백성들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송나라 대부 대영지
"수확량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는 세법을 실시하고 국경의 관문과 시장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을 폐지하는 것은 금년에는 불가능합니다. 일단 세액을 경감하고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폐지했으면 하는데 어떨지요?"

맹자
"날마다 이웃집의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자에게 '이런 짓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고 일러주자, 그 사람은 '훔치는 숫자를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만 훔치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하오.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면 빨리 그만두어야지 어째서 내년까지 기다린단 말이오?"




어떤 어린아이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고 노래했다. 공자가 그것에 대해서 '너희들은 저 노래를 들어보아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한다. 그런 차이는 모두 물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고 하셨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망치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 [서경]의 <태갑>에서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를 작다고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가 천하를 작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의 경우 어지간한 강물은 그의 관심을 끌 수 없고,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의 경우 어지간한 말은 그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굶주린 사람은 어떤 것도 달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어떤 것도 달게 마시는데, 이것들은 먹고 마시는 음식의 정상적인 맛을 알지 못한 것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이 입과 배를 해쳤기 때문이다. 어찌 사람의 입과 배에만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인한 해가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에도 그러한 해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인한 해가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부귀가 남만 못하다고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현자는 자기의 밝은 것으로 남을 밝게 하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기의 어두운 것으로 남을 밝게 하려고 한다.





송나라 대부 대영지
“수확량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는 세법을 실시하고 국경의 관문과 시장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을 폐지하는 것은 금년에는 불가능합니다. 일단 세액을 경감하고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폐지했으면 하는데 어떨지요?”

맹자
“날마다 이웃집의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자에게 ‘이런 짓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고 일러주자, 그 사람은 ‘훔치는 숫자를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만 훔치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하오.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면 빨리 그만두어야지 어째서 내년까지 기다린단 말이오?”
「동문공 하 6.8 옳지 못한 일은 바로 고쳐야 한다」 중에서

맹자

“어질지 못한 사람과 함께 바른 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위태로운 것을 편안한 것으로 여기고 재앙을 이로운 것으로 여기고 그의 몸을 망치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어질지 않지만 함께 바른 도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나라를 잃고 집안을 망치는 일이 있겠는가?

어떤 어린아이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고 노래했다. 공자가 그것에 대해서 ‘너희들은 저 노래를 들어보아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한다. 그런 차이는 모두 물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고 하셨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도 반드시 스스로 망친 후에 남이 망치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 『서경』의 「태갑」에서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이루 상 7.8 어질지 못한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