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 곡 더 불러요”
“선생님, 한 곡 더 불러요”
  • 김종혁
  • 승인 2015.12.30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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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나래초 김종혁 교사, 노래하는 교실을 꿈꾸다

 
   나래초 김종혁 교사
“선생님, 한 곡 더 불러요.”
아이들이 음악시간이 끝나는 게 못내 아쉬웠는지 한곡을 더 부르자고 조른다. “그럼 한 곡 더 불러보자!”

우리 반 아이들은 음악 시간을 좋아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첫 음악시간. 나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목소리를 가다듬고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첫 소절을 불렀다. 아이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참으며 나를 바라본다. 처음이라 그렇겠지 생각하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노래를 하기 전에 간단히 목부터 풀어볼까? 도-레-미-파-솔-파-미-레-도-.”
“......”
고요한 침묵. 그렇다. 이 녀석들은 사춘기에 접어든 6학년들이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열광하던 아이들이 음악시간만 되면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작년 3학년 음악전담을 맡았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낯선 상황이다. 그날부터 음악시간은 나에게 외롭고 힘든 사투의 연속이었다. 변성기에 접어든 남학생들의 낮고 굵으며 음정을 무시한 중저음, 입은 벌리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 여학생들의 립싱크. 한 명 한 명을 지적하며 교정해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선생님, 그냥 음악시간에 영화보거나 자습하면 안되나요?” 결국 아이들은 나의 화를 끝까지 돋우는 말을 하고야 만다.

“너희들이 따라오지 않아도 선생님은 끝까지 음악 수업을 강행하겠으니 할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

나의 선전포고에 수업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고 다음 과목 수업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음악교육을 부전공했다는 이유로 나름 음악교육에 자신만만했던 나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음악수업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시골학교에서 근무하던 몇 년 전이 떠올랐다. 제대로 된 음악실도 없는 작은 학교. 3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음악시간은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큰 기대치가 없었기 때문일까. 음정이나 박자가 맞지 않아도 즐겁게 노래 부르던 나와 아이들. 유행가를 편곡해서 부르기도 하고 즉흥연주와 율동을 곁들인 다채로운 음악 수업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의 소박한 꿈은 규모가 큰 학교에 가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갖춰진 합창단을 지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세종으로 발령 받은 후, 나는 아이들을 위한 음악 수업이 아닌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음악 수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나의 음악수업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어려운 음악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시시콜콜 지적하지 않았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 짜증을 내던 전과는 달리 끝까지 기다려 주는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진지하고 학문적인 음악시간 보다는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음악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이런 노력이 조금은 와 닿기 시작한 것일까. 아이들은 조금씩 입을 벌려 노래하기 시작했다. 고음 불가의 남학생들이 높은 음을 내기 위해 인상을 쓰며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쉬는 시간에도 배웠던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학생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2학기의 큰 행사인 학습발표회에서 우리 반은 다양한 개인, 그룹별 공연과 함께 두 곡의 합창곡을 선보이기로 하였다. 합창의 즐거움을 알게 된 아이들 덕분에 연습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평소 친하지 않던 친구와도 노래를 부르며 교감하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소중한 가르침도 배울 수 있었다.

드디어 학습발표회 당일. 교실 뒤편을 가득 채운 어머니, 아버지 앞에 선 아이들은 다소 긴장된 얼굴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 지으네.”

연습 때마다 들었던 ‘졸업’이란 노래의 익숙한 가사가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간신히 눈물을 참고 다시 보니 아이들은 몰라볼 정도로 많이 자라 있었고,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된 아이들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쇼팽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기사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한때 나의 꿈도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꿈에 도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교사가 된 나에게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어쩌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보다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감동적인 교실, 나는 오늘도 ‘노래하는 교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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