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정보사회, 민주주의 가치는 누가?
디지털정보사회, 민주주의 가치는 누가?
  • 최순희
  • 승인 2012.08.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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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희의 뾰족한 글]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은 당연한 결과

지난 주에는 인터넷과 현실세계를 규율하는 문제에 있어서 지구 저편과 이편에서 의미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중첩되었다. 한쪽은 영국의 법원과 관련된 일이고, 한 쪽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니, 한국 상황이다. 우리의 현실과 가까운 한국 상황을 먼저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는 2007년 7월부터 시행해 온 '인터넷 실명제(인터넷 게시판 본인 확인제)' 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포털사이트와 주요언론사의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실명인증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로써 1일 평균 이용자가 10만 명 이상인 146개 대형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실명인증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대문에 걸쇠를 걸어두고 입장을 제한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협했던 인터넷 실명인증 논란이 종식된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해 말, 트위터 등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사전 선거운동을 금지한 조항의 공직선거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과 개방성의 보장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함으로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적담론을 활성화하여 민주사회의 헌법적 가치가 실현되도록 법적 보호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사법부의 당연한 판단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는 정보기술에 의해 견인된 디지털 정보전달 환경은 투명성과 개방성을 극대화하면서 자정작용이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헌재의 결정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면, 지구 저편의 영국 상황을 보자.
지난 19일, 영국 런던의 에코도르 대사관 발코니에서는 인터넷 폭로 저널리즘의 대부라 불리는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41)가 서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망명을 허락해 준 에콰도르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남미 에콰도르의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와 어산지는 미국식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공통의 코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왜 발코니인가? 그가 그토록 적절하고 기발하게 이용했던 인터넷도 아니고 파급력이 큰 영국의 글로벌 언론사도 아닌. 이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투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어산지가 남미식 '자유'의 상징을 차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로 널리 알려진 남미 아르헨티나인들이 사랑한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이 대중 앞에 섰던 곳이 발코니이다. 남편 후안 페론 대통령이 45년 군부에 체포되었다가 환호하는 군중 앞으로 다시 돌아왔던 곳도, 영부인이 된 뒤에 처음 연설한 곳도 아르헨티나 정부청사의 발코니였다.

그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어산지는 자신의 미국 기밀 폭로를 못마땅해 하는 미국과 미국의 충실한 친구나라에서 벌어지는 자신에 대한 재판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어산지는 발코니 메시지에서 미국이 진실을 밝히는 내부고발자와의 전쟁을 그만두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5월 30일, 영국 재판부에 의해 스웨덴으로의 송환이 결정되어있었던 어산지의 절박하나 똑똑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미국이 자국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는 이 껄끄러운 남자의 남미식 발코니 인사에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뉴욕타임즈지가 지난 19일자 기사제목으로 "이것은 어산지 개인의 일이 아니다"라고 표현한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에콰도르의 '어산지 일병 구하기'가 반미와 친미의 구도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영국의 강력한 반응이 이를 말해 준다. 영국 정부는 '외국공관지위 폐지' 카드로 그를 보호하고 있는 에콰도르를 압박하고 있다.

지구 이편과 저편의 두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연결하면, 바로 인터넷 세상에서 다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방향성이 무엇인지 선명해 진다. 애초부터 인터넷은 개방된 구조가 가능하게 하는 익명성이 보장될 때 근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국 헌재의 결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인터넷에서의 실명제 폐지로 올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허위사실 공표나 비방이 많아질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공익을 고려한 제한적 수준의 실명제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과도한 규제가 대중을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불법정보 유통 등의 문제는 현행 형법에 의한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보사회에 깊숙이 몸담고 있는 우리들의 인터넷 이용에 대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연 우리가 헌재의 믿음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사회에서의 '무엇이 공익인가'에 대한 각자 나름의 시민의식을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대선이 핑계가 될 수 없도록 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표현의 영역에서 자기검열이 행해지는 전체주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민주사회가 지향해 온 가치이다. 가치를 지켜내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자신이 해내겠다고 한 것을 끝가지 해내는 사람을 가까이 두라'는 라디오 독서캠페인이 흐르고 있다. 미국이 그들 건국초기부터 불가침의 사회작동 원리로 지켜내려 했던 '표현의 자유'를 디지털 정보사회에서는 어떻게 실천으로 지켜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 다음에 친구로 삼아야 할 지, 말아야 할지를 저울을 들이대는 몫이 우리에게 남았다. 또한, 한 때 관습법을 들고 나와 세종시의 출범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헌법재판소가 민주원리를 작동시키는 헌법의 가치를 높이 치켜들었다.사족이지만, 함께 할 친구로 옆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일이 남았다. 헌재의 결정을 지지한다.

   
 

최순희, 대전출생, 충남대, 목원대(석사), 충남대 언론정보대학원(박사수료), 대전MBC R·TV 프로듀서, 편성·보도제작부 부장, 미디어 포럼 대표(현), 홍익대, 목원대 출강(현), 이메일 : luxcia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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